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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거울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북라인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꽤 오래전에 현대문학을 구독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미셸 투르니에의 <예찬>이 잡지에 연재되었었다. 아마 그 때가 내가 저자의 이름을 처음 만난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그 때 나에게 미셸 투르니에는 쉽고 간명한 사실을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풀어내려고 애쓰는 작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의 작품은 내게 큰 울림을 가져다 주지 못했고 연재되는 작품은 한두번 건성으로 읽어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우연히 그의 작품을 집어들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서는 아파트 장터에서였다. 보통 중고 아동도서들을 물물교환하는 그 장터에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이다.
우선 이 책은 각 장이 서너 페이지 정도로 구성되어 있어 짧은 시간을 내어 독서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없는 책이다. "남자와 여자" "건강과 병" "철도와 도로" 등 서로 상대되거나 보완적인 주제들을 짝지어 저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다. 때로 "황소와 말" "버드나무와 오리나무" "나무와 길" 처럼 언뜻 제목만 보아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감 잡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매우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예전에 내가 이 작가의 매력을 어찌 발견하지 못했을까 후회할 정도로... 철학과 역사 및 신화, 기호학과 논리학, 거기에 재치와 유머까지 버무려 주제들을 자유자재로 매만지는 그의 재주는 무척이나 놀랍고 존경스럽다.
특히 나는 책의 중간쯤에 나오는 "재능과 천재성"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대중이 원하는 바에 귀를 기울이고 대중이 원하는 대로 작업할 확률이 높지만, 천재적인 인간은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작품을 만들고, 거의 언제나 시대조류와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젓는다."는 대목...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위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시대조류(혹은 주어진 현실)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학생들을 더 높이 평가하게 될 때가 많다. 행여 나로 인해 천재적인 아이 하나가 자신의 천재성을 절망 속에 감추고, 자신의 날선 감수성을 일부러 무디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책의 주제와는 맞지 않지만,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 잠시나마 반성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