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여정
존 번연 지음, 박영호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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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천로역정>은 운 좋게도 몇 번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주일 학교 때도 간단한 내용을 접했고, 몇 해전에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보기도 했다.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가장 많이 인쇄된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우화 형식의 내용이라는 점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가장 어리석은 편견인데, 천성을 향해 가는 주인공의 여정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에 우화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를 진득하게 읽어볼 생각을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읽지 않을 수 없는 매가지에 몰린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빨리 읽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동시에 지금이라도 읽게 된 행운에 대한 감사가 흘러나왔다.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자신이 겪은 회심의 과정을 바탕으로 구성한 일종의 우화로, 청교도 운동에 열정적이었던 그가 감옥 생활을 하면서 쓴 책이다. 1부에서는 크리스천의 천국을 향한 여정을 다루고, 2부는 그의 아내 크리스티아나와 네 아들의 순례길에 집중한다. 


멸망의 도시에 살던 크리스천은 복음 전도자를 만나 진노를 피하라는 안내를 받고 주위에 설파하지만 가족까지 그를 비방하자 홀로 고민하다가 천성을 향해 길을 떠난다. 처음에는 무줏대와 외고집이 그와 함께 호기심에 함께 하지만 이내 그들은 포기하고 되돌아가고, 크리스천은 혼자서 짐을 잔뜩 지고 길을 떠난다. 여정의 시초에서 만난 세상의 지혜자는 그에게 짐을 벗기 위해서는 도덕을 찾고 율법이나 예절을 고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그 날카로운 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면서 다시 복음 전도자의 도움으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는 그의 안내에 따라 좁은 문에 다다라 문을 두드리고 거기서 율법과 복음의 은혜가 어떤 관계인지 청소를 통해 배운다. 율법이 닦을 수록, 청소를 한다지만 먼지를 일이키는 것과 같다면, 복음은 먼지를 가라앉히는 물과 같다는 점을 듣게 된다. 다시 힘을 가다듬은 그는 구원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이르고 거기에서 짐을 벗게 된다. 이후 멸망의 도시의 왕인 아볼루온과의 결투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그는 신실을 만나 함께 허영의 시장에 가게 된다. 모든 것이 거짓 진리의 허영 뿐인 그곳에서 유일하게 진리를 구하다가 그들은 엉터리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고 신실은 사형 선고를 받는다. 처형된 신실과 달리 기적적으로 그곳을 빠져 나온 크리스천은 이후 소망을 만나게 되지만 경계심이 풀려 넓은 길로 갔다가 의심의 성에 사는 절망 거인 부부에게 걸려든다. 거기서도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게 되는데, 기쁨의 산에서 지식, 경험, 경계, 성실의 목자들을 만나 천성의 일부를 보게 된다. 


이후 무지, 무신론자 등을 만나면서 주춤하지만, 끝끝내 천성의 바로 앞 기쁨의 땅 쁄라에 이르고 요단 강 앞까지 이른다. 믿음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는 요단강 앞에서 그는 두려움에 빠지지만 소망의 확고하고도 끈질긴 도움으로 천성에 입성하게 된다. 


크리스티아나 역시 남편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천성으로 향해 나아가는데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 은밀한 도움을 받아 끝내 천국에 이르게 된다. 


천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물은, 존 번연이 실제 신앙 생활 가운데 만났던 이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신앙을 망치고 열매 맺지 못하도록 하는 다양한 양태에 이름을 붙여 신앙의 성장 과정 중 어디에서 출몰하게 되는지 정확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더욱이 나의 신앙은 지금 어떤 양태로 변질되고, 어떤 방해를 받고 있는지 따끔한 경고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그 바탕에는 다양한 장면마다 그에 맞는 성경 말씀과 인물들의 양태가 소개되어 있기 때문. 


이 책의 강점은 소명, 중생, 회심, 믿음,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로 이루어진 구원의 서정을 말씀을 따라 분명하게 그려내면서도 우화 속에 나타난 다양한 인물이 나타내는 의미를 분명하게 분석하고, 신앙의 제 문제들을 함께 토론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책의 말미에 연구 지침서를 실었다는 것이다.


