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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셔스 샌드위치 - 서른살 경제학 유병률 기자가 뉴욕에서 보내온 컬처비즈에세이
유병률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6월
평점 :
<빅씽크전략>을 보면 트로이목마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그리스와 트로이간의 전쟁 때, 트로이사람들이 말을 중요시 여긴다는 오디세우스의 생각에 따라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그 속에 병사를 숨겼던 것이다. 그러나 트로이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마치 신의 선물처럼 생각해 이를 성안으로 끌어들였고, 그 때 그리스군대가 기습공격을 한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구지 하는 이유는 트로이목마라는 작전이 무척 기발 난 생각이었지만 당시 총 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이 문화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채택하기 어려웠던 전술이었다. 생각해 보라. 만약 그리스가 만든 목마를 트로이사람들이 홧김에 불질러 버렸다면 그 안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불에 타 죽을 것 아닌가. 당신 같으면 이런 예상 속에서 쉽게 승낙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총사령관은 이를 기꺼이 승낙했고, 결과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 <드릴을 팔려면 구멍을 팔아라>는 책을 보면 마케팅의 기본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즉 고객이 물건을 사는 것은 상품이 주는 가치가 자신이 지불하는 가치(Value)보다 클 때라고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중요한 것은 고객의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점인데, 이를 아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고객이 지불하는 가치는 단순히 얼마짜리 상품이라는 화폐개념을 넘어 자신이 상품을 고르는 시간, 이동하는 비용, 상품을 사고 산 다음의 만족감, 처리방법, 남들의 인정 등 다양한 변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문화, 경영자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트렌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요즘 우리가 자주 듣는 메가트렌드, 마이크로트렌드가 모두 인간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가치)을 나눠 갖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화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가치체계이자 행동방식이다.
이 책 <딜리셔스 샌드위치>는 이와 같은 문화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가정 하에서 문화를 적극 향유하는 미국인, 특히 뉴욕의 모습과 문화향유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만을 설명한다.
책 내용을 읽어보면 무척 재미있다. 예를 들어 뉴욕이 왜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CEO도 세월 따라 모습이 바뀐다는 주장.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은 직장으로 인정되는 구글의 직원모습, 또 동일한 오페라가 왜 뉴욕에서는 성공했고, 한국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 날이 갈수록 경영학이 인문학에 밀릴 수밖에 없는 시대적 배경 등 독자들이 관심 갖고 읽을 만한 소재들이 많이 들어있다.
특히 현 CEO들이 직원들에게 창의성을 갖고, 남다른 생각을 하라는 지시에 대한 비판은 독자로 하여금 막혔던 하수구가 뻥하고 뚫리는 듯 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창의성을 키우라고 하면서 출장 가서도 오직 일만 하기를 바라고, 색 다른 안건을 내라면서도 맨 날 책상 앞에서 일하는 시늉만 하길 바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가 한 말을 한 번 보자.
“CEO이든 임원이든, 높은 사람들이 깃발 움켜쥐고 나서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창조경영이나 이노베이션이니 하는 게 바람잡는다고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차라리 안 나서고, 어떤 캐치플레이즈도 안 내세우는 게 먹히는 시대입니다. 카리스마가 눈곱만큼도 없어야 진짜 카리스마가 나온다는 얘깁니다.”
그는 자신이 문화를 알자고 하는 이유가 영화 몇 편 더 보고, 연극관람하고, 비싼 돈 써 가며 오페라 구경 가자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마인드를 배우자는 것이다. 그는 문화적 마인드를 이렇게 표현한다.
“문화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질적인 것, 자신이 경험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포용력과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유연성과 포용력,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창조성이다. 즉 내 것을 떠나 남의 것과 자신의 것을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 세상에 없던 것을 찾기보다 기존의 것을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것은 저자의 말들이 옳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문화라는 개념을 너무 넓게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보면 뭐든 것이 다 문화이고, 문화 없이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화적 마인드가 포용성이나 유연성을 강조한다는 말은 조금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왜냐하면 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이 유전자 같기에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폐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의 생각을 ‘문화적 마인드’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문화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하는 데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 말을 잘못 오해하면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은 무조건 개방적이고, 사고가 유연해 진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를 아는 것과 개방성과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