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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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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랑 님의 작품은 처음 읽어봤다. 그런데 정말 기발한 상상력에 놀랐다. 단편들이 엮여있다보니 그 와중엔 내용보다 통통튀는 묘사가 더 마음에 드는 글도 있었지만, 어쩜 이렇게 귀엽고 발칙한 상상력으로 글을 엮어냈는지 매번 놀라게 됐다. 특히 나는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부류라, 이렇게 환상적인 이야기를 현실에서 이질감 없이 풀어내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이 책의 단편들을 엮어내는데 총 9년이 걸렸다는데, 그동안 내 취향과 다르다고 해서 너무 쉽게 책을 평한 것 같아 왠지 반성하게 되었다.  


집에 오는 길에 열여덟번째 여자는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지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축의금 같은 사소한 문제부터 시작해 훨씬 큰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결혼은 겉의 포장을 걷어내면 결국 법의 문제, 제도의 문제, 보호의 문제이니 말이다.

"요즘은 내가 원했던 것도 사실 결혼이 아니라 법의 보호를 받는 동거가 아니었나 싶더라고."
결혼한 지 가장 오래된 친구가 말했을 때였다.
"근데… 나는 사실 결혼이 하고 싶어. 그 사람이랑 보란 듯이 식도 올리고 싶어. 가족들이랑도 교류하고."
동성애자인 친구가 머쓱해하며 털어놓았다.
"뭐? 왜? 결혼 완전 피곤하고 촌스러운데, 싫은 친척이 두배로 생기는 거라고."
... "나도 좀 해보고 싫어하는가 할게. 동거도 좋고, 시스템 안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일단 외치고 싶어. 우리 둘이 계속 함께하기로 정했다고. 그 결정으로 우리둘이 고립되는 게 아니라 연결망 속에 놓이고 싶고."

"그럼 우리 결혼할까?"
"결혼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래도 결혼하면 굳이 애써 만나지 않아도 겨울 내내 껴안고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럴까?"
그래서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 맨살과 맨살 사이의 온기, 그것을 위해.

결혼의 여러가지 속성에 대해 미리 알았던 편이지만, 이토록 빛잔치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빚을 기억하느라 드레스의 디자인 같은 것은 하얗게 잊고 말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선을 넘는지 새삼 놀라웠다. 당신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만큼 가깝지 않아요, 하고 대답하고 싶은 걸 매번 참았다.

두번은 넘어갈 수 없었다. 둘 다 일하는데 식사 준비를 여자가 하는 건 여자의 자발적인 기여일 뿐이었다. 남자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남자가 잠결에 실수로 여자를 때렸다. 팔꿈치로 눈두덩을 힘껏친 것이다. 여자는 멍이 들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좀비 꿈을 꿨어."
남자는 공포영화를 잘 못 보면서도 즐겨 보는 편이었다. 이해할만한 일이었지만 여자는 화가 났다. 3일쯤 화가 풀리지 않았다.
4일째가 되어서야 여자는 깨달았다. 여자는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두려운 것이었다. 그때까지 인식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 사이엔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었다. 나중에 남자가 머리를 다치거나 치매에 걸리면 어떡하지? 성격이 변해서 때리고 목을 조르면 어떡하지? 최악의 상상들이 연이었다.

"입을 모아 내가 부족한 존재라 해서 정말 부족한 줄 알았어. 결혼을 해야 어른 취급받는 건 너무 이상하지 않니? 그래서 착각한게 아닐까, 꼭 해야 하는 숙제로, 너는 나처럼 생각하지 마. 요즘 비혼 이야기 많이 나오는 거 반갑고, 나도 이런 시대를 기다릴걸 그랬다 싶어."
"언닌 가진 게 있어서 쉽게 말하는 거야."
"그래? 속 편한 소린가?"
"모르겠어. 나도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하는데, 사회가 너무 기혼자 중심인걸."
"사회는 바뀔 수도 있어. 생각보다 빨리."
"어쨌든 지금은 숙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옛날 선생님 같잖아."

