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의 조각 (겨울 한정 스페셜 에디션) - 불완전해서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록, 개정 증보판
하현 지음 / 빌리버튼 / 2018년 10월
평점 :
미지근한 온도로 내려앉은 믹스커피 같은 책이었다. 부정적인 뜻은 아니다. 나는 아주 뜨거운 커피보다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도 좋아한다. 뜨겁지 않아 편하고, 달달한 설탕맛과 부드러운 프림맛, 그리고 쌉쌀한 커피맛이 모두 입안에서 서서히 느껴지는 게 좋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류의 감성, 위로 에세이는 어느 순간부터 많이 즐겨보진 않지만, 이 책은 조금 더 따스하고 진솔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일부는 말을 위한 말이 되어 꾸밈이 많기도 하고, 과한 감성이 강제 투입된 것 같은 부분도 보이지만, 이 정도는 상업성을 위해서 이해해줄 수 있다.
사랑에 느리게 빠지는 사람이라는 글에는 가장 공감이 갔지만, 옮겨오기엔 지면의 압박이 있어 짧은 글로 대체했다. 아, 그리고 놀랍게도 작가가 여자인 것 같다. (최신 마케팅 방법인지, 예명을 중성적으로 많이 짓는 것 같다.) 글 속에서 성별이 뚜렷이 느껴지면, 독자들이 감성적으로 내 이야기처럼 몰입을 못할 수도 있으니 중성적인 느낌을 지향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신의 외로움을 사랑해. 외로움은 당신의 세상에 작은 틈 하나를 만들었지. 숨죽인 마음을 반으로 접으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누구도 사랑하지 않지만, 누구라도 사랑하고 싶은 날이 있다. 마음속 한구석에 조그만 구멍이 생길 때가 있다.‘
‘누군가의 표정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 시간을 나에게도 조금만 나누어 줬으면 좋겠다. 세상의 끝까지 나와 함께할 것이 분명한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니, 가장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가장 소홀하기 쉬운 나에게, 너무도 가까워 가끔 잊고 살았던 나에게 한 번쯤 물어봤으면 좋겠다. 너는 오늘 잘 지내고 있냐고. 정말 잘 지내고 있냐고.‘
‘너무 행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네가 어떤 것들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지 스스로 발견하는 일에는 애써야 해. 세상의 행복이 아닌 나의 행복을 아는 일. 그런 일들을 사치라 생각하지 않아야 해.‘
‘깜깜한 나를 보고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반짝인다 말해 준다면, 그러면 정말 거짓말처럼 작은 빛이 찾아와 나를 비추지 않을까요. 어두운 내 바다에도 한 마리 물고기가 헤엄치지 않을까요.‘
‘언제까지나 나의 세계가 지켜지기를 바라면서도, 언젠가 나의 세계를 아주 자연스럽게 침범할 누군가가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