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여정
존 번연 지음, 박영호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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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천로역정>은 운 좋게도 몇 번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주일 학교 때도 간단한 내용을 접했고, 몇 해전에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보기도 했다.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가장 많이 인쇄된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우화 형식의 내용이라는 점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가장 어리석은 편견인데, 천성을 향해 가는 주인공의 여정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에 우화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를 진득하게 읽어볼 생각을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읽지 않을 수 없는 매가지에 몰린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빨리 읽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동시에 지금이라도 읽게 된 행운에 대한 감사가 흘러나왔다.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자신이 겪은 회심의 과정을 바탕으로 구성한 일종의 우화로, 청교도 운동에 열정적이었던 그가 감옥 생활을 하면서 쓴 책이다. 1부에서는 크리스천의 천국을 향한 여정을 다루고, 2부는 그의 아내 크리스티아나와 네 아들의 순례길에 집중한다. 


멸망의 도시에 살던 크리스천은 복음 전도자를 만나 진노를 피하라는 안내를 받고 주위에 설파하지만 가족까지 그를 비방하자 홀로 고민하다가 천성을 향해 길을 떠난다. 처음에는 무줏대와 외고집이 그와 함께 호기심에 함께 하지만 이내 그들은 포기하고 되돌아가고, 크리스천은 혼자서 짐을 잔뜩 지고 길을 떠난다. 여정의 시초에서 만난 세상의 지혜자는 그에게 짐을 벗기 위해서는 도덕을 찾고 율법이나 예절을 고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그 날카로운 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면서 다시 복음 전도자의 도움으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는 그의 안내에 따라 좁은 문에 다다라 문을 두드리고 거기서 율법과 복음의 은혜가 어떤 관계인지 청소를 통해 배운다. 율법이 닦을 수록, 청소를 한다지만 먼지를 일이키는 것과 같다면, 복음은 먼지를 가라앉히는 물과 같다는 점을 듣게 된다. 다시 힘을 가다듬은 그는 구원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이르고 거기에서 짐을 벗게 된다. 이후 멸망의 도시의 왕인 아볼루온과의 결투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그는 신실을 만나 함께 허영의 시장에 가게 된다. 모든 것이 거짓 진리의 허영 뿐인 그곳에서 유일하게 진리를 구하다가 그들은 엉터리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고 신실은 사형 선고를 받는다. 처형된 신실과 달리 기적적으로 그곳을 빠져 나온 크리스천은 이후 소망을 만나게 되지만 경계심이 풀려 넓은 길로 갔다가 의심의 성에 사는 절망 거인 부부에게 걸려든다. 거기서도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게 되는데, 기쁨의 산에서 지식, 경험, 경계, 성실의 목자들을 만나 천성의 일부를 보게 된다. 


이후 무지, 무신론자 등을 만나면서 주춤하지만, 끝끝내 천성의 바로 앞 기쁨의 땅 쁄라에 이르고 요단 강 앞까지 이른다. 믿음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는 요단강 앞에서 그는 두려움에 빠지지만 소망의 확고하고도 끈질긴 도움으로 천성에 입성하게 된다. 


크리스티아나 역시 남편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천성으로 향해 나아가는데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 은밀한 도움을 받아 끝내 천국에 이르게 된다. 


천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물은, 존 번연이 실제 신앙 생활 가운데 만났던 이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신앙을 망치고 열매 맺지 못하도록 하는 다양한 양태에 이름을 붙여 신앙의 성장 과정 중 어디에서 출몰하게 되는지 정확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더욱이 나의 신앙은 지금 어떤 양태로 변질되고, 어떤 방해를 받고 있는지 따끔한 경고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그 바탕에는 다양한 장면마다 그에 맞는 성경 말씀과 인물들의 양태가 소개되어 있기 때문. 


이 책의 강점은 소명, 중생, 회심, 믿음,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로 이루어진 구원의 서정을 말씀을 따라 분명하게 그려내면서도 우화 속에 나타난 다양한 인물이 나타내는 의미를 분명하게 분석하고, 신앙의 제 문제들을 함께 토론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책의 말미에 연구 지침서를 실었다는 것이다.


또 존 번연의 일대기를 세밀하게 수록하여 이 책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존 번연이라는 위대한 작가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소중한 믿음의 대가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이를 모두 엮어 명작 탄생으로 이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승전결 형식의 스토리가 뚜렷하지 않아 내용을 한꺼번에 각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책의 서두에는 크리스천의 여정을 그림으로 그려 제시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각 장이 어느 지점, 어느 좌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면인지 쉽게 그려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성도가 읽어야 할 기독교 고전을 넘어서 인간이 육적인 존재에서 영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한편, 인간의 실존이 어떤 상태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데서 출발하므로 왜 이해와 논리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저는 제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무거운 짐으로부터 편안함을 얻는 것입니다...중략..저쪽을 보시오 저 도덕이라는 마을에는 율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매우 판단력이 뛰어나고 당신처럼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짐을 벗도록 돕는 능력이 있어 명성이 뛰어난 분이지요. ..중략 크리스천은 율법 씨의 집을 찾아가 도움을 얻기 위해 길을 바꿨다. 그런 그가 힘들게 언덕까지 갔을 때 그 언덕은 매우 높아 보였고 길가에 솟아 있는 언덕 측면이 상당히 돌출되어 있어 언덕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더 앞으로 나아가기 두려웠다...중략..그가 길을 바꾸어 오는 동안 등에 진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갑자기 언덕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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