"나처럼 가부장이 아닌 사람이 어딨다고?"
"당신 한 사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예를 들어 지난 제사 때 생각해봐. 나는 조퇴하고 가서 아홉시간 일했지. 당신은 퇴근하고 와서 한시간, 절 몇번 하고 과일 집어먹고 사촌동생들이랑 논 게 다잖아."
"그럼 두 사람 다 조퇴했어야 했다고?"
"내 말은 그런 시간들이 계속, 평생에 걸쳐 쌓인다는 거야. 쌓이다. 보면 큰 차이가 나는 거고,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아? 당신 할아버지 제사잖아? 난 만난 적도 없는 분이야. 왜 효도를 하청 주는데?"
"하청이라고까지 말하면......"
"아홉시간 일한 며느리들은 제사 지낼 때 아무도 절도 안하고 뒤에 멀뚱멀뚱 서 있지."
"몇년 전에 며느리들도 절하는 걸로 바꿀까 했었는데 큰어머니 무릎도 안 좋으시고……"
"어쨌든 그게 가부장제야. 당신 눈에는 안 보여도 내 눈에는 보여.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아주 많아."

"이런 결혼식은 처음 봐. 양쪽 집안 다 한 재산 챙기겠구먼."
그런가, 그게 본질인가. 여자는 아득하게 생각했다. ‘화환은 정중하게 거절합니다‘라는 문구를 청첩장에 쓰려 했을 때 아버지가 지우게 한 게 새삼 다시 떠올랐다.

"불행은 보이지 않는 모퉁이 너머마다 서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놀래키고, 인생은 그 반복일 뿐이라고 누가 그랬어.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우리 둘은 이제 불행 공동체가 된 거라고."

슈거파우더로는 거의 모든 걸 덮을 수 있지. 사람들의, 관계의 가장 저열하고 싫은 부분까지도 말이야.

"그만둬버려. 굶어죽기야 하겠냐? 이제 경력이 있으니까 또 금방 취직될 거야."
주변 사람들의 그런 말에 설득될 때도 있었지만,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어. 서른개쯤 넣으면 하나쯤 다음 단계로 통과되는 이력서를 가지고 두려움이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국제암연구소에 의하면 심야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돌연사의 원인으로는 몇위쯤 될까. 언니는 입사 이래 줄야근을 했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기 때문에 티도 나지 않았다.

짝사랑은 모멸감을 잘 견디는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

"언제든지."
여자친구가 말했다.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전화하라고? 메일 쓰라고? 나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럴 땐 똑같이 말하는 게 제일 좋다.
"언제든지."
나도 말했다.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비교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근사하고 자신만 지옥에 버려진 듯한 날들이 이어졌고, 짓무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지만 종종 들켰다.

‘싱글로도 커플로도 살기는 녹록하지 않다. 둘 중 어느 쪽을 고른다 해도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어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삶의 가중치를 어디에 두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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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일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 인생학교 3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정지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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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나온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도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느꼈고, 오래 시도했었는데 책 읽기가 이렇게 늦어지고 말았다. 그때도 '일'이라는 게 내겐 그리 어려웠던 것이었을까. 지금 책의 출판일을 다시 확인하니 13년도다. 책이 나온지 9년이 다 되가는데, '일'에 대해 내가 느끼는 현실은 예전보다 더욱 암담해져 있는 느낌이다. 책을 읽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이 책을 통해 꼭 도움을 받고 싶다 생각했는데, 기대보단 훨씬 오래된 책이라는 느낌이 나서 살짝 아쉽긴 했다. 

 

직업을 바꾸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찬란한 이야기도 아니다. 수십 수백 번의 고민과 두려움,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반대와 우려를 무릅써야 하는 고된 분투의 과정이다. 설령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다 해도 그 실행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직업의 평균 지속시간은 고작 4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의 바람과 다르게 우리는 계속 선택을 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 기대치가 높아졌다. 우리는 예전 세대보다 일에서 더욱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됐다.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활기찬 표정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낭비에 불과하고 입안에 쓴맛만을 남기는 직업이 아니라,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답변 말이다.

