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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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학업과 친구문제, 혹은 가정문제 때문에 자살을 생각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중의 한 명이었다. 그 시절의 내 일기장엔, 일주일에 한두 번 쯤은 "죽고 싶다." "왜 살아야 하나.." 하는 문구가 등장하곤 했다.

 그러던 내가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을 신봉(?)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기말고사를 앞두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화재 사건을 경험하면서부터였다. 독서실에 불이 나 간절히 원하던 대로 진짜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 맨 먼저 튀어나온 말은 "어머, 나 살아야 돼." 였던 것이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것도 아니고, 고함지르듯 커다란 목소리로...

 그 때 독서실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허리를 크게 다쳐 한 달 동안 엄마에게 업혀서 학교를 다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비만 오면 허리가 욱신거리는 고질병을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때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너무도 기쁘고 다행스럽고 행복하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고자 하는 이 책의 내용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사실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죽고싶다는 말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식으로 바꿔 말하면 '이렇게는 살고싶지 않고, 잘 살고 싶다.'는 말의 역설적인 표현 아니겠는가?

 저자는 이렇게 잘 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사는 것"은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삶을 사는 것이며, 상실과 이별을 통해 스스로를 성숙시키는 것이고, 용서와 치유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라고 나직하게 속삭이고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로부터 듣는 이러한 가르침은 나직하지만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앉아 읽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물론 이 책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장의 구성이 다소 억지스럽게 짜여진 듯 하고, 비슷한 내용의 글이 반복되어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단점도 있다. 두 저자의 글이 교차로 실려있는 것이 오히려 책 내용에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의미있는 것은 "나"에 대한 건강한 관심과 이해, 용서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눈으로 나의 행복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내가 나를 용서하는 것이 참 인생의 시작임을 이 책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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