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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타나에서의 경험만을 반추하며 여하한 캠퍼스 라이프를 기대한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냥 단순 무식하게 비교해서 여기 캠퍼스는 그 규모나 시설이 전주대만도 못하다. 물론 캠퍼스가 이 도시에 몇개 찢어져서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결국 다른 캠퍼스는 더 작단다 헉), 작은 건 작은 거다.  

(park campus의 유일한 한 칸의 일반 자료실, 다 개설 전공 관련 책 몇 권 있을뿐)

  영국이 그레이트 브리튼이란 사실은 사실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겠다. 내가 소도시에 있다는 점을 상기하며 자위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긴 영국에서도 물가가 런던 다음 쯤은 되는 비싼 곳이란다.. 또 헉 할밖에.. 승용차들, 각 집마다 한대씩은 있고, 물론 차종은 한국에 비해 다양하기 그지없지만, 더 이상 유쾌한 수준을 넘어섰고, 그들이 차를 모는 솜씨는 한국인 저리가라 난폭하기 그지없고, 속도는 시속 30마일(50킬로) 정도 한단다. 오늘 또 갈래길에서 애먼 방향으로 틀어서 가는 바람에 왕복 한 시간 정도를 허비했는데(온 뒤로 계속 쉬지 않고 걸어서 근육통이 장난아니다),하필이면 도로외곽으로 빠지는 길로 빠져서 어찌나 넓지도 않은 도로폭과 높지도 않은 인도와 맞닿은 차도에서 엄청난 양의 차가 쉴새없이 지나가는지 시끄러워서 걸을 수가 없었다.  

(챌트넴 최대 번화가 입구: 몽펠리어 어바운드)

       

인도도 한국처럼 타일을 깔아놓지 않고, 그냥 무심히 잔디를 좀 심어놓거나 해서, 진흙에 신발이 푹푹 꺼지는 일도 다반사, 주택가 진입로도 바로 집 정원이나 앞을 제외하고는 쓰레기로 넘쳐서 더러워서 볼 수 살수가 없다.. 환경미화원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다 새벽에만 일하나??

(목요일 청소의 날: 대부분이 단독주택인 이곳은 청소의 날에 집 마다 한 통씩 있는 초록색 잡쓰레기통을 집 앞 도보 쪽으로 밀어 놓으면 청소부들이 쓰레기차에 담는다. 그래도 정원만큼 골목은 깔끔해지지 않는다..) 

쓰레기통이 거리에 전무한가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쓰레기통이 간혹가다 있긴 한데, 좀 드물긴 하지만, 좀 심하다.. 특히 과자봉지 뿐아니라 수많은 생수통, 통들..
 

자전거 운전하기엔 심지어 더 위험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주된 이유는 길폭에 있다. 자전거 도로가 인도가 아닌 차도 쪽에 붙어있긴한데, 수시로 그 표시가 없어지는데다가, 물론 거리 표지판은 상당히 많은데 아직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고, 그냥 자전거랑 택시가 어쩌니 써있다, 무엇보다 갓길이 너무 좁아서 차에 치이는 것은 순간일 것 같다. 한편, 도로 경사는 거의 평평하고, 워낙 동네가 작아서 그런 면에선 한국보다 낫다고 할만한데, 워낙에 지켜야 할 룰이 있어서, 그걸 다 챙기고 타기엔 나 같은 외국인들에겐 무리일 듯, 아예 다리가 뽀사지도록 걷는 편이 남는 장사로 보이기도 한데, 계속 걸어만 다니니 지루하고 슬슬 짜증이 난다. 그렇다고 잔거 타도 댕기는게 마냥 부러워 보이지만도 않는 게 슬슬 실망감이 밀려온다.

 역시 미국이 나았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미국이 국민성이나 규모나 매너나 캠퍼스나, 심지어 랭귀지나, 강사진이나 모든 면에서 우월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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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 좋은 day trip

 어제 밤에 급히 미라와 스카이프로 대화를 하면서 잡은 일정대로 아침 10시 경에 Race Course에 도착했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미라가 없었다. 한참 기다리다가 옆에 무슨 관광안내소인지에 가서 시계를 보니 이미 10 30분이다. 10 20분까지만 기다리겠다고 한 거 같아서 그냥 거기서 생수 한 잔(여기 정수기도 온수, 냉수 꼭지가 다 있긴 하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을 들고 혼자서 터벅터벅 시장터로 발길을 옮기는데, 영국 와서 처음으로 정수된 물을 마시는 거라 어찌나 물 맛이 좋은지 감계무량해졌다. 일요일 오전마다 열린다는 이 시장터는 경주장 바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그 꼭대기부터 내려가는 언덕으로 죽 펼쳐져 있었는데 생각보다 부지도 넓고 장사치들도 북적거리고 사려는 사람도 꽤 많이들 와 있었다.  

