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작가 : 서유미
출판사 : 창비
출판년도 : 2018. 7. 20
벌써 서유미 작가의 책을 들은지 세 번째다. 한 편의 책을 출간했다면, 젊은 작가에게 그 이후의 길은 그다지 잘 보장되지 않을 터. 그녀는 그 멀고 거친 길을 꾿꾿이 걸어온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책에서는 정말 전작과는 다른 느낌의 깊은 감동도 느꼈던 것 같다. 훌륭한 작가로 거듭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오셨고, 그 결과물이 좋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너무 행복해졌었다.
나는 슬프고 소시민적인 절망에 공감하며,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위로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김애란 작가도 좋아하고, 그런 통찰력을 가진 작가들을 사랑한다. 서유미 작가님도 이번 작품에선, 마치 김애란 님이 그랬던 것처럼, 묵직하면서도 무심하게 사람을 툭 건드리는 감동을 전달해주셨다. 너무 좋았다.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지 못하고 읽고 나서도 바로 잊어버리는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란 작가는 처음으로 작품의 느낌을 이미지로 전달해준 사람이었다. 책을 덮은 이후에도 꾸준히 책의 이미지와 느낌이 생각나는 것. 강렬함을 선사한다는 것이 훌륭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구나, 를 그때 깨달았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도 (비록 단편이지만) 읽고 바로 흘러나가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고 느낌이 남는 이야기들이었다.
달콤한 향과 기분좋은 느낌이 전달될 것 같지만 쇼윈도에서 바라만 보는 케익, 혹은 사자마자 바로 떨어뜨려 망가져버린 케익같은 삶을 이야기해주는 '에트르', 생존을 위해 개가 된 것 같은, 담배불로 짓이겨져도 다시 음식을 눈앞에서 흔드는 사람에게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삶이 그려진 '개의 나날', 너무 일상적이어서 일상적인지 일상적이지 않은건지 구별도 어려운, 은근한 균열이 조금씩 벌어지는 그 일상을 그려낸 '휴가', 삶의 갑작스런 추락, 변화, 삶이 내던지는 뒷모습을 갑자기 맞닥들이게 된 당혹감이 그대로 실려있는 '뒷모습의 발견', 일부러 상상할 필요 없었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행복과 평화와는 다른 모습의 삶, 그리고 그런 삶이 일상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지나감을 그려낸 '이후의 삶',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딸에서, 엄마로, 딸이자 엄마로 그 간극 속에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그려진 '변해가네'.
어느 한 작품 하나 버릴 만한 것이 없었다. 참 재밌게 읽었고, 우울하고 어두웠던 삶의 한 편에서 짧게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모두 이렇게 살아, 이런 모습들도 있어, 그렇지만 모두 무너지는 건 아니야, 다시 일어설 수 있어, 마치 그런 얘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 읽으면서 내내 고마웠다.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에만 잘못 살아왔고 잘못 살고 있다는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 속의 인물만이 현실의 나를 소리 없이 다독거렸다.
여기 너와 같은 사람이 있어. 이게 나의 실패고 진짜 얼굴이야.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내가 책을 읽는 이유였다.
- 「변해가네」
그러나 밤의 결심은 아침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낮의 후회만을 몰고 왔다. 밤의 나는 아침의 나를 증오했고 낮의 나를 겨우 견뎠고 밤을 두려워했다.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가 해는 금세 저물었고 쉽게 밤이 되었다.
"돈이 뭔지 모르겠어요." 나는 돈이 많아 넓은 집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남자가 부러웠다. "많은 걸 편하게 만들지요. 사람을 외롭게 만들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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