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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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삶에 대한 희구가 어느 때보다 높게 솟구치는 요즘인데, 우리가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고 있다니 저자의 진단은 얼핏 보면 어떤 도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은 이미 상당히 진척되기라도 한 것처럼 "왜"일까 그 이유를 따져 물으니 도저히 책을 펼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도처에서 '고통스럽다'는데, '고통을 추방하고 있다'는 지적은 열뜬 이상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우리의 생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되는 고통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나아가 성과주의와 결합하면서 어떻게 각색되고 재편되는지 명확하게 기술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고통을 피해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여 고통을 감수할 용기를 잃어버리고 삶의 영역에 드리워진 고통을 외면하는 데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해 당사자 간의 고통을 피하려는 움직임은 진통 정치로 이어져 탈민주주의를 가속화하고, 권력을 스마트하게 변모시킨다. 물리적인 힘으로 대표되던 권력의 속성은 푸코가 지적한 규율과 감시 제도 속에서 고통 없는 권력을 행사한다. 여기에 더해 성과주의를 덧입은 개인은 스스로를 규율하고 감시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내면의 독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 


또 고통을 직면하여 그 의미를 일깨우고 성찰적 삶을 돌아보도록 추구해야 할 예술과 문화는 소비 및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적당한 즐거움만 주는 데서 그치면서 동일한 것의 변주만 생산해내고 있다고 소개한다. 


긍정 심리학은  고통 회피의 사명을 충실하게 실천한다고 본다. 즉 모든 초점을 기분과 감정에 맞추고 그 궤도에서 일탈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힘껏 몰아낸다. 덧붙여 디지털 아비투스를 갖춘 현대인은 머무름이나 성찰, 서사를 통해서 고통에서 만들어내는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미미해져 모든 것들을 타자화하면서 마침내 무감각한 상태로 나아간다. 이러한 무감각은 현대인의 최고 목표인 행복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방해물 같은 존재이기에 기분의 고양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닉하고 더 큰 자극을 추구하며 마침내 중독의 험로로 나아간다는 것. 


니체가 고통 속에서 더 나은 건강을 찾은 것과 달리 우리는 고통을 피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보니 우리의 고통은 육체적 의미로만 축소되고 고통의 문제는 결국 의학의 문제인 것처럼 한정된다고 진단한다. 작가는 고통을 피하려는 노력 탓에 건강은 지상 목표가 되어가고 진통과 마취는 당연한 건강 기제로 작동한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바이러스가 나타나자 코로나 사회 속에서 삶의 모습은 순식간에 면역을 앞세우며 생존의 삶으로 변모했다고 서술한다. 오직 생존을 위해서 바이러스의 고통을 피하려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면서 건강 전문가가 현상의 진단을 독점하는 한편 삶은 생과 사의 측정 가능한 도식 내지는 데이터로 치환되었다는 점을 또렷하게 인식시킨다. 


저자는 고통의 억압과 은폐는 삶의 변화, 발전, 창조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사랑, 소통, 연대, 공감을 하지 못하도록 작동하기에 결국 우리는 상실하며 고립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고통의 추방은 더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을 위축시키고 삶의 의미는 오로지 죽음이 아니라는 것으로 안심한다는 역자의 후기야 말로 고통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다루는 전략이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일 것이다. 


고통의 포효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대상화하므로 고통을 은닉하고 회피하기 때문이라는 지적, 가슴을 후벼파는 일갈이다. 

행복장치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사회의 탈정치화와 탈연대화를 초래한다. 각자가 스스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행복은 사적인 문제가 된다. 고통 또한 개인적인 실패의 결과로 해석된다. 그래서 혁명 대신 우울이 있다...중략..진통사회는 고통을 의학적 문제로, 사적인 문제로 만들어 탈정치화한다. 이를 통해 고통의 사회적 차원을 억압하고 은폐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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