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은 봄밤 - 교유서가 소설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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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서점에 들려 책을 눈으로만 휙휙 구경하다가 발견책. 놀라운 우연으로 엮인 책이었다. 확실하게 내 스타일, 그러니까 다소의 우울감이 느껴졌던 책이어서 그랬을까. 하지만 마냥 우울하기엔 제목이 너무 아름다웠는데, 작가노트를 보고 깨달았다. '그렇지... 아직은 봄밤인 거지....' 책을 다 읽고 덮었는데 갑자기 숙연해지고 마음이 너무 감동스러웠다.
 책의 어느 부분은 우울했고, 어느 부분은 읽기가 힘들기도 했다. 여러권의 책을 한꺼번에 대여해서 읽다보니 한번 빌릴 때 반 정도 읽고, 나중에 다시 빌릴 때 나머지 반을 읽었다. 시간 텀이 생기다보니,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메모했던 구절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 그게 제일 아쉽다. 아마 지난 폰에 저장되있을 듯 한데, 아무래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야 할 것 같다.
 100% 인정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 맞을 것이다. 난 그 어두운 분위기나 쓸쓸함, 외로움도 좋아하고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시간이 차차 지나면서 작가님에게 조금 더 밝은 봄이 오기를 희망해본다. 몸과 마음에 안정감과 여유가 생기고 그로 인한 즐거움, 인생에 대한 너그러움이 커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글도 점점 밝아질 수 있기를... 작가님과 작가님의 작품이 다시 눈부신 봄, 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더해서 나의 인생도... 조금쯤은 그럴 수 있길...
 이런 바람들이 묶여서인지 왠지 책을 읽고난 후에 조금 더 마음이 간절해지는 책이었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오래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됐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엄마가 끝내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그러는 너는 요즘 어때?"
... 그런데 글쎄.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즈음의 나는 어떤가. 잘 모르겠다. 요즈음의 나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 역시. 나는 내가 어떤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살림살이도 막상 죄다 끄집어내놓고 보면 그 양이 만만치 않기 마련이었다. 죽고 나면 폐기되고 말 짐덩어리를 하나둘 늘려가며 살아가는 삶이라니.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쓰던 물건도 이런 식으로 폐기되겠지.

"사람이 언제 죽을지 알고 살면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벽지를 뜯어내면서 상만이 말했다.
"별 쓸데없는 소리를 다 한다. 언제 죽을지 뻔히 알면 맨정신으로 살아지겠냐? 언젠간 죽는다는 거 다 알아도 그게 언제지는 모르니까 살아지는 거지."

"이렇게 혼자 죽는 것도 무섭지만 내가 죽었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요."
상만이 얘기 끝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놈이 한숨은. 그러니까 외롭지 않게 살아. 주변에 잘하면서. 그러면 되는 거야."
김과장이 토닥이듯 말했다.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요.. 세상에 외롭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다고. 다 그렇게 살다 죽는 거죠."

나의 죽음을 수거하는 이들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터무니없이 새파란 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눈앞이 핑그르르돌더니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돌연히 찾아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고독하기 짝이 없다. 아내와의 만남이 그랬고 이별 역시 그러했다. 그것들 앞에서 나는 매번 속수무책이었다.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결국 내게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불화는 언제나 말에서부터 싹튼다.

무기력은 가장 마지막 것까지 포기하게 만든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 앞에 쉽게 무릎 꿇는다.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는 찢고 나올 수조차 없을 만큼 질긴 번데기 속에 나를 처박아놓은 일 말고는 딱히 해준 것도 없는 주제에, 심심치 않게 내 안의 연민을 건드리고는 했다. 위태로이 오르고 있던 낭떠러지에서 허방이라도 짚은 것처럼 아득해졌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내게는 엄마나 오빠와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그의 무능이 모든 걸 망쳐놓았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능한 가장은 절대로 무죄일 수 없다.

‘끝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내 품고 지낸 시간이었다. 그 시절, 끝도 없이 이어지던 추락에서 나를 건져올린 건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살고 싶다는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 작가의 말

‘어느 한 시절의 내가 그랬듯 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좌절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쓰고 또 쓸 준비가 되어 있다. 다른 이들보다 느릴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일어설 수조차 없고 매 순간 끔찍한 통증에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 있어서, 소설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이 낡아버렸다 해도, 아직은 봄밤이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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