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해방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인간사랑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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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척 재미난 연구서다. 마빈 해리스의 인류학적 연구서들을 단행본으로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피터 싱어도 그렇게 다가온다. 그러나 데스몬드 모리스가 주는 '공평치 못한' 시선은 어디에도 없다. 담백한 맛... 모리스는 그게 결여되어 있으며 연구자 같지 않게 지나치게 기름기가 많이 들어간 문체로 독자들을 자신의 독선적 편견으로 인도한다. 그러면 안된다. 애초에 끌리기는 하겠으나 뒷맛을 씁쓸하기 그지 없다.

이 책은 '복날'에 그 진가를 재 발휘한다. 지난 57년에 처녀출판되었지만 이 책에서 싱어가 역설하는 내용은 아직도 먼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것은 특히 복날에 있어 심하다. 견공들을 잡아먹느냐 마느냐에 있어 다른 나라의 칠면조고기나 달팽이 요리 송이지 요리등과 비교하고만 앉았으니 그렇게 변호하면 까마귀가 까치더러 니가 더 검다고 하면 그게 거먼게 허얘지는 것도 아닌 데 말이다.

무엇보다 이책의 관건은 '동물 해방을 급진적이로나 감정적으로 촉구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고 '철학과 윤리'를 전공한 사람답게 최대한 이성에 호소한다는 점이다. 감정에 호소하긴 정말 쉬운 일이다. 글이란 걸 보이기 위해서 쓰는 사람들은 이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에 호소해서 이성을 움직이는 일이란 커다란 바위를 움직이는 것 만큼이나 힘겨운 일이며 싸움이다.

게다가 그것을 마치 게임을 하듯 흥겨운 분위기 속에 서 이끌고 있다는 것. 그것은 그의 '순수성'과 '감각'이 고차원적이란 것을 암시한다. Green Peace의 대원들 혹은 몇 몇 채식주의자들 사이의 논쟁, 즉 급진적 환경운동이 또하나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들이 지나치게 격앙된 나머니 폭력과 폭력적인 시위로 육식주의자들과 환경에 별 관심이 없는 무식한 대중들을 질타하는 것은 그 심정은 이해가 가나 사실 그런 급진적인 태도는 오래 견뎌낼 수도 없고 효과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지나친 행위와 설득은 사람들에게 불안감과 위화감을 야기하기 쉽다. 결국 부작용을 일으키기 쉬운 처치란 것이다. 그럴 바에야 안하는 게 낫지 않을까?

몇몇 육식주의자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채식주의자들에 비해 '현명하며' 현실적인' 사람들이라며 자위하며 산다. 그들을 일종의 노이로제 환자로 취급하면서 말이다. '풀만 먹는 **들' 하면서 인간 취급도 안하지.. 그러나 이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반응까지 야기해 가면서 마치 전도사 처럼 이리 저리 우왕좌왕하며 동물해방을 파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실천하되 조용히 물 흐르듯.. 그것이 모든 해방운동의 성공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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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 싱어 지음 / 세종(세종서적)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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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성경은 '오른 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라'고 말하지만, 이는 도그마일 뿐이다. 왜 도그마냐 하면 '주장'에 대한 합리적인 논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신앙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만이 이러한 주장을 실천의 지향점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것도 이상일 뿐이다. 으례히 그거겠거니 하는 우리의 '종교인'에 대한 그것도 '편견'의 일종이다. 편견은 꼭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긍정적인 선입견도 편견은 편견이다.

그렇다고, 성경의 주장이 그릇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도그마라고 주장한다해서 그걸 또 '잘못된 것'이란 주장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흑백논리의 오류다. '도그마'라고 해석하는 것은 개념적 해석이지, 가치적 해석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성경을 도그마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윤리의 기준을 찾아야 하는가? 성경도 불경도 도그마라고 치부한다면, 과연 윤리의 잣대란 없는것인가? 도대체 상대주의와 자유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바보같다'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윤리적이려고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

다시 패러독시컬한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그런 편이었다. 시니컬한 쪽이었다. 과연 '윤리'란 게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웠고, 인간이 '선한 동물'이던 '악한 동물'이던 동기와 본질은 어떻든지간에 인간 사회는 치사하고 비윤리적이고 서로가 서로를 물고 죽이는 '홉스식 정글의 사회'라고 여겼다. 나는 비슷한 시기에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를 읽고 사회가 도덕적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우며, 한편으로 개인이 사회를 도덕적으로 만들자는 구호가 '이상론'에 불과한지를 배웠다.

물론 니이버의 주장은 '두 양극단'의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에 있지만, 어쨌든 그의 '진단'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터 싱어는 '기존의 윤리학' 책들이 상품처럼 팔아 제끼는 '칸트, 니코스마, 헤겔' 등을 논거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 물론 이들이 거론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철저한 현실 인식을 두고 논거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현실은 지금 이 시대다. 호주와 미국 등 서양 선진국의 윤리성을 따져 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윤리적인 가를 조목조목 현실에 의거해 논박해 나가는 것이다.

싱어는 무엇보다 실천가라는 데 가치가 있을 것이다. 대게의 철학자 윤리학자들이 입으로만 책으로만 도덕과 철학을 파는데 반해 그는 실천의 첨단에 서서, 비윤리성을 고발하고, 인권과 동물권의 유린당함을 지적하고 보호하자고 외쳤다. 책으로 말하고, 행위로 예를 보이는 그에 우리는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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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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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렌마트, 나는 그를 매우 좋아한다. 독일어권의 분석철학 냄새가 나는 소설들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와도 혼동을 일으키곤 한다. 그 역시 소설가, 극작가였다. 네덜란드 태생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만으로 활동했다. 뒤렌마트나 베른하르트나 아마도 철저한 현실인식, 불우했고 우울했던 유년시절이 추후의 작품 활동이나 작품의 분위기를 지배했을 것으로 쉽게 짐작 가능하다.