 이런데 빠질 수 없는 핫도그 장사꾼들도 트럭마다 싣고 와서 군침 도는 냄새들을 풍기고 있었다. 시장을 좀 돌기 시작하니, 만나려는 사람은 없고 아까 버스에서 합승한 초등 선생 커플하고 또 지나쳤다. 그들은 시장구경을 한 뒤 Mother’s day라고 초대를 받은 다른 선생의 호스트 하우스에 가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점심 초대도 받고 조금 부러운데다가 미라가 도대체 왔는지 안 왔는지 알 길도 없고, 벼룩시장이 정말 벼룩 시장처럼 보여서 슬슬 기분이 업셋되기 시작한데다가 풍겨오는 햄버거 냄새에 대충 어젯밤 남은 파스타(무슨 번데기 모양으로 생긴,여주인에 의하면 쉘 파스타란다)를 데펴서 먹은 위임에도 괜한 스트레스성 헝거가 느껴지기 시작해서 섹에 몇 달은 담겨 있던 비상 초콜렛을 연거푸 두 개나 헤치워 버리고 담아온 커피를 홀짝이며 그냥 건성으로 한 바퀴 도는데, 고물 값이나 받을만한 자전거들이 보였다. 트럭에 수리 도구까지 잔뜩 싣고 온 허연 턱수염의 아저씨가 팔고 있는데, 체인이 누렇게 다들 녹슨데다가 안장은 검은 전기 테이프로 칭칭 감아 놓았다. 한국에서는 쳐박아놔도 누가 안 가져갈 것 같은 걸 얼마냐니까 100파운드라나? 기겁을 해서 체인 이즈 러스트 라고 했더니 아저씨 얼굴 색이 확 바뀌면서 자리를 떠 버린다.  

 참 친절하기도 하시지.. 좀 돌고 보니까 25파운드 짜리 철잔차가 훨 낫다. 그러고 보니 랭귀지 쎈터의 걸들은 전혀 이곳 삶에 도움이 안 된다. 자전거를 싸게 구하는 방법, 경찰 옥션 이용할 것, 이베이를 검색할 것, 그 누구도 벼룩 시장이 있다는 얘기를 해 준 바가 없다. 조금 기분이 나아져서 혼자라고 갈 요량으로 시장을 빠져나가는데 반가운 뒷 자태가 보인다. 미라가 시계장수 앞에서 물건을 보고 있는데, 이미 비닐 봉지가 꽉 차있다. 아무튼 누가 애 엄마 아니랄까 봐 애들 줄 물건은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그와 더불어 반가운 물건이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는데 손목시계였다. 한국에서 사오려다가 만 싸구려 디지털 시계, 형광색 벨트를 가진 장난감 같은 애들이었는데 기분 좋게 생긴 아저씨가 마누라 거라면서 50펜스에 팔았다. 이놈의 나라에는 좀체 공중 시계가 없어서 노와치人인 나로서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는데 이건 완전 득템이다. 미라가 마침 그 곳에 서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쳐 버렸을텐데, 마침 거기 있어서 기분좋게 시간까지 맞춰달라고 해서 사서 꼈는데 여간 생일선물이라도 받은 애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미라가 나타나서 쇼핑의 여신처럼 시장을 다시 돌기 시작하는데, 그녀가 없을 땐 별로 의미없어 보이던 고물들이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여튼 그렇게 돌다가 미라는 딸애 준다고 인형을 더 사고, 나는 괜찮은 옷을 파는 여자를 만났다. 청 자켓인데 미디엄이라 좀 끼긴 했지만 살이 빠지면 무난하게 잘 입을 수 있을듯한 아이템이었는데, 안 산 것이 좀 아쉽기도 하다.

