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 매니지먼트 - 빠르고 창의적인 문제해결
김성희.김승래.김영한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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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위키 매니지먼트. 이 책은 서평 쓰기가 무척 어렵다. 무슨 이야기를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론에서 위키란 단어의 뜻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트리즈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다가 저자가 만든 위키 매니지먼트란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책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느낌에 한 명이 쓴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쓴 것을 조합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어떻게 보면 트리즈란 논리를 설명하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위키 매니지먼트라는 것이 별도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무엇인가 저자가 고생해서 만든 상품을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두세 번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이 책을 서평하라고 일반 독자들에게 줬을 때는 일반적인 수준의 독자가 책을 보고 이해할 수 있기에 권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읽힐 것 같지 않다. 내가 이 책을 보며 얻은 것이 있다면 책에 나온 본 주제와는 달리 ‘트리즈’에 대한 책을 사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우선 단어 자체가 생소하고, 이야기를 전계시키는 단계가 복잡하며, 여기저기서 찾은 내용들을 혼합하여 어디까지가 주제고, 어디까지가 예를 든 것이 잘 구분이 안 된다. 문장이 찾고, 책의 부피가 작다고 해서 다 쉬운 책은 아니잖는가.

나는 책을 볼 때 가능하면 책 내용을 활용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본다. 저자의 말이 맞고 틀리고는 떠나 저자가 어렵게 쓴 책이라면 무엇인가 나에게 보탬이 될 것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츨판사도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책을 만들려 하지 않겠는가. 읽히지도 않을 책을 만들어 봐야 출판사는 본전도 못 뽑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정도가 지나친 것 같다 (물론 일반화시킬 수 없는 나 혼자의 생각이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짜증날 때는 책이 책으로서 가치를 발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가진 무엇인가를 홍보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다. 쉽게 말하면 책의 본질, 즉 저자의 지식과 노하우를 저렴한 가격으로 대중에게 알려주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정보의 맛을 보여주고 ‘아쉬우면 나에게 의뢰해’하는 인상을 받을 때다.

그런 저자 몇 명 있는데 그 중의 대표가 캔 블랜차드다. 물론 그가 의도한 것인지 한국지사의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쓴 책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책에 나온 내용과 유사한 제목의 교육프로그램 안내서가 책 뒤에 붙어있다. 책을 보고 내용이 마음에 들면 보다 전문적으로 배우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의 책은 나름대로 얻는 게 있다. 캔 블랜차드 한국지사에 가서 교육을 받던 안 받던지간에 책 내용 자체에서 확실하게 한두 가지의 명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이게 누구 말이지?’ ‘뭐가 이리 복잡해?’ ‘그래서 결론이 뭐야?’ ‘결정 하나 내리는 데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돼?’ ‘이런 자료는 또 누가 만들어?’ 그러다 결론은 ‘아! 자기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보면 된다는 말 아닌가’ 다. 무척 짜증나는 상황이다. 어렵게 시간 내서 책 한 권 보고나니, 진짜 알맹이를 원하면 또 다른 자료를 찾아야 한다니...

결국 내가 얻은 것은 위키라는 일반적인 단어 뜻, 즉 이제는 개인 혼자 결정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를 위해 퍼실리테이터를 키워야 한다는 것 하나 뿐이다. 그리고 진짜 알맹이는 독자 당신 혼자 할 수 없으니까 알아서 해. 그것뿐인 것 같다.

저자는 책 내용 중에서 해결책에 대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현실 가능성을 들고 있는데 이 책에 나온 실행 방법 자체가 왠만한 사람은 실행불가능 한 것 같으니 이를 어찌 해결하라는 말인지. 아마도 내 지식과 이해능력이 무척 뒤떨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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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 박상우 산문집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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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제목 자체가 내용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듯하다. 즐거움을 위해서는 여럿이 필요하지만 나를 찾고, 내 모습을 바라보기위한 떠남은 혼자가 적당한 듯 싶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다보면 글보다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록 내가 간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보는 듯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사진을 찍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는 뜻이다.