무엇보다 <법>이란 소설에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그 딱딱하고 견고한 '법'이란 틀의 틈을 뚫고 이렇게 현란한 '풀씨'를 뿌리고, 틔어 놓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추리소설'을 아주 잘 안다는 마니아들도 뒤렌마트의 진가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 이름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 에코가 추리소설식 교양소설을 쓰는 데 그가 추리 소설가라기 보단 '인문학자'로 대접받는 것과도 유사한 것일까? 아무튼 국내에서 아마도 그는 '독일어권'의 거장으로 인식될 뿐, 추리소설권의 무엇으로 인식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듯 하다.

추리소설의 최근 장르들이 '하드 보일드'를 지향하는 바가 없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그는 하드 보일드의 철저한 이론가이면서, 실천가라 할 만하다. '법'이란 텍스트와 '탐정' '경찰' 이란 그 텍스트의 추종자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그 '법'의 '이상성 내지는 완벽성' 을 교란시키는지를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법'도 사실 컨텍스트의 범주를 이탈할 수 없다는 것. 해석과 입법과 실천의 삼자에 있어 상호 교류하면서 변질되고 변주된다는 사실..

국내에서 90년 초엔 '트랜스 젠더'가 법적으로 성전환이 가능했다. 이는 '생물학적 성 보다는 사회학적 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덕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 해만 넘어가자 법조항에 대한 해석조차도 꼴깍 뒤집어졌다. '아무리 성전환을 했더라고 생물학적인 성까지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 또 다른 해석이었다. 둘 다 맞다. 가능한 해석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현실적인것인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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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아래아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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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국민작가로 주목받은 대표적인 독일작가 뒤렌마트는 여러차례 노벨상 후보에 올랐으며, 실러 상, 유럽문학상을 휩쓴 바 있다. 법학 전공자 답게 '정의'와 '법'에 대한 치밀한 천착, 그리고 혀를 내두르게 하는 '사상력' 스위스에서는 이런 무거운 소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한다는 것이 부러운 면이다. 비단 스위스 뿐이 아니라 방외인이 내가 보기에는 '게르만 계통'의 나라들,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 등이 모두 그런 독특한 대중성들을 지니고 있지 아니한가?

그의 작품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은 추리기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판사와 형리(차경아 역)'라는 제목으로 '문예출판사'나온 바 있다.

주인공 베를락 형사는 젊은 시절 범죄란 것을 두고 가스트만이라는 이와 내기를 했었다. 즉, 베를락 형사는 범죄란 응징되기 마련이다라는 주장을, 가스트만은 범죄는 얼마든지 법과 정의의 사각지대로 잠길 수 있다는 주장을 각자 했던 것이다. 가스트만은 천부적인 범죄자로..베를락은 유능한 형사로 그 이후의 일생을 살게 되는데, 가스트만은 번번히 법과 정의의 사각지대로 빠져나간다. 형사 베를락의 평생의 꿈은 바로 이 가스트만을 단죄하는 것. 그들은 말년에 또 한 번 첨예하게 대결하게 된다.

걸리버란 기괴한 인물을 말한다. ' 믿음 소망과 사랑, 이 세가지는 <고린도 전서>13장에서 멋드러지게 읊어진 것들이다. 그렇지만 이중이서 가장 끈질긴 것은 소망이다. 이 희망이란 것이 지금도 흉터 범벅의 몸뚱이를 끌로 다니는 유태인 걸리버 편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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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켄 케이시 지음, 황용화 옮김 / 지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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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 제목으로도 불리워지고, 교묘한 카리스마의 잭 니콜슨의 연기로도 잘 알려진 영화에도 응용된 바 있다. 영화는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책은? 글쎄, 애 이렇게 재밌는 책들을 안사보는지 몰라.

영화만을 본 사람들을 감안해 서술하자면, 책의 화자는 영화에서 벙어리인 채 등장했던 거인 인디언이다. 그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기록된 책인 만큼, 작가도 사실 미국 인디언 출신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책이 유명해지지 못한 까닭이 이렇듯 작가의 인종에 따른 차별대우 탓이 아니겠는가? 스티븐 시필버그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칼라 퍼플의 작가 '엘리스 월커'도 국내 번역된 책이 한 권도 없다.

그녀가 '흑인'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의 소설들은 모두 미국내에선 화제를 몰고 왔고 작품성도 웬만큼 인정받았는데.. 물론 <재즈>를 쓴 '토니 모리슨'이나 <뿌리>의 '알렉스 헤일리' 정도만 국내에서 인식되고 있는 듯 하다. 요컨대 백인 작가의 경우는 '필터'기가 매우 느슨하게 작용하는 반면, 그 외 인종의 작가들의 작품들은 '걸러지기가 힘든 형국'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잭 니컬슨이 연기했던 반항적인 죄수와 이들을 감시 감독하는 백인 노처녀 수간호사와의 '권력다툼'이 마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두 아이들과도 유사하다.

여기서 노처녀가 '악녀로 묘사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인디언의 묘사에는 이러한 설정을 하나의 실제로 덤덤히 관조하듯이 표현되었기 때문에 굳이 문제라고 비약하긴 그렇다. 아무튼 굉장히 독특한 소설이며, 주인공들이 압권이다. 정신병동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약간 환각적인 분위기도 일조하며, 무엇보다 벙어리 행세를 하던 인디언의 변모과정이 감동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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