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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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소외감이었다. 사람들과 잘 지내다가도 꼭 한 번씩 내가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뭐 같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반복되자 소외받기 싫어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살았고, 관계 맺음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상처받지 않게 미리 차단했다. 이로써 남들과 어울리는 기쁨은 줄었지만 날 집어삼키는 늪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아마 나처럼 자의로 고립을 택한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방인처럼 살다 보면 생각이 많아져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된다. 나의 경우는 타인의 감정을 관찰하고 반응을 캐치하는 육감이 발달했는데, 이게 나와 안 맞는 사람들을 가려내다 보니 오히려 적만 늘어나서 힘들어 죽겠더군. 나도 눈치 안 보고 대충 살고 싶은데 센서가 제멋대로 반응하니 이번 생은 글렀다. 이번에 읽은 책에서 나와 닮은 주인공을 보며 예민한 눈치 백단의 삶이란 얼마나 피곤한지를 절절히 느끼고 말았다. 작품의 서사보다 인물의 소외감에 꽂힌 걸 보면 나는 독서마저도 이방인처럼 하는가 봐.


이것은 인간의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난 복제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해일셤 기숙학교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기증자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학교를 다닌다. 비록 클론이지만 인간의 교육과 대우를 받았던 캐시와 친구들은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영혼에 대해 수차례 질문하였다. 인간을 위한 의료 도구에 불과하나 다들 지극히 정상적인 생명체로만 보이는데, 작가는 계속해서 이 아이들이 언젠가 닳아없어질 소모품처럼 그려낸다. 그러니 아이들의 고충이나 마찰, 방황 같은 매우 인간적인 장면에서조차 막 그렇게 안타까움이 들지는 않는다. 이것은 클론에 대한 독자의 감정을 배제시키고자 한 작가의 의도적인 방해로 보인다. 그렇담 별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이렸다.


그나저나 읽는 내내 애매한 불편함이 감돌았다. 어차피 기증자가 되어 목숨을 잃는다면 이들에게 일반 교육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고, 창의성을 기르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솔직히 해일셤의 학생들은 사육장의 가축이나 마찬가지였다. 둘 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입장이고, 쓰임을 받으면 그걸로 끝일 텐데 여기서 개개인의 숭고함이 어디 있고 존중이 웬 말인가. 그저 복제인간도 윤리적인 차원에서 불쌍하다고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교사들은 차별 수업을 하지 않았고, 학생들은 어떤 반감조차 갖지 않았다. 그제서야 확신이 들었다. 이 작품은 연민과 동정을 겨냥한 게 아니란걸. 독자가 어떤 입장으로 책을 읽든 간에 학생들은 평화로운 스쿨 라이프에 평범한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다. 캐시는 철부지들 사이에서 중재자도 되었다가 투명인간도 되었다가 샌드백 역할도 해주면서 성숙한 자아와 인격이 형성된다. 이 모든 과정을 보노라면 인간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건만 다들 하나같이 자신의 뿌리를 상기하며 독자의 괜한 걱정을 차단시킨다. 머쓱하게시리.


대부분의 평들이 인간의 복제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회의를 갖고 지적하던데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아무리 봐도 작가가 그런 점을 비판하라고 이 책을 쓴 것 같지가 않거든. 주인공들은 제 운명으로 절망하거나 한탄에 빠져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외부와 단절된 해일셤의 생활이 유토피아나 다름없었기에, 학교가 기증자라는 그릇된 자부심 따위를 세뇌시켰다 한들 그게 그렇게까지 사회적 논란으로 번질만한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제에서 존엄성이나 경외심을 떼어놓는 건 불가하지만, 독자의 감정이입이 격해지려 할 때마다 작가가 브레이크를 걸어줘서 조금은 차분하고 또 냉정하게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자, 그렇다면 클론의 불행이나 인간의 욕심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기증자가 되려는 결단과 영광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촛불 같은 생애였다 해도 이들이 품었던 영광의 빛을 가리켜 허탄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어야 한다. 작가의 수많은 방해에도 꿋꿋이 연민과 동정을 고집했다면, 그것은 이 책을 읽었으되 읽지 못한 것이리라.


클론도 인간처럼 생활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클론을 필요로 하면서 그들이 인간을 뛰어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여 다 같이 잘 지낼 수 있음에도 클론들은 폐쇄된 곳에서 양육되었고, 멀쩡한 사고와 감정을 가졌음에도 세상에게 외면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작가는 작품마다 인물의 소외감을 선명히도 드러내는데, 이 책에서는 그 소외감을 개인에서 집단으로 확대시켰다. 그동안 자신들이 소외당해왔다는 진실을 알고 난 후의 충격이 어떤 건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거다. 그러나 고립의 육감이 초발달한 나님은 무릎을 치고야 말았지. 어쩌면 나는 그 소외감에 공감 받고 싶어서 이시구로의 작품을 계속 찾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방인의 행보는 새해에도 계속된다.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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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0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 저도 이시구로 책 중 이 책 제일 좋아해요 ㅎㅎ 당선됨을 축하드립니다 ~~

물감 2022-02-10 19:48   좋아요 2 | URL
엇, 오늘이 그날이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미니님도 축하드려요 ^^

새파랑 2022-02-10 1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이 가장 좋더라구요 ^^

물감 2022-02-10 19:4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도 축해해요 ^^
이시구로 작품도 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ㅎㅎ

이하라 2022-02-10 19: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2-02-10 19:5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님 ^^
요즘 정신없어서 알라딘을 잘 못들어오고 있는데 이런 댓글 하나하나가 되게 뭉클해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2-02-10 1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려요~~

물감 2022-02-10 19:5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그레이스님도 당선 축하해요!!
정말 부지런하십니다 ㅎㅎ

서니데이 2022-02-10 2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물감 2022-02-11 07: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좋은 하루되세요🙂

독서괭 2022-02-10 2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립니다~^^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물감 2022-02-11 07:2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ㅎㅎ 이 작품도 유명하니까 읽어보셔요!

러블리땡 2022-02-11 00: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려요 나를 보내지 마도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

물감 2022-02-11 07:25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클라라보다 좋았어요, 읽어보세요ㅎㅎ축하 고맙습니다!

thkang1001 2022-02-11 0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2-02-11 07: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ㅎㅎ

thkang1001 2022-02-11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강나루 2022-02-11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해요^^

물감 2022-02-11 17:24   좋아요 1 | URL
강나루 님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ㅎㅎ

stella.K 2022-02-11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시를 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저도 예외는 아닌 것 같고.
이 작품이던가? 전 영화로 봤는데 그렇군요. 소외.
그땐 뭔지도 모르고 그냥 꾸역꾸역 봤던 것 같아요.
나중에 읽게되면 소외감은 안 느꼈으면 좋겠네요.ㅋ

물감 2022-02-12 21:40   좋아요 1 | URL
영화는 안봐서 잘 모르지만 책은 좋았어요🙂 작가가 서양에서 동양인으로 살아서 그런지 소외감이 어떤건지를 진짜 잘 아는것 같아요. 호불호 있는 작가인듯 한데 저는 좋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