또 존 번연의 일대기를 세밀하게 수록하여 이 책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존 번연이라는 위대한 작가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소중한 믿음의 대가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이를 모두 엮어 명작 탄생으로 이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승전결 형식의 스토리가 뚜렷하지 않아 내용을 한꺼번에 각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책의 서두에는 크리스천의 여정을 그림으로 그려 제시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각 장이 어느 지점, 어느 좌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면인지 쉽게 그려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성도가 읽어야 할 기독교 고전을 넘어서 인간이 육적인 존재에서 영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한편, 인간의 실존이 어떤 상태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데서 출발하므로 왜 이해와 논리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저는 제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무거운 짐으로부터 편안함을 얻는 것입니다...중략..저쪽을 보시오 저 도덕이라는 마을에는 율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매우 판단력이 뛰어나고 당신처럼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짐을 벗도록 돕는 능력이 있어 명성이 뛰어난 분이지요. ..중략 크리스천은 율법 씨의 집을 찾아가 도움을 얻기 위해 길을 바꿨다. 그런 그가 힘들게 언덕까지 갔을 때 그 언덕은 매우 높아 보였고 길가에 솟아 있는 언덕 측면이 상당히 돌출되어 있어 언덕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더 앞으로 나아가기 두려웠다...중략..그가 길을 바꾸어 오는 동안 등에 진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갑자기 언덕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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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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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삼성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님께 24가지 질문을 보내게 되고, 이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적임자로 여겨진 정의채 신부님께 건네진 편지의 복사본을 받게 된 후 차동엽 신부님이 질문을 재구성하여 답한 일종의 질의 응답서라고 할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으며 신은 왜 우리에게 고통과 불행을 주었는지, 종교는 과연 필요한지, 영혼은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지, 신앙이 없어도, 악인도 부귀를 누리는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지, 기독교 믿음이 강한 공동체에서 왜 범죄가 많고 공산주의가 득세할 수 있었는지 등 죽음에 직면해 평소 궁금해 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이 질문들에 직독직답하는 대신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질문을 Big Q로, 동시대인으로서 느끼는 질문을 Real Q로 표현하고 생명의 몸살, 고독한 영혼의 초월 본능, 내 인생의 비밀 코드, 피할 수 없는 물음 등 4가지의 소 주제 하에 질문을 재구성하고 배치해 답변을 이어나간다. 


생명이 깃들면서 시작되는 고통, 불안과 두려움, 분노, 선악과 부의 누림 등을 먼저 훑은 후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마주하는 고독, 사회적 현상 등을 분석한다. 이후 신과의 조우를 추적하면서 삶의 의미와 연계시킨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앞두고 천국과 지옥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정 자유로운 삶과 지구의 종말 등 인생과 세상의 종결 지점에서 파생하는 절박한 질문들에 대해 응답한다. 


공학도 출신의 신부님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인과론식 현실적 실례와 초월적 신앙을 적절히 조화하여 이해하기 쉽게 각 장의 답변을 채워나간다. 


다른 여느 신학 서적과 달리 고통의 문제를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결과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고통의 문제는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3차원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겪는 자연 발생적인 결과라고 규정하면서, 다만 고통은 보호, 단련, 정신적 성장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설명한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고통 속에서 희망을 품고 희망을 말할 때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힘들 때는 잠깐 짐을 내려 놓고 정지 시간도 누려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현실을 바꿀 수 없어도 현실을 보는 눈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불안과 두려움은 희망을 가진 인간이 가진 특권임을 선언하면서 인간이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불행을 겪더라도, 이것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부에 대하여는, 부는 악이라고 단순히 인식하는 것이 아닌, 선을 행할 기회로 간주해야 하며 행복은 발생하는 것이지 쟁취하는 것이 아니기에 행복을 먼저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또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물질로만 채워질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점을, 인간 존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면서 설명한다.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학문의 깊이와 결과에 빗대어 숱한 역사의 심판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은 종교의 기능과 진정성을 일축하는 어리석음에 선동되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강하게 주장한다. 