 그렇게 한 바탕 쇼핑을 마치고, 프로미나드로 버스를 타러 가려는데 마침 스타벅스 쯤을 확 도는 시점에 프레드가 짠하고 나타났다. 알고보니 그의 본명은 기복..지금도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나는 이름이다. 그의 캐릭터가 딱 그 이름 같다. 抵설탕 다여트 중이라는 못생기고 뚱뚱한 루스도 그만 보면 얼굴이 생글벙글해 진다. 강사고 학생이고 여자들로만 넘쳐나는 이곳에 한줄기 빛과 소금 같은 존재랄까? 그는 그런 행복을 느끼며 생활을 하는지가 궁금하다.

 여하튼, 내가 한 오지랖을 발휘하여 안 그랬음 그냥 지 갈길 갔을 그를 한 패거리로 끼워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셋이 되어 스타라우드로 향했다. 가는 길의 풍광이 압권이라는 보니의 말대로 정말 이 투어의 정수는 46번 스테이지코치의 창유리 밖의 파노라마였다. 우리는 맨 끝에 자리를 잡고 앞과 양 옆으로 펼쳐진 풍광을 맘껏 감상할 수 있었다. 이미 눈이 침침해지면서 다리가 쑤시는 것이 시장 구경만으로도 피곤해서 자리를 보전해야 할 지경이었겠지만, 이것저것 잡스런 수다를 떨면서 티를 안 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아 이 저열한 체력이여! 46번 버스의 종착역에 내리니 그게 바로 스트라우드였다.  

 오는 길에 페인스윅이란 비슷한 동네를 스쳤는데, 프레드는 이미 어제 거길 갔다 왔다는데 에비가 좋았다고 한 것 같다. 여튼 미라가 정보 수집을 한 덕에 바로 뮤지엄으로 향했는데 이게 웬 떡인가? 스페셜 엑스비션으로 그 지역 산과 들에 필만한 꽃이 화려하게 채색된 캔버스가 큼지막하게 전시된 홀 입구에는 공짜 비버리지가 주욱 차려져 있었다.  

 마셔도 되냐니까 예쁜 여자가 웃으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권해서 레드 와인을 마시며 그림을 구경하는데 와인이 너무 맛있는게 아닌가? 너무 달지도 않고 쓰지도 않은 것이 완전 브렌드 네임을 알아왔어야 하는데 아쉬울 정도였다. 게다가 중간 중간에 차려진 스넥 안주도 어찌나 맛있는지 거의 점심밥을 거기서 해결했다. 그림도 멋지고 와인도 맛있고 기분이 좋아져서 연신 그림 앞에서 셔터를 눌렀다.

 뮤지엄 가는 길에 지나간 파크에는 청둥오리와 백조 한 쌍이 있어서 이것들과도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참으로 평화스러운 풍경이어서 왜 영국인들이 나이 들면 이곳에 돌아와서 살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된다. 그나저나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원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또 공간을 할애해서 공원을 만들고 사람들은 거기 나와서 노는 걸 보면 참 재밌다. 엄청난 산골짝임에도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더러운 백인 아기를 산책 시키거나 다양다종한 애완견들을 끌고 나온 것이 눈에 자주 띄었다.

 특별 전시관을 지나서 상설 전시장으로 가니 스트라우드의 문화사들이 일목요연하게 잘 전시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전거, 담뱃대,목욕탕, 빨래, 바느질, 퍼머하기, pub의 역사 등 그냥 시시콜콜한 생활모습들을 꽤 재밌고 소박하게 잘 전시해 놓아서 하루 종일 구경해도 재밌을 만한 곳이었다.  

  무슨 구석기 청동기 해 가면서 왕관이나 의관 같은 소위 주류의 역사만을 홍보해 놓는 한국의 군립박물관하고 비교해도 더 교육적이고, 더 살아 숨쉬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게다가 특별 전시가 있으면 음료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완전 무료인 곳이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더 있으면서 안내판을 꼼꼼히 읽으면 좋았을텐데 막차 시간이 4 10분이라 그거에 맞추느라 대충 보다가 나갔다. 뮤지엄 건물 자체도 상당히 고풍스러웠고, 울타리랑 기둥에 사람 얼굴을 탈처럼 환조한 것을 붙여놓은 것이,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어서 재밌다. 뮤지엄을 나가니 버스시간이 한 이십분 정도 남아있어서 그 동네에 다운 타운에 딱 하나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costa커피숍에서 카페 라테를 젤 작은 걸로 시켜서 미라랑 쉐어를 하며 마시는데 확실히 여기 집에서 내가 매일 타먹는 커피 맛보다도 못한데, 이걸 2.4파운드에 사서 마신 것이다. 괜히 기분 망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커피 맛에 대해 코멘트를 하려다가 말았다. 알고 보니 프레드는 커피를 안 마신단다. 그가 또 나에게 결혼했냐고 물으니까 미라가 괜한 소리를 해서, 기분이 순간 화기애애해진 것도 같은데, 또 다음 날 만나니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서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여튼 이들 둘은 나하고 취향이 잘 맞아서 같이 돌아 다니는 게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 게다가 둘 다 수준이 보통 이상은 되어서 말 상대도 되고 최소한 짜증나거나 지루하진 않다.