정암사 사진을 찍으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많은 풍경 중에서 하필이면 조그마한 방 앞에 가지런히 놓은 신발들을 찍은 이유는 또 무엇이고. 나는 그 신발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신발의 주인공 모습을 상상했을 것 같다. 저 방에 들어가면 낮선 사람들이 둘러앉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고, 내가 들어가면 아마도 ‘당신 누구요?’ 하고 쳐다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럼 나는 퀴퀴한 냄새나는 그곳에 앉아있는 그들을 향해 물었을 것 같다. ‘그럼 당신들은 누구요?’ 라고.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나 나중에 들어간 나나 이방인이긴 마찬가지인데 내가 왜 그들에게 먼저 내 신분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우리 서로 동등하게 통성명 합시다“ 

노산대 오르는 길에서 본 나무뿌리. 저자는 왜 그 사진을 찍었을까. 푸른 하늘도 있고, 나무위에 앉아있는 새도 있고, 나무 곁에 부끄럽다는 듯이 살짝 고개 내민 꽃들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 사진을 찍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도 보지 못하고 땅 속 깊이 파묻인 것이 억울해 기를 쓰고 머리 내민 그들이 불쌍해서인가. 나 같으면 나무뿌리에 관심두지 않고 그냥 밟고 지나갔을 것 같다. 그런 나를 보고 그들은 틀림없이 ‘이놈아. 나를 밟고 가지마.’ 했겠지만 말이다. 나는 나무뿌리보다 연약한 담쟁이 덩굴이 더 좋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이 약해 보이지만 그래도 담과 조화를 이뤄 자연의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기에 나무들이 더더욱 내가 그들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가방하나 매고 제주도로 달려갔을 때 그 때도 나 혼자였다. 저자 말대로 가족도 없는 홀몸 신세가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이었다는 의미다. 직장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되어 가족들도 내가 무엇을 하던 다 좋다고 할 때였다.

그 때 내가 본 것은 저자가 본 것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저자처럼 장소의 역사나 야사. 숨겨진 이야기 같은 외적인 의미보다는 오로지 나란 사람만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눈에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 위에서 날아가는 갈매기, 들리는 것은 가끔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뿐이었다. 나 혼자였지만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힘들다는 생각이 더 많았고(계속 걸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가 하는 궁금증보다는 발바닥을 식힐 찬물이 더 그리웠다. 아마도 이게 전문작가와 일반인의 시각 차이인 것 같다.

저자는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놓인 돌 하나, 풀 한 포기에서 의미를 찾는다. “자유로에 자유가 없으니...”라고 저자는 말하지만 아마 내가 거기 서 있었다면 끝없이 나아가는 도로의 상쾌함과 함께 돌아갈 길에 대한 걱정을 동시에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가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혼자이기에 어디든지 떠날 수 있는 저자의 자세가 부럽고, 그의 시간이 부럽고, 생각이 부럽고, 세상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의 풍요로운 감성이 부럽다.

언젠가 나도 저자처럼 한번 떠나보고 싶다. 계획된 떠남이 아니라 아침이든 새벽이든 가고 싶다는 이유하나만으로 훌쩍 떠나보고 싶다. 그 때 이 책을 갖고 가리라. 그래서 저자가 갔던 길을 나도 걸어보며 그가 느낀 것을 함께 느껴보고 싶다. 이런 느낌 말이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절해고도와 같은 그곳에 앉아서 나는 느긋한 기분으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끝없이 펼쳐진 대양과 아득한 수평선, 한가롭게 비상하는 갈매기를 관망하며 참으로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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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러를 빌린 백만장자
마크 피셔 지음, 지소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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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크 피셔는 <게으른 백만장자>라는 책을 통해 알았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을 몇 가지의 원칙하에 재미있게 정리한 책이라, 책을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일정한 시간을 정해 자신의 꿈을 어떻게 실현할지 항상 생각하라는 말은 나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책을 읽고 얼마 안 있어 그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전편에서 본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다.

