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 이철환 산문집
이철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읽고 싶던 책은 아니었다. 작가 이철환의 전작, <행복한 고물상>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작가가 가난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꾸미고, 사람을 너무 착하고 순하게만 묘사하는 것 같아 맘에 들지 않았다.

가난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보다 끔찍하고 고통스럽게 기억하는 것이 더 사실적이지 않은가, 사람의 맘 속엔 선하고 아름다운 면과 함께 이기적이고 악한 모습도 함께 존재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의 이야기 속 사람들은 가난을 그저 낭만적인 한때로만 추억하고, 심성 역시 한없이 착하고 순수하고 아름답기만 해 오히려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고, 그런 느낌이 책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했다.

옆 자리 직장동료가 꼭 읽으라며 억지로 손에 쥐어주어 읽기 시작했지만, 중반 무렵까지는 예전의 그 불만을 고스란히 느끼며 덮을까 말까 망설였다. 뭐, 쉽게 술술 읽히는 글이니 권해준 사람한테 미안하지 않게 그냥 예의상 읽어주자... 그런 생각을 하며 억지로 책장을 넘겨갔다.

그러나, 중간쯤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책 속에 빠져들었다. 책은 잊고 있었던, 때론 억지로 잊고자 했던 과거의 기억을 건드려 다시 불러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받고 좋아했던 유년시절,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뒤 가슴아파 어찌할 줄 모르던 풋풋한 대학 시절, 암에 걸린 아버지를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공포와 죄책감을 함께 느끼던 몇 년 전.... 책은 그런 기억들을 다시금 불러들였고, 나는 책을 읽으며 과거의 일로 웃고, 울었다.

책에는 읽는 이의 감성을 건드리는 이런 글 외에도, 제목 그대로 작가의 반성문 같은 자기고백의 글도 함께 실려있다. 군부독재 시절 장학금을 놓치기 싫어 시험거부에 동참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회한, 학원강사 시절 자신의 학력을 본의 아니게 속였던 것에 대한 죄책감, 자신도 어쩌지 못했던 본능적 욕정에 대한 고백까지...

어쩌면 비겁했고, 어쩌면 교활했던 과거를 고백하며 작가는 그래도 자신이 쓰는 글과 어긋나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노라고 강조한다. 자기변명같기도 하여 거슬릴 수도 있으련만, 책장을 다 덮고 나니 그의 진심을 믿고 싶어진다. 너무 착해 오히려 가식같던 그의 글을 이제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박수받는 사람보다 박수치는 사람이 더 아름답다(52p)'는 것을 알고 있고,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거짓말(133p)'이라는 것을 용감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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