 늦지 않게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놈의 엘리펀트 소굴에서 뭉기적거리며 일요일을 보내지 않았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그러다 보니 벌써 한 달이 흘렀다. 지금으로 말하면, 시간을 멈추고만 싶다. 돌아가서의 휴유증을 생각하니 지금부터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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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기온이 또 떨어지고 을씨년스럽다. 하루에도 해가 쨍쨍하다가 바람이 불었다가, 먹구름이 끼었다가 변화무쌍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비는 계속 안 오고 있다

 어제 밤에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일찌감치 침상에 들었지만 전전반측, 어제 하루 고된 데이 투어를 마쳤음에도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자정에 다시 불을 켜고 인터넷에 들어가 또 방 광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 짓도 점점 염증이 날 지경이다. 토요일 이 집 전화기를 이용해 연락이 닿은 아줌마는 아직도 답변이 없다. 그나마 마지막 희망이었는데아줌마도 친절하고 호의적이라 잘 될 거 같았는데 정말 실망이다. 문제는 소스가 점점 줄어간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격이 좀 낮은 곳은 질이 형편없다. 또 대여섯 개의 이메일을 날린 뒤에야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지만, 별로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 아침 그나마 수업이 9시 반이니 8시 넘어서 일어나도 되는 게 좋긴 하다. 이것도 학교 방문이 시작되기 전까지만이지만.. 씨리얼을 대충 좀 말아먹고, 또 완숙이 되지 않은 계란을 싱크대에 서서 까느라 손을 다 데이고 아침을 해결하고는 어젯밤에 레프트 오버한 치킨 커리 라이스를 마이크로 웨이브에 덥힌다. 양이 엄청 많다. 두 끼는 족히 먹을 만한 양이다. 그나마 양이라도 많으니 가지고 가서 나눠 먹을 만하다.

  점심시간에 커리를 먹으려고 하니 나이든 여자샘(엄지 손톱이 마귀할멈처럼 무좀에 걸려서 죽어버린)이 러펙토리 바에 전자레인지가 무료로 사용가능하단다는 말에 한 번 시도를 해 봤는데 이거 정말 괜찮다. 언제 엘리펀트에 의하면 영국식 라면이라는 그 봉지라면 가져와서 끓여먹어 봐야겠다. 좀 짜긴 하지만 양도 적고 면이 얇아서 대충 물만 먹고 렌지에 돌려도 될 듯하다..ㅋㅋ 점심 메뉴가 점점 진화되는 중..

 참 점심을 먹기전에 수업 시간 사이 쉬는 시간에 사무실의 샬롯이 다시 우리 교실에 와서 편지를 전해줬다..난 이게 뭥미? 멍을 때리며 봉지를 뜯는데 아니 이게 어제까지 연락을 주겠다던 그 집주인 여자의 편지가 아닌가? 세상에,,, 지메일로 메일이 전송되지 않는다고 편지를 썼다며, 전화를 달라는 메시지였다. 알고보니 t를 잘 못 듣고 적었던 것이었다. 이래서 전화로는 중요한 정보는 전할 수 없다니까..

 그 편지가 내 기분을 180도 바꿔놨다. 그 전엔 상당히 꿀꿀했는데, 그 편지를 받자 무슨 축복이라도 받은 양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면서 참 기분이 좋았다. 그냥 한 통의 전화를 생까지 않고 신경 써주는 배려가 고마운 것이었다. 영국인에게 다시 호감을 갖게 해주는 중요한 일대 계기라고나 할까?

 게다가 운좋게도 커리를 깨끗하게 먹어치운 직후 찾아간 인터네셔널 센터에서도 편지까지 증빙자료로 내미니 지체없이 전화를 사용하게 해 주었다. 또 더욱 기분좋게도 모바일도 아닌 집전화를 질이 잘 받아주어서 기분좋게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이로써 오늘도 할 일을 한 건 했다는 성취감을 안고 길을 떠날 수 있었는데, 이런 알고 보니 여기 로완필드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때 있는 바이런 로드를 세상에 몇 십분이나 길에서 헤맨 것이 아닌가?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도 하나의 계시로 느껴진다.