천국과 지옥, 부귀한 악인의 득세 등과 관련하여 파스칼의 갈무리도 들려준다. 천국과 지옥을 확률로 생각하도록 권고하면서, 죽어 보니 천국도 있고, 하나님도 있다면 생전에 어떤 편을 선택해야 지혜로운 것인지 냉정하게 살피도록 한다. 범죄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조사하면 비종교인에게서 범죄 비율이 높게 나온다는 통계를 들면서 오히려 종교로 인하여 범죄가 억제되고 있는 측면이 있음을 실증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목적론적, 우주론적 논증을 소개하면서 칸트의 실천이성을 빌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특히 물리학을 예로 들어 우주는 현재 11차원까지 파악되었다는 사실과 대비하여, 3차원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체험가능성과 파악불가능성의 괴리가 무한대로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신의 창조는 자연 세계를 통해서, 또 죽음의 현장에서 남긴 증언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점,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수단 가치가 아니라 목적 가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창조와 진화에 대한 대담도 흥미롭다. 베이컨의, 약간의 과학은 사람을 하나님에게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만, 더 많은 과학은 그를 하냐님께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는 고백이 어우러져 있다. 


고통받지 않는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없다는 본 회퍼의 신앙을 통해, 배신하고 타락할 수 있는 자유의지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역설을 되새긴다. 


너무 진중하지 않으면서도 성마르지 않게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해 꼼꼼하게 답변하기에, 평소라면 쉽게 사유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기쁨이 있다. 다만, 24가지 질문에 대하여 고지지식할 정도로 순서대로 응답하는 서술 방식은 어떠했을까 싶기도 하다. 질문의 배치와 재구성 방식으로 편집된 탓에 어쩔 수 없이 답변 내용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배반, 모반, 심지어 거부까지 감수하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갖는 속성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속성상 함께 아파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중략..하나님께서 스스로 고통을 모르면서 인간의 고통에 동참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인간과는 무관한 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중략..이를 나치 시대에 암살범으로 몰려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통 받지 않는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역설입니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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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 연습 : 국내 최초 완역본 - 단조로운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로렌스 형제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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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궁극적인 결과는 성화라고 얼핏 듣기는 했지만, 성화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늠하기에는 일천한 믿음을 갖고 있기에 항상 그 구체적인 실상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물론 성경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성화의 모습을 어느 정도 추상할 수는 있었지만, 일상에서 하릴없이 부유하고 있는 습관적인 또는 문화적인 믿음(?)을 관통하는 어떤 모범을 마주하고 싶은 것은 모태 신앙을 가진 나에게는 어떤 갈망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로렌스 형제는 나의 오랜 소원을 한번에 성취해 준 본보기인 동시에 나의 믿음이 표류하는 까닭을 정확히 짚어주는 메트로놈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이 책은 맨발의 까르멜수도회에서 부엌 일이나 잡다한 일들을 맡아 행하던 로렌스 형제와 드 보포르 대수도원장이 주고 받은 편지, 그리고 로렌스 형제가 남긴 메모 등을 모아 그의 사후에 출간한 것으로, 어떻게 소박하고 굳건한 믿음으로 일생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임재를 맛보는 영광된 삶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로렌스 형제는 가난한 가문에서 태어나 잠시 전쟁에 나가 군 복무를 하기도 하고, 은행가의 사환으로 근무하기도 했지만, 세속을 떠나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수도원에 귀의한다. 세상의 이력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그는 수도원에서도 허드렛일을 맡아 처리하는 데 그의 믿음에 수도원장은 물론 주변 성도들이 감탄한다. 한마디로 그의 믿음은 꾸미는 말이나 위선적인 행동을 벗어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않은 방법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었으며, 믿음의 실력은 결국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내가 아니라 한나님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며 하나님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가르친다. 