이 책에도 전편과 유사하게 백만장자가 되는 몇 가지 원칙이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자신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라’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은 얻을 수 없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라’ ‘백만장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고 이를 믿어라’ ‘자신의 꿈을 말로, 그것도 큰 소리로 외쳐라’ ‘눈앞에 시련이 닥쳐도 이로부터 자유로워져라’ ‘자신의 꿈을 잠재의식 속에 단단히 새겨라’ ‘꿈을 그렸으면 이제 그 꿈을 달성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라’ ‘스스로 확신하라. 자신은 나날이 모든 일에서 좋아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믿어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자신의 능력을 믿어라’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대부분이 자신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가능성을 인식하는 문제들이다. 저자가 이런 내용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책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도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삼촌이 소개해 준 백만장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에게 2달러를 주고 백만장자가 되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나 주인공의 모습이 무척 답답하다. 백만장자가 하는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확실하게 돈 버는 방법만 배우려 한다. 어떤 때는 왜 이렇게 사람을 믿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얼마 안 있어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란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돈을 벌고 싶으면서도 자신이 돈 버는 모습을 그리지 못한다. 백만장자를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은 그와 같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그들은 유별한 사람이고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얻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자신의 꿈을 글로 표현한 후 그것을 크게 읽으라는 내용이다. 머리로 생각하거나 글로 쓰고 그저 바라보는 것과 소리 내어 읽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주인공이 자신의 목표를 보며 불신이 생길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자 백만장자는 꿈을 크게 읽으라고 한다. 자신이 정말 백만장자가 될 수 있냐고 묻자 백만장자는 또 크게 읽으라고 한다. 저자는 소리 내어 크게 읽는 것만큼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고, 잠재의식에 자신의 꿈을 심는 방법으로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한다.

또 하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물론 계획 세우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기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꿈이 있다면, 그것의 달성기한은 분명히 정해야 하고, 기간이 확정되었다면 최소한 연도별 목표 정도는 세분화시켜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보면 부담스럽게 느낄 때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꿈을 확신하며 잠재의식에 맡기라고 한다. 그것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도록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백만장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오늘 밤 죽는다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들만의 대답이다. 대부분의 백만장자들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답변한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의 일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먹고 살기 위해 마지못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면 우선 그 일, 죽음이 다가와도 계속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급선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온 문장 두개다. 이 문장은 꼭 기억해 두고 싶다.

“기억하게. 하늘 높이 올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구름이 없어진다네. 만일 자네의 인생에서 구름이 햇빛을 가리면 그것은 자네의 영혼이 높은 것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해결을 잘못 택하고 있네. 그들은 언제나 구름을 걷으려고 애쓰거나. 마법처럼 날려보내려 하지. 물론 그렇게 하면 일시적으로 구름을 치울 스도 있겠지. 그러나 구름은 언제라도 다시 나타나 빛을 가릴 수 있어. 자네가 해야 할 일은 구름을 뜷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걸세.”

“스스로의 삶과 정신력을 믿으면 걱정할 것은 없다네. 우선 목표부터 정하고 부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잠재의식에게 부탁하면 되지. 일단 부탁해 보게. 그리고 기다리게. 대답이 돌아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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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시에는 음악만이 유일한 안식처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빽판(원판을 복사한 판으로 조악하지만 그래도 들을만했다.)을 주로 사서 그것을 헤드폰을 끼고 밤 새워 들었다. 그 순간은 입시공부에 쪼들은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아니라 수많은 청중을 앞에 두고 미친듯이 연주하는 뮤지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심취했던 음악 중에서 지금도 곡조가 완벽하게 기억나는 것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리냐드 스키냐드의 ‘프리버드’다. 특히 ‘프리버드’는 전자기타 4대가 동시에 뿜어내는 애드립으로 유명한 노래인데, 그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일반적인 록밴드는 리듬기타 하나, 리드 기타 하나로 연주하지만 리냐드 스키냐드는 3대의 전자기타로 연주했고, 더욱이 이 노래는 리드기타 하나가 더 추가되어 세 개가 각자 다른 음으로 애드립 연주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원을 마칠 때 갑자기 귀가 안 들리게 되어 그 다음부터는 음악을 듣지 못했다.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상황에서 음악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었고, 보청기를 낀 상태에서는 음악을 들어봐야 예전처럼 정확하게 음색을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천장이 넘는 백판을 다 버리고 그렇게 아끼던 기타, 드럼도 내다 버렸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노래는 1980년대 말까지다. 요즘 가끔 내 아이가 “아빠. 이 노래 알아?” 하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이 제목 자체를 처음 듣는 노래다.