 구글 맵만 간략하게 수첩에다 적어 온 거에 의지해서 가다보니 너무 오줌이 마려워서 주유소에 가니 화장실이 없단다..여기는 주유소에 화장실이 없는 모양, 주유원이 별 희한한 질문을 한다는 표정이다. 바로 옆에 TGIF식당이 있어 헐레벌떡 가보니 문이 잠겨 있고, 또 뒤 쪽에 프리미엄 INN이란 건물이 있어서 가보니, 여긴 정말 술집이 아닌 여관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모던한 미국식 여관.. 유니폼을 갖춰 입은 이쁜 여자애가 프론트에서 전화를 받고 있어서 끝나기를 기다리자마자 바이런 로드를 물으니 컴퓨터로 검색까지 하며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근처에 사는 애들도 길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계획대로 화장실을 써도 되냐니까 친절하게 문앞까지 안내를 해준다. 여자에가 신호등에서 길건너서 좌회전 하라고 하는 말을 알아듣겠는데, 당쵀 기억이 안 된다. 여튼 그리고 나서도 한 대여섯번은 더 물어 봐서 바이런 로드에 들어서긴 했는데 이 동네는 확실히 주택가인데다가 중학생 즈음이나 그 보다 어려보이는 애들이 정말 많이 밖에 나와서 놀고 있어, 살기 안전한 동네라는 느낌이 팍 들었다.

  정말 어렵사리 동네를 찾기는 했는데, 이 동네는 다 길이름이 작가이름을 따와서 더 인상적이고 정이 간다. 셰익스피어, 키플링, 바이런 등등..그런데 어찌나 길 이름이 꾸불 꾸불 얽히며 설키며 바뀌는지 헷갈려 죽겠다. 이번엔 집 번호가 문제다. 63번까지 찾아는 갔는데 바로 65번으로 이어져 버린다..이게 또 뭥미냐?? 또 바로 코앞에서 마침 주차를 하는 여자에 물어보니, 무슨 프랑스 출신인지 희한한 억양으로 맞은 편 주택가 끝으로 가보란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그 말대로 하니 한 귀퉁이에 대분에 종을 단 그 질의 집이 있었다. 전화로 들은 목소리완 다르게 생긴 건 무슨 남자같다. 코 밑에 아주 연한 털이 아주 길게 자라 있는 것이 무슨 수염같아 보일 정도로 외모에 신경을 안쓰는 아주 독특한 여자인데, 레즈비언 같기도 한데 남편은 이스라엘에 있단다. 자유롭게 사는 스타일인 거 같다. 중학생 딸애도 이쁘긴 한데 무슨 머리 기른 남자애처럼 생겼다. 그래도 엄마 말에 의하면 요즘 틴에이저들 같지 않게 속이 깊고 마음이 따뜻하단다. 이 아줌마는 다른 집주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들어 가자 마자 자스민 차를 권하고 쿠키까지 갖다 준다. 아무튼 느낌이 다르다. 집도 정말 괜찮다. 이 가격에 얻기 힘든 집이다. 전체적으로 집이 좁긴 하지만, 엄마랑 딸만 단 둘이 사는 거니까,,게다가 방은 세 개인데 욕실은 두개, 변기만 또 하나가 더 있어서 화장실로 불편할 일은 없을 거 같고, 아줌마가 까탈스럽지 않을 거 같아 더 맘에 든다. 특별히 무슨 인터넷이니 세탁기 쓰는 거에 따로 돈을 받지도 않고, 자전거도 싸이클을 타고 다니는 게 취향도 나랑 딱 맞는다. 이 아줌마가 자전거에 대해서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도대체 잘 못 알아듣겠다. 자기 자전거를 빌려주겠다는 건지 뭔지 정말 중요한 말은 항상 헷갈린다.

 여튼 아줌마와 기분 좋은 대화를 하고 왔더니, 엘리펀트 아줌마도 스프링 클린을 했다면서 침대 시트랑 이불보를 갈아놨다. 새 침대에 눕는 기분으로 격일에 한 번씩 하는 샤워를 오늘은 덤으로 한 번 더 해준데다가 눕기 전에 사진도 한 컷 ㅋ

 참 한 달여 만에 엘리펀트 아저씨도 인터넷 허브를 이층으로 옮기는 대대적인 공사(?)를 해 주어서 그나마 커넥션이 많이 양호해졌다.그래도 이놈의 인터넷 회사가 문제인지, 계속 끊기는 건 여전하지만..