"얘야, 넌 아직 젊다.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해볼 수 있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역사의 상당 기간 동안, 직업을 정할 때 사람들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이라는 것은 자유와 선택이 아닌 운명과 필요의 성격을 띤 문제였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현대인은 선택지가 너무 넓은데다 거기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슈워츠는 선택권 없는 인간의 삶은 도저히 견딜 수 없지만, 선택권이 지나치게 많아도 과부하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그 지점에 이르면 선택권은 더 이상 당신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오히려 약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슈워츠에 따르면 선택의 역설은 첫째, 너무 많은 선택권은 자유가 아닌 무기력을 초래한다. 그래서 쉽게 포기해버리고 이미 이용하고 있는 전화 회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설령 무기력 상태를 극복하고 결정을 내린다 해도 선택지가 적은 경우보다. 결과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진다. 역설의 주요 원인은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라며 이미 내린 결정을 후회하고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주입된 교육을 바탕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그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에 깊이 뿌리 내린 과거가 정해준 제한된 직업의 길을 걸어간다. 가슴 뛰는 삶을 살기 위해 기꺼이 감당해야 할 모험으로 나아가는 데 당연히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애써 일궈놓은 업적이 시간 낭비가 된다는 생각은, 우리가 직업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커다란 심리적 장벽이다.

막상 새 길을 떠나고 싶다고 하면서도 현재의 직업 덕분에 누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나 직업적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의 일이란 것이, 아무리 최상의 결정을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후회를 피할 방법은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은 심리검사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다. ... 심리검사의 수백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현실 속에서 여러가지 직업을 직접 경험해보는 쪽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찾는 데 더 유용하다.

관건은 위험을 무릅쓰기 싫어하는 본능과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변화에 필요한 용기를 찾느냐다.

"누구나 좋은 인생을 위해 추구해야 할 목표가 있어야 한다. (…) 그 목표는 앞으로의 모든 행동에 관련된다. 목적 하에 조직되지 않은 삶은 그 자체가 엄청난 어리석음의 증거다." - 아리스토텔레스 -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있다." - 독일의 철학자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 -

"누구한테나 인생은 쉽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끈기와,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어떤 일에가 재능이 있다고 믿어야 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는 그것을 달성해야만 한다." - 마리 퀴리 -

불편한 진실이지만 언젠가는 생각을 멈추고 행동에 옮겨야 할 때가 온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삶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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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오늘의 젊은 작가 8
김엄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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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오지 않았고 두통이 생긴 토요일 새벽이다. 두통이 생긴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책 때문일 수도 있겠지. 일에 대한 고민 때문일 수도 있고, 불면증 때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새벽 4시에서 6시까지 이 답답한 책을 읽는 느낌이란... 기분이 참 묘했다. 글씨가 가슴에 와서 새겨지지 않고, 눈앞에서 읽자마자 흩어져버리는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집중되지 않는데 쓸쓸하고 암울한 느낌이 책안에 그득했다. 곰팡이, 비, 18, 쓰레기, 토사물, 등을 돌린 여자.......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공감의 느낌은 대체 왜 드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난 아무래도 E가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더불어 a도, d도, b와 c도, E에게 아무 답도 주지 않았던 여자들도.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많다. 나를 끝으로 몰아가는 일련의 시련을 겪으면서 나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너에 관한 것들, 나는 너를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남자와 여자는 뜨는 해를 보았을 것이었다. 그들의 행복을 확신한 E는,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가로등이 아직 켜지지 않았고, E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불행한 것인가. E는 그렇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떤 깨달음은 불편함이었다. E는 요즘 부쩍 그런식의 불편함을 자주 느꼈다. 나이가 들고 있군. E는 그렇게 생각했다.