내가 지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회사를 그만둔 다음부터 겪게 된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퇴사 후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하루 종일 보청기를 끼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귀에 무리도 없고, 몸도 많이 편안했다. 게다가 하루 종일 확성기 같은 것을 끼고 따지고, 싸우고, 논쟁할 필요도 없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삶인가. 

나는 퇴사하고 6개월 쯤 지난 후, 큰 마음먹고 좋은 헤드폰을 하나 사 음악을 들어봤다. 그 동안 귀가 많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근데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노래를 듣다말고 울어 버렸다. 헤드폰에서 들리는 소리, 볼륨을 최대한 키웠고, 귀도 많이 안정되었기 때문인지 오래 전에 듣던, 거의 원음에 가까운 음악 소리가 나를 감동시켰다. 가수의 고음 하나가 막혔던 혈관을 뚫어주는 것 같았고. 드럼의 베이스북 소리가 심장을 강하게 두들기는 듯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 이런 소리를 몇 십 년 동안이나 못 듣고 살았다니...“ 하는 탄식이 나왔다. 내가 아무리 음악을 좋아했더라도 그까짓 흘러간 유행가 몇 곡 들으면서 눈물까지 흘릴 줄은 몰랐다. 음악이란 것이 이토록 강렬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순간이다.

근데 그 후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밤에 자고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잠에 취해 화장실 같다가, 내 방으로 가 컴퓨터를 부팅하고, 부엌에 가 커피 한잔 타서 다시 방으로 돌아와 마실 때까지도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는 채 계속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떤 때는 찬송가를, 어떤 때는 나훈아, 남진스타일의 뽕짝을, 어떤 때는 팝송을, 그리고 어떤 때는 몇 개 알지도 못하는 가곡이나 클래식음악이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잠에서 깨어 흥얼거리는 게 아니라 꿈속에서도 계속 노래 불렀던 것을 잠에서 깬 바람에 알게 된 것은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생각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노래소리는 계속 들렸다. 마치 내 옆에 라디오가 켜 있는 것처럼 가수의 목소리, 반주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들렸다. 근데 희한한 것은 조금 늦게, 그러니까 아침 6시나 7시정도에 깨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흥얼거리는 모습은 이른 아침, 새벽 4~5시쯤에 깰 때만 생긴다. 

‘이게 뭘까?’ ‘내가 왜 이러지? 혹시 정신병????’ 어떤 때는 그런 내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근데 그 이유를 이 책 <뮤지코필리아>에서 찾았다. 저자는 어느 날인가 음악과 관련된 꿈을 꾸었는데 그 때 들리던 음악소리가 하루 종일 계속 되었다고 한다. (나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 나는 몇 시간 그러다가 그만두는데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저자에게 그 노래를 흥얼거려 보라고 했고, 그 노래를 들은 친구는 저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최근에 어린 환자를 포기한 적 있어? 아니면 문학 책을 버렸거나?” 근데 놀라운 것은 저자에게 두 가지 일이 모두 있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마음이 연주하는 곡은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야.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지.”

저자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랬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라면 노래를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의 상황은 자신의 마음이 꿈속에서 전날 있었던 사건에 딱 어울리는 상징물을 정확하게 찾아내 이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친구가 그 상황을 해석한 순간, 음악이 사라졌다고 한다.