 써비스로 감기에 몽창 걸린 엘리펀트아줌마에게 레몬티를 타주었다.
전체적으로 기분이 아주 좋은 하루였고 내일 질에게서 확답만 받으면 나는 더 이상 좋을 일이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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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레이싱이 시작되었다. 네이션 와이드로 중계되는지 영국전역의 관심이 이 타운에 몰렸다. 타운 센터로 나가다 보면 Race-post라는 축제 깃발이 여기 저기 붙어 있다. 오늘 아침에 학교가는 길에 기차역 spa를 지나는데 아이리쉬로 보이는 남자 일군이 경쾌한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확실히 역 근처도 평소보다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어제는 밤 8시가 넘을 때 까지 팔자에도 없는 고기썰기에 불고기 양념 저리기를 했다. 이게 웬 지랄 같은 짓이야..속으로 푸념해쓴데, 오늘 아침부터 마치 어제의 노동의 대가를 톡톡히 받기라도 하듯이 엘리펀트 여자의 대접이 확실히 달라지고 말투도 나긋나긋해졌다. 여튼 나는 수시로 오가는 접대성멘트에는 닭살이 돋는 본연의 체질때문에 바껴진 대접이 달갑지만은 않지만, 어쩌겠는가 사회성 훈련이라고 생각해야지..

 학교 오고 가며 체감되는 바람이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 벌써 더욱 지경이다. 가을-겨울 간절기 옷만 바리바리 챙겨왔는데 어쩌나 겁이 덜컥 난다. 그래도 추운것보단 더운 것이 낫다싶어 그런건데 또 따가울 정도의 햇살아래 우충충한 검정색 일색의 옷만 입고 걸어가려니 내 자신이 추레하게 느껴진다. 누가 영국인을 팬션센스 꽝이라고 했는가? 오피스 걸들은 무채색만 입는다고? 여긴 런던이 아닌 시골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지나가는 여자들의 옷차림은 한국 못지않게 화려하고 다채롭고 엄청 신경쓴 그 자체다. 여긴 나이든 중년부인들도 꽃분홍에 센스있는 머플러, 장신구를 곁들이고 지나간다. 옷을 차려 입는 게 봄을 맞이하는 큰 즐거움이라는 듯이, 조금 뚱뚱한 여자들도 상당히 센스입게 코디한 경우가 많다. 체구를 과감히 드러내는 탑에 스타킹이나 레깅스, 장신구, 무엇보다 빽에 신경을 많이 쓰는듯, 샤넬 핸드백(맞는지 몰겠다)을 차고 걸어가는 초딩인지 중딩 여자에게 길을 물어본 적도 있다. 어린 걸들은 어찌나 멋을 내고, 화장을 진하게 했는데, 특히 백인녀들은 하나같이 마스카라로 한껏 속눈썹을 치장한다. 거의 눈화장만 강조하는듯..

 오늘은 날도 화창하고, 어제의 중노동에도 팔이 저리거나 힘들지도 않아서(엄청난 수면 때문에)계획한대로 다시 하이 스트릿으로 향했다. 별 기대 없이 갔는데,의외로 정말 웃기게도 일이 쉽게 풀렸다
 

 

 


점원이 카메라를 딱 보더니 수리 맡기면 150파운드는 나온다며,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냥 쉽게 자가 수리해도 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내가 전에 이미 해본대로 경통에 비뚤어진채 앞으로 톡 튀어나온 부분을 힘껏 눌러봤지만 역시 내 힘과 기술로는 역부족이라, 어차피 망가져도 좋으니 함 해봐달라고 했더니 그가 마치 큐빅 맞추듯이 경통을 돌리니까 앞으로 튀어나온 모서리가 쑥 들어가더니 전원버튼을 누르니까 신기하게 쏙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오호라 경사라! 이렇게 간단한 처치가 있었는데 그 돈을 주고 수리를 맡긴다니,,Jessop’s의 그 얍상하게 생긴 점원이 새삼 얄미워진다. 역시 내 예상이 맞은 것이다. 그 직원에게도 좀 손으로 어떻게 돌려보면 될 것도 같다고 말했더니 그 자식은 절대 안된다면서 싸가지없이 굴지 않았던가? 역시 작고 아담한 가게가 인간미가 있다니까..제섭스는 영국 전역의 카메라 체인인데, 삼성제품까지 진열해 놓을 정도로 거의 모든 브렌드의 디카를 다 갖추고는 있지만, 그런만큼 인간미가 떨어진다.