E는 올해 봄부터 나이가 들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봄부터 망설임이 늘었다. 사소한 고민에 빠졌고, 별것 아닌 일에 쉽게 화가 났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할 만한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과 별개로 E는 자주 포기하고 싶었다. 울적했고,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났다. 식은땀의 원인에 대해서, 나이가 들고있기 때문이라고, E는 생각했다.

E는 자주, 더 자고 싶었다. 오랫동안 자고 일어난 뒤에도 그랬고, 잠깐 동안 자고 일어났을 때에도 그랬다.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자고 난 후에도, 더 자고 싶었다. 더는 잘 수 없을 정도로 잠을 잔 뒤에 일어나 이를 닦으면서도 더 자고 싶었다. 변기에 앉아서는 그대로 잠들고 싶었고, 가끔은 정말 변기에 앉아 그대로 잠들기도 했으나 완전한 수면이 될 수는 없었다. 궁핍함일 뿐이었다. 그의 마음은 자주, 더 자고 싶었고, 그의 마음과 다르게 몸은 때맞추어 일어났으며 더 자지 못했다.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나면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의 기대는 소박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담배 한 대를 다피웠지만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을 뿐이었다.

언젠가 E도 스물과 스물둘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때 E의 삶은, 조금 덜 지쳤을 뿐,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담배를 한 개비 피우는 동안 E는 다섯 번 씨발을 중얼거렸다.

깨달음은 곧 불편함이 되었고, 불현듯 극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을? 무엇을 어떻게 극복한단 말인가. 식은땀을 흘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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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봄밤 - 교유서가 소설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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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서점에 들려 책을 눈으로만 휙휙 구경하다가 발견책. 놀라운 우연으로 엮인 책이었다. 확실하게 내 스타일, 그러니까 다소의 우울감이 느껴졌던 책이어서 그랬을까. 하지만 마냥 우울하기엔 제목이 너무 아름다웠는데, 작가노트를 보고 깨달았다. '그렇지... 아직은 봄밤인 거지....' 책을 다 읽고 덮었는데 갑자기 숙연해지고 마음이 너무 감동스러웠다.
 책의 어느 부분은 우울했고, 어느 부분은 읽기가 힘들기도 했다. 여러권의 책을 한꺼번에 대여해서 읽다보니 한번 빌릴 때 반 정도 읽고, 나중에 다시 빌릴 때 나머지 반을 읽었다. 시간 텀이 생기다보니,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메모했던 구절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 그게 제일 아쉽다. 아마 지난 폰에 저장되있을 듯 한데, 아무래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야 할 것 같다.
 100% 인정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 맞을 것이다. 난 그 어두운 분위기나 쓸쓸함, 외로움도 좋아하고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시간이 차차 지나면서 작가님에게 조금 더 밝은 봄이 오기를 희망해본다. 몸과 마음에 안정감과 여유가 생기고 그로 인한 즐거움, 인생에 대한 너그러움이 커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글도 점점 밝아질 수 있기를... 작가님과 작가님의 작품이 다시 눈부신 봄, 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더해서 나의 인생도... 조금쯤은 그럴 수 있길...
 이런 바람들이 묶여서인지 왠지 책을 읽고난 후에 조금 더 마음이 간절해지는 책이었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오래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됐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엄마가 끝내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그러는 너는 요즘 어때?"
... 그런데 글쎄.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즈음의 나는 어떤가. 잘 모르겠다. 요즈음의 나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 역시. 나는 내가 어떤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살림살이도 막상 죄다 끄집어내놓고 보면 그 양이 만만치 않기 마련이었다. 죽고 나면 폐기되고 말 짐덩어리를 하나둘 늘려가며 살아가는 삶이라니.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쓰던 물건도 이런 식으로 폐기되겠지.

