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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아, 내 외침을 들어라! ㅣ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8
밀드레드 테일러 지음, 이루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4년 7월
평점 :
책은 리틀맨, 크리스토퍼 존, 캐시, 스테이시의 사남매가 등교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동네의 흉흉한 소문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걸음이 느린 막내를 타박하기도 하고, 백인학교의 통학버스에서 날린 먼지에 옷을 더럽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등교길은 즐거운 분위기이다.
그러나 학교에 도착해 교과서를 받아든 순간부터 아이들의 생활엔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가져본 교과서는 무려 10년 전에 발간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거쳐온 누더기 상태... 아이들이 이렇게 누더기같은 교과서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흑인"이기 때문이다.
책은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꾸밈없고 그래서 더욱 잔인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모두가 대단한 존재(p.183)"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혹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차별과 억압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들이 같은 마을에 사는 백인들에게 당하는 수모와 폭력은 인간의 사악함이 얼마나 참혹하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욕적인 언사로, 소작료를 올려받는 착취로, 신체적인 폭행과 방화로 이어지는 백인들의 만행은 인간의 존엄성이 결코 피부색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뼈저리게 느기께 해 준다.
책의 결말 또한 일반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청소년 책이 갈등의 해결과 치유, 용서와 화해로 결말을 맺고있는 데 반해 이 책의 결말은 또다른 억압과 저항의 시작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여운은 오히려 크고, 책을 읽고 난 뒤 오랫동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몇십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차별도 못지않게 뿌리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부끄러움은 남편과 떠난 드라이브, 한적한 시골길에서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처녀가 아니면 환불해 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을 보았을 때 느낀 수치심과 닮아 있었다. 또한 학교에서 내가 담임하는 아이들이 행동이 굼뜨고 바보같다는 이유로 같은 반 친구를 화장실로 끌고 가 집단폭행하는 현장을 내 눈으로 목격했을 때의 참담함과도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어디 이 뿐일까?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차별과 억압을 우리는 관행으로 생각하며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지 않았던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절망감, 장애인들이 느끼는 소외감, 한부모 가정 아이들과 조손가정 아이들이 느끼는 차별과 이 책의 주인공들이 느끼는 분노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있는 사실이다. 다만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었을 뿐....
혼히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밝고 긍정적이고 올바른 삶의 모습을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생각이긴 하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옮음", "바름"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는 삶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고치기 위해서 무슨 행동을 해야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해 주는 최고의 청소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