 반면 camera exchange는 오늘도 그냥 걷다가 지나쳤을 정도로 작고 아담하다. 들어가 보니 한쪽 벽엔 카메라 가방이 쭉 걸려 있고 맞은 편에만 카메라가 진열되어 있다. 삼성 건 취급도 안하고 있다. 내 쿨픽 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s3000 79파운드에 팔리는데, 한국에서는 최저가가 9만원 초반대라서 그거에 비하면 비싸지만, 주변의 옷가게 티 하나가 60파운드 정도인 거에 비교하면 비싼 것도 아니다.

 전자제품은 한국하고 거의 비슷하거나 쌀 수도 있을 듯 하다.

여튼 참하게 생긴 직원에게 야외서 찍는 법이랑 등등에 대해 추가적인 팁까지 들은 후에야 가게를 나왔는데, 정말 기분좋았다. 만약 이놈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지 않았다면 얻을 수도 없는 즐거움이다. 전화위복..참 아이러니하다.

 일본 열도가 탈출 러쉬를 이루고 있다니 이 또한 엄청난 전화위복이 아닌가? 방사능이 여기저기 악마처럼 떠돌 모양이다. 거기에 도미노처럼 한반도 지반도 매일 조금씩 흔들, 흔들 한다니 무슨 피난 온 기분까지 든다. 어떻게 같은 섬나라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일본에 못 가게 된 걸 천만다행이라고 여겨야 될 정도가 되는 건지 참 인생사 새옹지마다.

  그나저나 어제도 볶음밥에 무슨 버터를 몇 덩이 넣고 브로컬리 비슷하게 생긴 채소와 밀가루로 범벅을 한 파이 한 조각과 마늘 바케트 두 조각을 먹고 잤더니 얼굴이 또 엄청 부어 올라서, 오늘은 저녁을 커피 한 잔과 샐러드로 때웠다. 점심도 귀찮아서 안 싸 가니 오후 세시쯤에 귀가할 때쯤엔 엄청 허기가 져서 씨리얼 한 사발에 토스트 두 조각을 먹고, 어제 먹고 남은 그 예의 파이 한 조각을 먹으니 배가 두둑해지기도 했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 엘리펀트 비슷해질 것 같다..특히 저녁은 삼가하지 아니하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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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의 주택은 100프로 단독주택이고 대지면적은 한국의 그것보다 작거나 비슷한데 재밌는건, 실내가 매우 좁고 앞쪽으로 길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백야드로 정원을 만들려고 보니 자연스럽게 실내공간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정원이라 해봐야 사실 별게 없는데 내가 있는 집같은 경우 바베큐 화덕이랑 잔디, 돌멩이 몇개,,뭐 이런게 전부인데, 1층 거실을 나가면 부엌으로 연결되고 이 부엌의 유리창을 통해서 이 정원이 꽤 잘 보여서 그 날의 날씨를 나가지 않고도 바로 알수 있다. 여기 사람들은 조경(landscaping)이 취미라고 써놓은 경우가 많은데,,이 정도를 사실 조경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라면 식용채소를 일용노동자처럼 해대는데다 나무 몇 그루 화분 몇 개는 조경축에도 못 끼지 않나?? 

 여튼 아직 이 정원에 나가서 특별한 체험을 하진 못한 것이, 거실에서 봐도 날씨가 정말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의 차갑고 깨끗한 대기의 가을날씨처럼 맑긴한데 유리알처럼 차가운 느낌 바로 그것인데 실제로 나가봐도 공기가 그렇다..춥긴한데 매섭게 춥진 않아서 오한이 들진 않고, 내내 어설프게 추운느낌..실내도 난방을 팡팡 틀어놓는 경우를 거의 못 느꼈다. 물론 대형 쇼핑몰에서를 제외하고서는 여긴 주택들이 라디에이터 같은 걸 창문쪽에 설치하는 국부난방식이다. 바닥을 데피는 스탈이 아니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금요일 밤에 도착해서 다음날 8시쯤 기상했다. 생각보다 잠이 당췌 오지 않았다. 커피를 잔뜩마시고(기대와는 다르게 드립커피를 부엌에 상시로 놓고 향을 풍겨대지 않았다. 이 집은 한국처럼 인스턴트 커피 파우더로 타서 마신다. 대실망ㅠㅠ) 한국에서 큰맘 먹고 준비해온 고어텍스 재질의 윈드 브락커를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뭔 배짱인지 집주소나 전화번호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길 잃지마라는 주인여자의 당부를 조크로 받아쳤다.. 이럴땐 한 배짱한다니깐..

