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평점 :
아껴 읽었지만 결국 사흘 만에 다 읽었다. 낯선 작가의 이름, 그런데 왜 이렇게 책이 재밌지! 했던 박상영 작가와의 첫 만남 이후 과감하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한 그의 차기작 에세이였다. 남다른 제목만큼 역시나였다. 이 에세이는 그의 다이어트 일기로 꾸준히 지면에 연재되어왔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소식을 알바 없었고 그냥 그의 차기작이었고 왠지 이끌리는 제목이어서 바로 구매! ㅎ
읽는 페이지가 모두 내 얘기 같아서 책 온갖 구석을 다 밑줄 그어야할 판이었다. 새 책이라 참고 페이지를 메모하는데 그쳤지만, 그만큼 정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또 전작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그의 재치있음은 내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말 한마디에 센스가 넘치고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잘 아는 친구말에 따르면 실제 말하는 건 웃긴데 글이 쓸데없이 진지하다니, 아마 실제로 만나 얘기를 하면 훨씬 더 매력이 넘치는 분이실 것 같다.
젊은 작가로 주목도 받고, 자신의 책도 내고, 인기도 얻고, 모든 남성들의 꿈인 유머러스함까지 갖추고 (아마) 키도 훤칠하게 크고 젊음까지 있으시면서! 그가 늘 고민하는 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야식의 유혹이었다. 야식의 유혹이라고 하니 너무 가볍게 들리는 것 같지만, 야식이 그냥 음식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 역시도 야식과 폭식의 지난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며 살고 있지만, 그게 잠깐의 유혹이라 말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지속되는 야식은 어쨌든 식이 제한 장애가 있는 것이고 살이 찌기 위해 계획적으로 먹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괴로워할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심적,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나도 정신과를 가야겠다 확실하게 다짐한 지가 불과 1-2주도 채 되지 않았다. 정신과는 되도록이면 마지막 단계에 생각해보자 하며 하루이틀씩 견뎠지만, 지금 이 순간도 몸과 마음이 피폐해짐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하며 정말 웃픈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이 주제에 관해선 할 말이야 끝도 없이 많지만,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아무튼... 정말 내 맘 같은 책, 괜찮다, 멋있다 말해드리고 싶은 작가, 그 와중에 나를 비추는 듯한 글이어서 정말 웃기고도 슬픈 책이었다. 하하하하... ;D
핸드폰을 손에 쥐고 느릿느릿 집을 향해 걷는데 자꾸만 배달 앱이 눈에 밟혔다. 몇 번이나 지웠다가 새벽마다 다시 깔곤 했던...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의학적 차원이든 미학적 차원이든) 정상체중이라는 게 존재하고 날씬한 게 미의 디폴트인 사회에서 살이 쪘다는 것은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자에게 유달리 가혹하고도 엄격한 한국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만인은 직간접적으로 매일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폭력적인 시선에 노출된 처지인 것이다.
근데 왜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만 빼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걸까. 도대체 그 뚫린 입을 함부로 나불거릴 권한을 누가 부여해주는 걸까? ... 어쩌면 한없이 고도비만해 보이는 자들보다는 비교적 ‘정상체중‘에 가까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이 가진 한 줌의 권력을 확인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자기 관리‘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 또한 내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며, 모든 관계에서 영원을 기약하지 않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생각이 많고 다방면의 고민을 하는 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능력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끝에는 언제나 자괴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생각은 인간을 외롭고, 공허하게 만든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싫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억지로 만들어지는 루틴이 때로는 인간을 구원하기도 한다. 싫은 사람일지언정 그가 주는 어떤 스트레스가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며, 한 줌의 월급은 지푸라기처럼 날아가버릴 수 있는 생의 감각을 현실에 묶어놓기도 한다. 밥벌이는 참 더럽고 치사하지만, 인간에게, 모든 생명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생명이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바위를 짊어진 시시포스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를,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 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고,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기도 한다. 설사 오늘 밤도 굶고 자지는 못할지언정, 그런다고 해서 나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두려 한다. 다만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하루만큼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같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 이 순간을 버티고 있는 당신은 누가 뭐라 해도 위대하며 박수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비록 오늘 밤 굶고 자는 데 실패해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