로렌스 형제의 글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의 모든 믿음의 발로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일 것 같다. 주인의 말을 듣는 종의 위치에서 수행하는 복종을 넘어서서 사랑하기에 나를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순종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의 행적을 쫒으면 당연하게 터득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그가 골방에 앉아 몇 시간 씩 기도하는 대신 일상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시라면 이 상황에서 내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묻는 질문보다 오히려 그의 대화는 수많은 기쁨과 감사, 영광스러움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잇었다는 점. 


심리학적 긍정성과 다른 점은, 그는 싫고 좋은 것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하나님께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모든 언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그는 그의 육체적 고통과 그에 대한 자신의 대응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까 고민하느라,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정말 아픈 것인가 의심할 정도였다니 영성이 육체의 고통에만 몰입하지 않도록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계시고 오직 믿음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는 것에 익숙하라는 당부와,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우리를 정화시키시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의 문을 두드리는 한편 하나님을 아는 것을 본분으로 삼으라는 격려는 잠잠하면서도 강력한 일침이 된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는 불신앙과 죄악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대화해야 하며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급함과 충동성을 버리고 부드럽고 차분하게 행동하며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하며 나의 모든 수고를 받아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이러한 모든 행위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항상 어떤 미덕이 필요하고 어떤 죄악에 쉽게 넘어지는지 주의 깊게 살피라고 다진다. 


하나님을 혼자 계시게 하지 말라는 역설에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느껴진다. 그는 천상의 보좌를 버리고 죄인과 함께 하고 싶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기에, 그 믿음의 행보는 도전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기의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시때때로 너무나 적은 믿음을 보여 주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각종 규율과 행실에서 믿음을 취하는 대신, 날마다 변덕스럽게 오락가락하는 수준 낮은 헌신에 기대는 모습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기본 정신이요, 아주 높은 수준의 완전함으로 우리를 인도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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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지리의 힘 1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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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주장에 빗대어 본다면 이 책의 저자는 지리, 즉 땅이 우리의 정치, 경제, 역사 등 삶의 좌표를 상당 부분 결정한다고 단언한다. 산맥, 하천망 등 지리적 요인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며, 기후, 인계, 통계, 문화, 지역, 천연 자원에 대한 접근성 등 또한  총체적으로 지정학적인 지리적인 요인에 포섭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요인들을 바탕으로 국제적 현안을 접근할 때 현상의 실체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책 전반에 걸쳐 사례를 들어 실증한다. 


저자는 해양 강국을 꿈꾸며 다양한 민족을 통합하고 영유권 분쟁을 마다 않는 중국의 속내, 지리적으로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한편 막강한 해군력, 에너지 자급 자족 등을 내세우며 패권을 휘두르는 미국, 지리의 이점과 단점에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유럽연합, 넓은 지형과 풍부한 천연 자원이 있어 주변국을 상대로 경제 전쟁을 필살기로 내세우지만 부동항이 없어 해상권 장악에서 미흡한 러시아, 높은 산맥과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발전이 저해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후 풍부한 자원과 광활한 지리적 요건이 오히려 분쟁의 요건이 되고 있는 아프리카, 종교와 지리, 강대국의 계산속 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과 경쟁에 영향을 미친 지리적 특성, 북극을 둘러싼 각국의 첨예한 경제 및 외교의 실상 등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지정학적 세계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한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입장은 아무래도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한반도의 위치와 군사 기지 등의 지정학적 현실을 살피다보면 한반도 긴장에만 집중할 수 없는 것이 대만과 중국의 갈등이 가시적으로 촉발되는 시점에서 제주도를 기점으로 강대국 간 전선이 우리 나라에서 형성될 수도 있다는 추론마저 들었다. 북한의 위협 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긴장 상태를 면밀하게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각성할 수 밖에 없다. 


