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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ㅣ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이름을 들으면 "아~ 그 사람!"이라고 아는 척을 할 수 있을 만큼 유명한 만화가 10명이 모였다. 모인 이유는 바로 '인권이 보장되는 차별없는 세상'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차별없는 세상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만화가들이 택한 방법은 '인권이 유린되고, 차별과 억압이 극대화된 상황을 보여주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다.
물론 만화라는 형식이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에 적합하지 않고, 문제의식조차 없는 사람들의 가슴을 좀 더 쉽게, 그리고 좀 더 깊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 설정도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책은 딱 거기까지 뿐이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상황을 가장 극단적인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 딱 거기까지.
어디를 찾아봐도 소제목에 나와있는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의 모습은 나와있지 않다. 차별과 억압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행동이나 마음가짐도 일러주지 못하고, 차별 없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차별과 억압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폭력과 투쟁', '증오와 원망'이며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사회는 '사람들 간에 이해와 관용이 넘치는 조화로운' 모습이 아니라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와 패배로만 이루어지는' 모습이어야 할 것만 같다.
책의 끝부분에 실린 홍세화 씨의 글 일부분을 옮겨적어 본다.
"나의 사상과 신앙만이 옳다는 믿음이 지나칠 때, 다름의 관계는 '나는 선'이고 '남은 악'이라는 적대적 선악관계로까지 발전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근본주의는 나와 다른 남을 타도, 배제, 추방하도록 요구한다." (P.214)
나는 이 글 중 '적대적 선악관계', '이분법적 근본주의' 라는 용어가 이 책의 시각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과 억압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에 집착한 나머지 그 차별과 억압을 극복하여 이루고자 하는 이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기획을 맡은 국가인권위원회에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