"사람이 언제 죽을지 알고 살면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벽지를 뜯어내면서 상만이 말했다.
"별 쓸데없는 소리를 다 한다. 언제 죽을지 뻔히 알면 맨정신으로 살아지겠냐? 언젠간 죽는다는 거 다 알아도 그게 언제지는 모르니까 살아지는 거지."

"이렇게 혼자 죽는 것도 무섭지만 내가 죽었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요."
상만이 얘기 끝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놈이 한숨은. 그러니까 외롭지 않게 살아. 주변에 잘하면서. 그러면 되는 거야."
김과장이 토닥이듯 말했다.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요.. 세상에 외롭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다고. 다 그렇게 살다 죽는 거죠."

나의 죽음을 수거하는 이들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터무니없이 새파란 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눈앞이 핑그르르돌더니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돌연히 찾아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고독하기 짝이 없다. 아내와의 만남이 그랬고 이별 역시 그러했다. 그것들 앞에서 나는 매번 속수무책이었다.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결국 내게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불화는 언제나 말에서부터 싹튼다.

무기력은 가장 마지막 것까지 포기하게 만든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 앞에 쉽게 무릎 꿇는다.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는 찢고 나올 수조차 없을 만큼 질긴 번데기 속에 나를 처박아놓은 일 말고는 딱히 해준 것도 없는 주제에, 심심치 않게 내 안의 연민을 건드리고는 했다. 위태로이 오르고 있던 낭떠러지에서 허방이라도 짚은 것처럼 아득해졌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내게는 엄마나 오빠와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그의 무능이 모든 걸 망쳐놓았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능한 가장은 절대로 무죄일 수 없다.

‘끝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내 품고 지낸 시간이었다. 그 시절, 끝도 없이 이어지던 추락에서 나를 건져올린 건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살고 싶다는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 작가의 말

‘어느 한 시절의 내가 그랬듯 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좌절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쓰고 또 쓸 준비가 되어 있다. 다른 이들보다 느릴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일어설 수조차 없고 매 순간 끔찍한 통증에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 있어서, 소설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이 낡아버렸다 해도, 아직은 봄밤이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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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문구 - 나는 작은 문구들의 힘을 믿는다 아무튼 시리즈 22
김규림 지음 / 위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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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랐는데 얼마전 읽었던 '아무튼, 피트니스'와 같은 출판사에서 '아무튼' 시리즈로 발간된 책이었다. 피트니스와 문구 말고도 떡볶이, 요가, 하루키, 피아노, 비건, 술, 말하기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많이 나와있었다. 나도 나름대로 문구에 애착이 있는 사람이지만, 일부러 찾아읽은 건 아니었다. 가져간 책을 다 읽어서 비치용 도서를 기웃거리다 만났는데, 다음엔 내 취미나 취향에 더 가깝거나 궁금한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내겐 조금 가벼운 책이었다. 내용도 그렇지만, 타인의 개인적이고 단순한 취미생활에 대한 글은 책으로 읽기에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문(방)구'에 대한 애착과 열정은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고, 그런 특별함이 그녀를 성장시키고 지금까지 나아오게 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취미나 취향은 그리 어렵지 않은 건데 남보다 더 많이, 오래, 또 열정적으로 어느 한 가지를 '탐'하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겐 그런 특별한 즐거움이 뭐가 있을까, 다시 생각해보고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내가 나와 나누는 대화를 기록하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마주한다. 가장 솔직한 나의 감정을 일기를 쓰면서 알게 된다.

심각하게 고민을 써 내려간 페이지들은 다시 열어보면 열이면 아홉은 가벼워져 있다. 지치고 힘든 어떤 날 예전에 쓴 일기들을 읽으면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위로를 해온다. 나름대로의 걱정과 고민을 짊어지고 있었던 그때의 내가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다 지나갈 거라고, 결국엔 다 가벼워질 것들이라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곧장 책상 앞에 앉는 나는 그 이상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러니 책상 위에 부지런히 사물들을 들여놓고 사용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결국 나의 삶을 가꾸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살뜰히 가꿔야겠다. 책상도, 나의 삶도.

