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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야 누리야
양귀자 지음 / 문공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어느 책에선가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
"행복(happiness)이란 단어는 '그냥 일어나다(to happen)'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다. 이는 행복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내면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암시한다. 곧 점심 먹을 생각에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 어느 것에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을 때에는 그저 '멋있는 말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양귀자의 <누리야 누리야>를 읽으면서 문득 이 글이 다시 생각났다. '누리야말로 내면에서 피어나는 행복의 씨앗을 품고 있는 아이구나.', '누리가 어린 나이에도 비참하고 고단한 삶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마음 속에 그 씨앗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누리라는 아이가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모진 세파를 이겨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동화가 아니다. 신파 중에 신파라 불리울 만한 줄거리가 읽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감동을 주는 것은 이 이야기가 행복이 물질과 소유가 아닌, 인간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구가 아닌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는 것도 큰 울림을 준다.
물론 누리가 강자 언니나, 영발이 오빠, 누고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나마 품고 있던 행복의 씨앗을 채 터뜨리지 못했을 것이다. 뒤늦게 만난 어머니를 그토록 어른스럽게 이해하고 용서하지도 못했겠지.
동화를 읽으면 읽을수록 어린이의 행복과 불행은 어른이 쥐고 흔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내면에 행복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고운 심성을 갖고 있어도, 그 심성에 물과 거름을 주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은 결국엔 어른의 몫이다.
머리 속에서 누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우리 반 한 녀석의 얼굴이 지워지질 않는다. 나는 그 동안 그 아이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입에 발린 위로와 격려만을 일삼았던 게 아닌지,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녀석에게 또 다른 어떤 아이에게 나 역시 강자 언니, 영발 오빠, 누고 할아버지가 되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삶이 버거운 아이들에게 그런 역할 하나씩 맡아 해 줄 때, 정말로 세상은 살 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