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다가 정오쯤 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내복 위에 두꺼운 겉옷을 입히고, 그 위에 또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혔다.
친정엄마가 사주신 털모자도 씌우고, 목도리도 둘러줬다. 털장갑도 씌워주었다.
마스크는 안쓰겠다고 떼를 써서 목도리를 코까지 올려 눈만 빼꼼하게 나오게 한 뒤,
아장아장 걷는 딸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밖으로 나와 갑자기 찬 바람을 쐬니 깜짝 놀란다.
밖엔 아직도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눈이 딸아이 키의 절반 정도까지 쌓여있다.
장갑을 벗겨 쌓인 눈을 만지게 해주니 화들짝 놀라서 손을 내젓는다.
손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낯설고 싫은 모양이다.
아직 눈이 남아있는 길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짧디 짧은 15개월 인생에 처음으로 눈길을 밟는 내 딸...
발 밑에 닿는 미끄러운 감촉이 어색한지 몇 걸음 걷다가 엉거주춤 주저앉는다.
일으켜 세워 다시 걷게 해줬으나 역시 또 엉덩이를 땅에 붙여 주저앉고 만다.
그리곤 나를 올려다보며 팔을 벌린다. "엄마, 안아줘." 딸아이의 몸짓 언어...
한 팔에 딸아이를 안고, 그새 빨개진 딸아이의 코에 내 코를 부벼본다.
더운 콧김이 전해진다. 향긋한 딸아이의 입김도 함께...
10분도 채 안되는 짧은 나들이... 딸은 오늘의 눈길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나는 눈을 만져본 뒤 내젓던 딸아이의 손짓을,
몇 걸음 걷다 주저앉아 나를 향해 팔을 벌리던 딸아이의 모습과 표정을, 평생 잊지 못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