크기도 색깔도 같은 노트를 사는 건데 뭐가 특별할까 싶어도, 왠지 모르게 매번 경건한 마음이 든다. 수백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내 인생의 책장에서 이제 막 한 권을 끝내고 또 다른 권으로 넘어가는 기분이랄까.

옛날 일기장을 펼쳐보며 과거의 내가 어딜 갔는지 누굴 만났는지 찾아보는것도, 당시에 했던 생각을 훔쳐보는 것도, 기록 스타일이 변한 것을 느끼고 신기해하는 것도, 옛 연애의기록을 보며 이불킥을 하는 것도 쌓인 일기장만이 안겨줄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표현할까 고심하며 설레거나 무엇을 쓸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보다 다짜고짜 표현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그게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대부분 비효율적 시간들에 있다. 빨리 할 수 있는데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 것들.

이런 비효율성을 감내하는 건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걸 뜻한다(바쁠 땐 일력도 밀리고 시계도 멈춘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상 속에 항상 쓸데없는 일들이 조금씩 자리하고 있기를 바란다. 빠르게 움직이는 일상 속에 수고로운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있다는 건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오랜 시간 써서 나에게 꼭 맞는 형태로 만드는 것.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일방적으로 소유하거나 사용하는 게 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맞춰나가는 상대로서의 필기구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내가 도구를 길들이기도 하지만, 실은 내가 도구에 길들여지기도 한다.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어가는 것.

아는 것이 늘어갈수록 일상은 한층 더 풍성해진다. 매일 이렇게 무언가를 새로 알아갈 수 있어서 즐겁다.

나는 쓸데없는 것들의 힘을 믿는다. 생필품들은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지만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쓸모없는 물건들이다.

문구의 진짜 가치는 실용성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그러니 나도 더 이상 핑계 대지 않으려 한다. 예뻐서, 귀여워서, 써보고 싶어서, 그냥 사고 싶어서, 저걸 사면 오늘 하루가 더 나아질 것 같아서, 문구를 사고 싶은 이유는 실용적이라는 이유 말고도 너무나 많으니, 우리는 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체크리스트와 플래너, 나는 결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할 일을 종종 놓치곤 하는데, 덤벙대는 내 성격을 어느 정도 보완해주는 것이 체크리스트다. 출근하자마자 할 일들을 써놓고 하나하나 지우는 쾌감이 상당하다. 체크리스트 덕에 원래보다 1퍼센트 정도는 더 체계적인 인간이 되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대척점이 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서로가 서로를 대체할 수 없으니 꽤 좋은 공존이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도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했던 것, 다이어리 네다섯 권을 동시에 쓸 정도로 열정적으로 몰입했던 것이 스스로도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무언가에 푹 빠지는 건 성인이 되어서도 어려운 일인데 그 나이에 쉽게 쌓을 수 없는 취향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만들었으니 말이다.

손으로 쓴 데에서 나오는 독특한 손맛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다. 백 번을 써도 백 번 모두 다르고, 모든 글씨들에서 쓰는 사람의 성격과 감정이 느껴진다. 따뜻하고 인간적이고 또 사랑스럽다.

조만간 사라질 물건에 대한 애틋함같은 게 갈수록 커진다. ‘그땐 이런 것도 있었는데‘ 하면서 이런 물건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다고 추억하게 되리라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곧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에 불현듯 쓸쓸해진다.

기계로 만든 것들이 많아질수록 손으로 만든 핸드메이드의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질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물건들 사이에서는 삐뚤빼뚤 고르기 않게 손으로 만든 것이 더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아마도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겠지.

역시 좋아하는 것은 좋아한다고 시끄럽게 떠들고 볼 일이다.

그래, 취향이라고 해서 꼭 멋들어질 필요가 있나!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로 행복과 만족을 찾아나가는 것도 충분히 즐거운 인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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