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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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웠다. 짜릿했다. 지루했다. 궁금했다. .... 나 역시 뉴스에서 보도된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정신세계가 궁금했던 적이 있다. 궁금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경악스러워서 내가 그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지 자체가 의문스러웠던 그런 느낌이었다. 정유정 작가에게도 시작점이 거기였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출발한 시작을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완성시켜냈다. 소설을 읽으면서 무섭게 느껴졌던 부분이, 소설을 덮은 이후의 묘한 짜릿함 혹은 작가에 대한 경외심으로 몸을 오소소 떨게 했다.
  정유정 님은 워낙 서사력이 뛰어난 작가지만, 이전에 읽었던 7년의 밤에 비해 종의 기원은 조금 덜 읽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집중도 못하고 책을 오롯이 잘 읽지도 못하는 내가 아침 출근버스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읽어낼 정도긴 하지만 말이다. 7년의 밤은 장면 자체가 굉장히 많았다. 이야기의 흐름이 어마어마해서 작가의 서술도 그에 따라 영화처럼 끊임없이 장면들을 서술해냈다. 반면 종의 기원은 한 장면을 묘사한 곳에서 그 안에서 이뤄지는 내부 심리묘사가 상당했기에, 그리고 그 인물을 설명할 과거와 현재까지도 그 장면에서 함께 묘사되어야 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해본다.
  예전에 어둡고 음침한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게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 취향인지 아닌지를 물으면,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유진은 내 기준선에서 조금 넘어가있는 편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무섭기도 했겠지. 어쨌든 이런 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기만 했다. 으으... 멋진 작품을 읽었을 때의 기분 좋은 떨림이 쉬이 사그러들지 않는다.

 

 

"어떤 책에서 본 얘긴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는 세 가지 방식이 있대. 하나는 억압이야.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잊어버리고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양 행동하는 거.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살아. 두 번째는 항상 죽음을 마음에 새겨놓고 잊지 않는 거야. 오늘을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할 때 삶은 가장 큰 축복이라는 거지. 세 번째는 수용이래.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대.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여도 초월적인 평정을 얻는다는 거야. 이 세 가지 전략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답은커녕 생각하는 시늉조차 하기 싫었다. 그런 이상한 문제로 고민하는 것보다 그냥 죽어버리는 게 쉽고 편할 것 같았다. 해진은 스스로 대답했다.
"모두 거짓말이라는 거야. 셋 다 치장된 두려움에 지나지 않아."
"그럼 뭐가 진실인데?"
"두려움이겠지. 그게 가장 정직한 감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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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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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편의 영화였다. 더 말해서 무엇하랴. 정유정. 7년의 밤. 놀라운 서사력. 몰입감. 플롯. 이미 정평이 나있는 작품이지만, 내가 겁이 많아서 작품을 접하는 시기가 이렇게 늦어졌다. 보통 소설 작품이 영화화되는 경우가 많고, 이 작품도 그렇지만 (올해 개봉 예정이다.) 7년의 밤은 소설이 아니라, 그냥 잘 만들어진 영화를 소설로 옮겨놓은 느낌이었다.
  처음 책장을 열면서 과연 잘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무리 우수한 작품이라해도 내 우수한 산만함은 그것을 뛰어넘기 충분했다. 그래도 본의아니게 병원에 입원해있던 기간 동안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영화 캐스팅에 현수(전직 야구선수, 장신, 거구로 묘사됨) 역으로 류승룡이 올라와있길래 순간 갸우뚱했지만... (심지어 오영제 역(장동건)보다 작을 것 같다) 원작이 훼손되지 않게 잘 만들어주시리라 믿는다. 기대된다. 나는 천천히 정유정 님의 다른 장편소설에도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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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서머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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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내가 이런 장애를 겪게 된다면 구작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작가는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 이후 두 번째 시련(시각 상실)에 대해 통보받았을 때, 왜 자신에게서만 이렇게 다 빼앗아가는지,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솔직히 누구라도 그렇게 큰 장애 앞에서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여러 번 가졌었고, 아무리 밝아지려 노력해봐도 마음가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매번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놀랐다.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싶었다. 사실 귀여운 베니만 알고 있었지, 이 토끼가 그녀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매개체인 줄은 몰랐다.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친구에게 전달받으며 귀가 안들리고 이제 시각도 잃을 거란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게 작가의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만들어낸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밝은 모습을 하려 애쓰고 희망을 찾으려하는 모습이 그려졌지만, 그녀의 아픔을 알게되니 밝은 모습을 보아도 마음 한켠이 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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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원래 그래? - 남성 性을 가로지른 모리오카 교수의 성 담론
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김효진 옮김 / 리좀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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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적 무장을 하고 읽지 않으면 다소 기괴스럽고 변태스러운 느낌도 들지만, 공감가지 않는 부분은 없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다소 확대 해석한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철학적으로 틀린 소리도 아니고 그런 관찰과 사유가 다 작가가 남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분석이었기에 큰 거부감 없이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특히 내가 알고 있고 경험한 남성의 모습들이 묘사될 때,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돋을 때도 있었는데 이걸 누구한테 말하고 공감받을 수가 없어서 답답할 뿐이다. 책 내용이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너무 다른 내용이라 다소 놀라기도 했지만 절판된 후로도 오래 회자되는 책이라고 하니 이런 담론을 접해본 건 좋은 경험이지 않나 싶다. 남자들이 아주 쪼오끔 안타깝기도 하고 참 왜 저럴까 싶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다.

 

 

 

‘발기‘에서 ‘사정‘에 이르는 과정은 ‘나는 이것으로 충분해‘ 하는 충만감이 배설하는 한순간의 쾌감을 거쳐 손바닥을 뒤집듯이 허탈감과 공허감과 패배감으로 전락하는 과정이다. 이런 추락이 섹스할 때마다, 또는 자위할 때마다 나를 덮친다. 사정한 다음에는 성적인 대상은 당분간 외면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성욕이 들끓어서 같은 짓을 하고 만다. 이렇게 일생에 걸쳐 수도 없이 반복되는 추락하는 느낌, 이것이야말로 ‘남성 불감증‘의 전형적인 증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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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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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읽긴 했지만, 너무 오래 책을 안 읽었던 것 같다. 딱히 읽고 싶던 책이 없었는데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보자마자 바로 읽게 되었다. 역시나 우수한 작품들이 많았고, 감탄도 많이 하게 되었다. 수상집은 1년 동안 특별보급가 5,500원에 구매할 수 있는데, 뒷표지의 서평을 읽다가 그 5,500원이 새삼 너무 감사했다. 이런 큰 기쁨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니.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과 훌륭한 작가님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강화길 작가님은 이 작품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됐지만, 작품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이래서 이 작품집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은영 님의 작품도 그랬고, 이번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뜻깊은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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