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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매 주마다 로또를 사는 친구가 있다. "당첨의 가능성이 벼락맞을 가능성보다 낮다더라." 하면서 면박을 줬더니 남편과 자기가 맞벌이해서 번 돈의 절반 넘게가 시어머니 빚과 병원비로 들어간다면서 결혼 후 제대로 된 저축 한 번 못해봤다는 이야기를 한다. 복권에 당첨되기만 하면 팍팍한 삶의 굴레를 벗어나 행복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서민들의 삶이 이런 모습이구나... 마음이 씁쓸했다.
친구의 고민 속에는 로또에라도 당첨되지 않으면 지금 자신이 처한 계층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담겨있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조선 시대도 아니요, 정해진 계급이나 계층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말은 안 해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오늘날에도 계층 구분은 엄연히 존재하며 계층 상승과 계층 이동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홍세화는 이런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직시하는 것에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사회귀족의 의미와 우리사회에서 사회 귀족이 차지하는 위치, 그 계급이 재생산되는 구조까지 꿰뚫고 있는 그의 식견은 놀랍기까지 하다. 그는 또한 우리사회에서 사회귀족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지식인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공정과 객관이라는 가면을 쓴 지식인들이 사회에 가하는 위해를 지적하고 이제는 그들이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아가리를 벌려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공정과 객관... 그동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가치가 때로는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자신을 속이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의 글을 통해 처음 알았다.
홍세화는 이런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교육과 연대를 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에 실린 '이 땅의 교사에게'는 현직 교사인 나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교사분은 부디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p.297)며 저자는 제도교육을 통하여 사회구성원들에게 일찍부터 사물과 현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주어 비판적 시민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올바른 민족적 정체성과 사회경제적 정체성 형성을 방해하는 반공교육을 비판한다. 그 반공교육의 선봉이었던 도덕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단순히 교과서의 내용을 외워서 가르치는 앵무새 교사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와 정체성을 가르치는 참 교사가 되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교육이 현재의 계급과 계층 구조를 단순 재생산하는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그의 지적은 백번 옳다. 그러나 그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방법도 교육 속에 있다고 믿는다. 2007년은 내가 교직에 들어선 지 꼭 10년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고 가르친 지난 9년이었지만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다. 이런 책을 통해 그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이나마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