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엘리 위젤 지음, 김하락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의 그림은 몽환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둠을 가르면서 지나가는 기차와 빛나는 별, 그리고 소년... 소년의 얼굴은 슬퍼보이고 우울해 보이지만 푸르스름한 표지만 보고서는 그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엘리 위젤이라는 저자의 이름과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는 글자를 보아야 2차 세계대전과 나치, 유대인들의 고통을 떠올릴 수 있다.

저자 엘리 위젤은 열 다섯 살 때 나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가족을 잃은 경험을 갖고 있다. <나이트>는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안네의 <일기>,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와 함께 홀로코스트 문학의 대표적으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낮에는 탈무드를 공부하고 밤에는 성전으로 달려가 흐느끼며 신 앞에 기도하는 진지한 엘리저,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고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는 열 다섯 소년 앞에 전쟁은, 그리고 나치의 만행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발판삼아 산 채로 사람을 던져 연료로 쓰는 화덕을, 그 화덕의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빵 한 조각 때문에 아버지를 죽이고, 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웅덩이에 집어던지는 아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나가고 있다. 신앙심 깊던 주인공은 이런 지옥을 겪으며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절규한다. 수프를 훔친 죄로 교수형에 처해진 어린아이가 목매달린 채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보면서도 신의 존재를 믿고 신에게 진심어린 기도를 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와중에서도 죽은 자들을 위해 위로하는 기도를, 자신들이 아직 죽지 않았음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하나님보다 강하고 위대하다."고 읖조린다.

책의 곳곳에는 아버지에 대한 저자의 죄책감이 스며 있다. 아들은 교양있고 학식 풍부하던 아버지가 몸과 마음이 함께 병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런 아버지의 존재를 짐스러워하게 된다. 빵 때문에 아버지를 죽이고, 병든 아버지가 거추장스러워 모르는 척 하는 아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건만, 늙은 아버지 때문에 내 목숨마저 위태로워진다고 생각하자 동물적인 본능이 아버지를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가 임종을 목전에 둘 때까지 엘리저는 아버지를 돌보고자 애쓰지만 의식없는 상태에서 아버지가 자기 이름을 연거푸 부르자 자신까지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외면하게 된다. 그 후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 아들...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이성과 양심?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빵과 음료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이 과연 만물의 영장인지 계속 의문스러웠고, 마지막 책장까지 읽고 나서는 내가 인간인 게 부끄럽고 참담했다.

교수대에 매달린 신은 나치를, 아우슈비츠를 뭐라고 설명할까? 종군위안부는, 이라크 전쟁은, 끊임없이 벌어지기만 하는 빈부의 격차와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부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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