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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 박상우 산문집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제목 자체가 내용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듯하다. 즐거움을 위해서는 여럿이 필요하지만 나를 찾고, 내 모습을 바라보기위한 떠남은 혼자가 적당한 듯 싶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다보면 글보다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록 내가 간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보는 듯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사진을 찍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는 뜻이다.
정암사 사진을 찍으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많은 풍경 중에서 하필이면 조그마한 방 앞에 가지런히 놓은 신발들을 찍은 이유는 또 무엇이고. 나는 그 신발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신발의 주인공 모습을 상상했을 것 같다. 저 방에 들어가면 낮선 사람들이 둘러앉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고, 내가 들어가면 아마도 ‘당신 누구요?’ 하고 쳐다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럼 나는 퀴퀴한 냄새나는 그곳에 앉아있는 그들을 향해 물었을 것 같다. ‘그럼 당신들은 누구요?’ 라고.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나 나중에 들어간 나나 이방인이긴 마찬가지인데 내가 왜 그들에게 먼저 내 신분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우리 서로 동등하게 통성명 합시다“
노산대 오르는 길에서 본 나무뿌리. 저자는 왜 그 사진을 찍었을까. 푸른 하늘도 있고, 나무위에 앉아있는 새도 있고, 나무 곁에 부끄럽다는 듯이 살짝 고개 내민 꽃들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 사진을 찍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도 보지 못하고 땅 속 깊이 파묻인 것이 억울해 기를 쓰고 머리 내민 그들이 불쌍해서인가. 나 같으면 나무뿌리에 관심두지 않고 그냥 밟고 지나갔을 것 같다. 그런 나를 보고 그들은 틀림없이 ‘이놈아. 나를 밟고 가지마.’ 했겠지만 말이다. 나는 나무뿌리보다 연약한 담쟁이 덩굴이 더 좋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이 약해 보이지만 그래도 담과 조화를 이뤄 자연의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기에 나무들이 더더욱 내가 그들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가방하나 매고 제주도로 달려갔을 때 그 때도 나 혼자였다. 저자 말대로 가족도 없는 홀몸 신세가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이었다는 의미다. 직장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되어 가족들도 내가 무엇을 하던 다 좋다고 할 때였다.
그 때 내가 본 것은 저자가 본 것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저자처럼 장소의 역사나 야사. 숨겨진 이야기 같은 외적인 의미보다는 오로지 나란 사람만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눈에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 위에서 날아가는 갈매기, 들리는 것은 가끔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뿐이었다. 나 혼자였지만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힘들다는 생각이 더 많았고(계속 걸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가 하는 궁금증보다는 발바닥을 식힐 찬물이 더 그리웠다. 아마도 이게 전문작가와 일반인의 시각 차이인 것 같다.
저자는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놓인 돌 하나, 풀 한 포기에서 의미를 찾는다. “자유로에 자유가 없으니...”라고 저자는 말하지만 아마 내가 거기 서 있었다면 끝없이 나아가는 도로의 상쾌함과 함께 돌아갈 길에 대한 걱정을 동시에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가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혼자이기에 어디든지 떠날 수 있는 저자의 자세가 부럽고, 그의 시간이 부럽고, 생각이 부럽고, 세상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의 풍요로운 감성이 부럽다.
언젠가 나도 저자처럼 한번 떠나보고 싶다. 계획된 떠남이 아니라 아침이든 새벽이든 가고 싶다는 이유하나만으로 훌쩍 떠나보고 싶다. 그 때 이 책을 갖고 가리라. 그래서 저자가 갔던 길을 나도 걸어보며 그가 느낀 것을 함께 느껴보고 싶다. 이런 느낌 말이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절해고도와 같은 그곳에 앉아서 나는 느긋한 기분으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끝없이 펼쳐진 대양과 아득한 수평선, 한가롭게 비상하는 갈매기를 관망하며 참으로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