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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차별을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어떤 차별은 오히려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대한민국 국민과 외국인 노동자 또는 난민... 이들을 놓고 비교해보면 우리가 선량한 시민이라는 탈을 쓰고 일부의 사람들에게 '공정이라는 이름의 차별'을 공공연하게 자행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공공연하게, 또는 아무렇지 않게 무의식적으로 행사되는 차별의 장면을 콕 찝어 보여준다. 대안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사실 대안은 우리 안의 차별을 자각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스스로 타인을 편견없이 바라본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특히 읽어봐야 할 책이다. 나 역시 스스로 평균 이상으로 공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서 있는 기울어진 땅을 평평하다 여기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옮겨적어 본다.
- 불평등에 대한 대화가 '나는 힘들고 너는 편하다'는 싸움이 되어서는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 '너와 나를 다르게 힘들게 만드는 이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공통의 주제로 이어져야 한다. (33~34쪽)
- 평등하기만 하면 모두의 삶이 쉬워질까? (중략)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요구하는 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하면서 나름의 삶을 헤쳐나가겠다는 의미다. (34쪽)
- 엄청난 악으로 여겨지는 부끄러운 인종분리의 역사는 어찌보면 사소한 '불쾌한 감정'에서 시작될 수 있다. (중략) 어떤 집단에 대한 혐오감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마음가는대로 행동할 때 불평등은 더욱 깊어진다. (127쪽)
- 안타깝지만 법과 규범없이 개인들의 자발적 합의를 통해 평등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불평등한 체제를 유지시키는 우리 감정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27쪽)
- 멜빈 러너는 사람들이 공정세계 가설을 품고 산다고 말한다. 세상은 공명정대하고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공정학다고 믿어야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할 수 있다. (중략) 문제는 부정의한 상황을 보고도 이 가설을 수정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긴다. 세상이 언제나 공명정대하다는 생각을 바꾸는 대신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왜곡하여 이해하기 시작한다.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불행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가 안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기에 그런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정한 세상에서 살고있다는 바로 그 믿음 때문에 오히려 세상을 공정하게 만들지 못하는 모순이 생긴다. (168~169쪽)
-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론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