근데 저자가 나중에 알고 보니 저자와 같은 상황, 즉 꿈에 음악을 듣고 그 노래가 하루 종일 계속 들리거나 ,어느 순간 갑자기 소음도 아닌 완벽한 하나의 노래가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별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나처럼 몇 시간 계속되다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몇 날, 몇 해 동안 그것도 하루 종일 쫓아다니는 바람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다. 심하면 'Off' 스위치가 없는 전축 하나를 갖다 놓은 것처럼 되어 잠도 이룰 수 없는 상황까지도 간다. 이것을 ‘환청’이라고 한다.

저자는 환청 때문에 고통을 겪는 한 부인의 증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녀의 환청이 정신병의 징후가 아니라 신경의 문제로 일어나는 것이며, 이른 바 ‘방출환각’이라고 대답했다. 청각 장애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입력을 차단당한 대뇌의 청각 피질 일부가 자발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대부분 그녀가 예전에 들었던 음악 기억으로 구성된 음악 환청의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뇌는 끊임없이 활발하게 활동할 필요가 있고, 청각이든 시각이든 정상적인 자극을 더 이상 받지 못하면 자체적으로 자극을 만들어 낸다.”

결국 청각장애니 소리가 단절된 상황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소리를 관장하는 뇌를 사용하지 않으면 인간의 뇌는 자기 스스로 이를 사용하려 하고, 그 결과 환청이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란젤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오랫동안 신경성 난청을 겪었습니다. 가족 내력이지요. 음악 환청 증세는 난청에 수반되는 감각 과민증과 관련되지 않나 싶습니다. 중추청각의 경로가 과하게 작동해서 소리를 증폭시키는 겁니다.”

결국 내가 퇴사 후 듣게 된 일종의 환청은 예전에 비해 청각신경의 사용을 줄임으로써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과거처럼 무리하게 뭔가를 들으려 하지 않지 않고, 혼자 일할 때는 보청기도 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상상이나 정신병이 아니고, 실제 음악을 들을 때 사용하는 뇌가 자가 발전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환청(일상생활을 못할 정도의 환청)이 생기면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하기 어렵다고 한다. 뇌가 움직이는 것이지만, 이들의 뇌는 모두 정상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이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뇌 활동 자체를 죽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 뇌를, 그것도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대뇌부분을 죽일 수 있겠는가. 

정신과 의사 엔터니 스토어는 <음악과 마음>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부른 적도 없고, 어쩌면 원하지도 않았을 음악이 머릿속에 울려대는 것은 대체 무슨 목적 때문일까?”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해 “그런 음악이 대체로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결론지었다. 즉 “지루함을 달래고 몸동작을 한층 더 리드감 있게 만들어 주고 피로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들려오는 소리는 일종의 꿈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기에 당사자가 그냥 지나치거나 억누르고 말았을 생각을 다시 살펴보게 해 준다고 한다. 즉 자기 뜻과는 달리 들려오는 노래 소리는 논리나 이성으로 판단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당사자에게 ’이로우며‘ 일종의 ’생물학적 적응‘이라는 것이다.

음악은 논리적이지 않다. 어떤 특정의 의미를 담고 있지도 않고, 색깔도 없다. 게다가 문자처럼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들으면서 자기 스스로가 느끼고 이해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음악만큼 인간의 감정과 밀접한 것도 없는 것 같다. 내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말보다는 리듬이고, 그것이 바로 음악이다.

