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객주 - 전9권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읽은 <객주>는 최근에 나온 재개정판이 아니라 1992년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개정 2쇄판이다. 초판본이 나온 것이 1981년이었고, 1992년에 개정판이 나왔고, 2003년에 재개정판이 나왔으니 꼭 11년마다 한 번씩 개정판이 나온 셈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은 것은 대학입시를 막 끝내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온 뒤였다. 술만 퍼마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영 마뜩찮아 그 좋아하는 수다도 제대로 떨어보지 못하고 구석에 조용히 박혀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까마득한 85학번 선배(물론 술이 떡이 된...)가 다가와 이것저것 주절주절 떠들다가 입학 때까지 남은 기간 동안 책이나 많이 읽으라며 권해준 게 바로 <객주>였다.
제목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누가 썼는지, 어떤 내용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으면서 오리엔테이션에서 돌아온 이튿날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이 책을 덜컥 사 버렸다. 처음엔 재미없으면 한 권만 읽고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1권만 샀지만, 그 다음부터는 두 권, 세 권을 한꺼번에 사들고 왔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했던 생각은 내가 모르는 순 우리말이 정말로 많다는 거였다. 그러나 생경한 우리말이 문장 안에서 겉돌지 않고 질펀한 사투리와 실감나는 구어체에 잘 어울려 있다.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낱말을 찾아가며 읽는 동안 나는 책 읽는 즐거움이 과연 이런 거구나... 절감할 수 있었다.
<객주>는 양반이나 왕궁안에 갇힌 궁녀들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부상으로 대표되는 조선 후기 서민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피땀흘리는 수많은 민초들의 삶을 이만큼 생생하게 나타낸 소설은 아마도 없지 싶을 정도로 현실감있다.
또한 <객주>는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인 '대하 인생 드라마'이다. 물론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된 인물이 있긴 하지만 작가는 수많은 등장인물 모두에게 고유한 삶의 모습과 다양한 개성을 부여하여 읽는 맛을 살리고 있다. 지적이거나 논리적인 문장은 아니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언어와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객주>의 최대 장점이다.
입시를 끝내고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예비 대학생들, 긴긴 겨울 밤 옆구리가 시려 밤잠을 설치는 싱글들에게 강추! 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