저자가 2편을 통해서 드러낼 지정학적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통찰력 있는 대담한 시각과 근거 중심의 설득력 높은 자료들이 어떤 하모니를 보여줄 것인지 기대된다. 또 저자가 책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듯이 단순히 지리뿐만 아니라 인구 특성, 기후, 문화 등의 지정학적 측면을 고려할 때 세계 각 지역의 운명을 어떻게 예측하고 진단할 수 있을 것인지 보다 총체적인 연구서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실제로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오늘날 국제 문제를 다룬 보고서들에서 자주 도외시되는 것이 바로 국내외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물리적 현실이다. 확실히 지리학은 무엇 못지 않게 왜 라는 질문의 근간을 이룬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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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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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삶에 대한 희구가 어느 때보다 높게 솟구치는 요즘인데, 우리가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고 있다니 저자의 진단은 얼핏 보면 어떤 도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은 이미 상당히 진척되기라도 한 것처럼 "왜"일까 그 이유를 따져 물으니 도저히 책을 펼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도처에서 '고통스럽다'는데, '고통을 추방하고 있다'는 지적은 열뜬 이상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우리의 생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되는 고통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나아가 성과주의와 결합하면서 어떻게 각색되고 재편되는지 명확하게 기술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고통을 피해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여 고통을 감수할 용기를 잃어버리고 삶의 영역에 드리워진 고통을 외면하는 데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해 당사자 간의 고통을 피하려는 움직임은 진통 정치로 이어져 탈민주주의를 가속화하고, 권력을 스마트하게 변모시킨다. 물리적인 힘으로 대표되던 권력의 속성은 푸코가 지적한 규율과 감시 제도 속에서 고통 없는 권력을 행사한다. 여기에 더해 성과주의를 덧입은 개인은 스스로를 규율하고 감시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내면의 독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 


또 고통을 직면하여 그 의미를 일깨우고 성찰적 삶을 돌아보도록 추구해야 할 예술과 문화는 소비 및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적당한 즐거움만 주는 데서 그치면서 동일한 것의 변주만 생산해내고 있다고 소개한다. 


긍정 심리학은  고통 회피의 사명을 충실하게 실천한다고 본다. 즉 모든 초점을 기분과 감정에 맞추고 그 궤도에서 일탈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힘껏 몰아낸다. 덧붙여 디지털 아비투스를 갖춘 현대인은 머무름이나 성찰, 서사를 통해서 고통에서 만들어내는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미미해져 모든 것들을 타자화하면서 마침내 무감각한 상태로 나아간다. 이러한 무감각은 현대인의 최고 목표인 행복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방해물 같은 존재이기에 기분의 고양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닉하고 더 큰 자극을 추구하며 마침내 중독의 험로로 나아간다는 것. 


니체가 고통 속에서 더 나은 건강을 찾은 것과 달리 우리는 고통을 피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보니 우리의 고통은 육체적 의미로만 축소되고 고통의 문제는 결국 의학의 문제인 것처럼 한정된다고 진단한다. 작가는 고통을 피하려는 노력 탓에 건강은 지상 목표가 되어가고 진통과 마취는 당연한 건강 기제로 작동한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바이러스가 나타나자 코로나 사회 속에서 삶의 모습은 순식간에 면역을 앞세우며 생존의 삶으로 변모했다고 서술한다. 오직 생존을 위해서 바이러스의 고통을 피하려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면서 건강 전문가가 현상의 진단을 독점하는 한편 삶은 생과 사의 측정 가능한 도식 내지는 데이터로 치환되었다는 점을 또렷하게 인식시킨다. 


저자는 고통의 억압과 은폐는 삶의 변화, 발전, 창조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사랑, 소통, 연대, 공감을 하지 못하도록 작동하기에 결국 우리는 상실하며 고립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고통의 추방은 더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을 위축시키고 삶의 의미는 오로지 죽음이 아니라는 것으로 안심한다는 역자의 후기야 말로 고통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다루는 전략이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일 것이다. 


고통의 포효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대상화하므로 고통을 은닉하고 회피하기 때문이라는 지적, 가슴을 후벼파는 일갈이다. 

행복장치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사회의 탈정치화와 탈연대화를 초래한다. 각자가 스스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행복은 사적인 문제가 된다. 고통 또한 개인적인 실패의 결과로 해석된다. 그래서 혁명 대신 우울이 있다...중략..진통사회는 고통을 의학적 문제로, 사적인 문제로 만들어 탈정치화한다. 이를 통해 고통의 사회적 차원을 억압하고 은폐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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