나는 앞으로는 잠에서 깬 후 뭔가를 흥얼거리고 있으면 그 노래를 기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노래가 나에게 게시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당시 내가 모르는 내면의 어떤 감정을 나에게 일깨워주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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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셔스 샌드위치 - 서른살 경제학 유병률 기자가 뉴욕에서 보내온 컬처비즈에세이
유병률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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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씽크전략>을 보면 트로이목마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그리스와 트로이간의 전쟁 때, 트로이사람들이 말을 중요시 여긴다는 오디세우스의 생각에 따라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그 속에 병사를 숨겼던 것이다. 그러나 트로이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마치 신의 선물처럼 생각해 이를 성안으로 끌어들였고, 그 때 그리스군대가 기습공격을 한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구지 하는 이유는 트로이목마라는 작전이 무척 기발 난 생각이었지만 당시 총 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이 문화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채택하기 어려웠던 전술이었다. 생각해 보라. 만약 그리스가 만든 목마를 트로이사람들이 홧김에 불질러 버렸다면  그 안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불에 타 죽을 것 아닌가. 당신 같으면 이런 예상 속에서 쉽게 승낙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총사령관은 이를 기꺼이 승낙했고, 결과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 <드릴을 팔려면 구멍을 팔아라>는 책을 보면 마케팅의 기본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즉 고객이 물건을 사는 것은 상품이 주는 가치가 자신이 지불하는 가치(Value)보다 클 때라고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중요한 것은 고객의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점인데, 이를 아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고객이 지불하는 가치는 단순히 얼마짜리 상품이라는 화폐개념을 넘어 자신이 상품을 고르는 시간, 이동하는 비용, 상품을 사고 산 다음의 만족감, 처리방법, 남들의 인정 등 다양한 변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문화, 경영자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트렌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요즘 우리가 자주 듣는 메가트렌드, 마이크로트렌드가 모두 인간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가치)을 나눠 갖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화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가치체계이자 행동방식이다.

이 책 <딜리셔스 샌드위치>는 이와 같은 문화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가정 하에서 문화를 적극 향유하는 미국인, 특히 뉴욕의 모습과 문화향유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만을 설명한다.

책 내용을 읽어보면 무척 재미있다. 예를 들어 뉴욕이 왜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CEO도 세월 따라 모습이 바뀐다는 주장.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은 직장으로 인정되는 구글의 직원모습, 또 동일한 오페라가 왜 뉴욕에서는 성공했고, 한국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 날이 갈수록 경영학이 인문학에 밀릴 수밖에 없는 시대적 배경 등 독자들이 관심 갖고 읽을 만한 소재들이 많이 들어있다.

특히 현 CEO들이 직원들에게 창의성을 갖고, 남다른 생각을 하라는 지시에 대한 비판은 독자로 하여금 막혔던 하수구가 뻥하고 뚫리는 듯 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창의성을 키우라고 하면서 출장 가서도 오직 일만 하기를 바라고, 색 다른 안건을 내라면서도 맨 날 책상 앞에서 일하는 시늉만 하길 바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가 한 말을 한 번 보자.

“CEO이든 임원이든, 높은 사람들이 깃발 움켜쥐고 나서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창조경영이나 이노베이션이니 하는 게 바람잡는다고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차라리 안 나서고, 어떤 캐치플레이즈도 안 내세우는 게 먹히는 시대입니다. 카리스마가 눈곱만큼도 없어야 진짜 카리스마가 나온다는 얘깁니다.”

그는 자신이 문화를 알자고 하는 이유가 영화 몇 편 더 보고, 연극관람하고, 비싼 돈 써 가며 오페라 구경 가자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마인드를 배우자는 것이다. 그는 문화적 마인드를 이렇게 표현한다.

“문화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질적인 것, 자신이 경험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포용력과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유연성과 포용력,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창조성이다. 즉 내 것을 떠나 남의 것과 자신의 것을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 세상에 없던 것을 찾기보다 기존의 것을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것은 저자의 말들이 옳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문화라는 개념을 너무 넓게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보면 뭐든 것이 다 문화이고, 문화 없이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화적 마인드가 포용성이나 유연성을 강조한다는 말은 조금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왜냐하면 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이 유전자 같기에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폐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의 생각을 ‘문화적 마인드’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문화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하는 데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 말을 잘못 오해하면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은 무조건 개방적이고, 사고가 유연해 진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를 아는 것과 개방성과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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