 물론 집을 걸어나오면서 주소 싸인을 확인하면서, 헨젤과 그레텔 처럼 빵조각 떨어트리듯이 사진을 조각 조각 찍어대는 걸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주택가에서 그러지 않았따는 점이고 더 심각한 문제는 여기는 아파트가 아니라 온통 단독주택 단지 투성이라 당췌 집들이 구별이 안된다는 점이다. 집의 구조나 설계디자, 페인트 색, 울타리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집 현관문에 집 번호를 새겨 놓긴 했지만, 그 주택가에서만 집주소로서 유효한 것이다. 어떤 구역은 집번호가 200번대에 이르고 어떤 구역은 그보다 적다.

 여튼 날씨는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자켓을 여미고, 길을 가는데  한 사발 들이킨 카페인 덕분인지 발걸음이 시차문제에도 불구하고 꽤 가벼웠다. 결국 이게 화근이었다. 피곤하기라도 하면 멀리 가지도 못했을텐데, 마치 분홍신처럼 뒷축이 이미 헤지도록 닳아버린 내 검은 운동화는 악마처럼 나를 낯선 골목으로 이끌고 갔다. 이럴 떄 보면 나는 정말 대책이 없이 용감하다. 평소의 나라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구글 어스를 확인하고 지도를 챙기고 심지어 나침반까지 가지고 다닐 나다. 그런데 간혹 이런 평소의 궤도를 확 이탈해 버릴 떄가 있는데 바로 이 날이 그랬다.
 더 민망한 것은 내가 이 집 동네에서 완전히 확 벗어나지도 않았으면서(사실 이 동네자체가 구멍각만하다..외국인한테만 미로처럼 보일뿐이지...작아서 더 헷갈리는지도 모르겠지만)길을 잃었다는 사실이고, 이 사실을 아주 늦게서야 깨달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산책만 할 생각이었고, 로드, 에비뉴, 스트리트 싸인등을 개 닭보듯이 그냥 지나쳤다. 중간 중간 얼토당토한 거리 모습을 찍어둔게 그나마 똑똑한 짓거리였다. 그 사진들은 레일 크로스, 아이언 디자인 컴퍼니 상호(대체 왜 찍은 거지?)그리고 오렌지 쥬스 광고판,,이때는 모든 것이 신선했고 유쾌해 보였다 ㅋㅋ,,자전거 도로 싸인, 말이 나와서 말인데 자전거 도로가 상당히 후진적으로 보인다. 기대와는 다르게 차량들의 주행속도도 한국에 못지 않고 상당히 불관용스럽게 차들을 몬다.. 미국의 시골에서 마주친 승용차들과는 적잖이 비교가 되어 실망스럽다.


자전거를 타기에 프랜드리한 환경도 아니면서 또 요구하는 것은 왜케 많은지 헬맷착용 의무에, 형광색 자켓,(이건 정말 웃긴다.그런데 이걸 다 걸치고 타는 사람도 간혹 있긴 하더군) 각종 야광 보호대.. 그럼에도 쿨하게 이런거 다 무시하고 타는 영스타들도 상당수다.. 영한 것들은 어디서나 반항적이거든..

 이렇게 별로 영양가 없는 사진들만 좋다고 찍어대다가 평범한 모습들에 지루해진 나는 하이 스트리트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이스트리트는 당장으로는 투머치인듯해서 대안으로 테스코로 향했다. 그 테스코가 이곳의 메인 스팟이고 그게 또 큰 길로 이어져서 하이스트리트로 연결되긴 하나본데 정작 테스코 광장에 들어서서 스포츠 용품 샵에서 발길이 멈췄다. 각종 스포츠 브랜드 제품, 자전거, 헬쓰 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아침 댓바람부터 온 바람에 손님도 없는 매장을 혼자 좋다고 쏘다니면서 나이키니 아디다스니 트레이닝 복을 입었다 벗었다 혼자 난리 부르스를 한참 떤 다음에서야 벌써 오후 1시가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는 안고픈데 꽤 피곤하고 뭣보다 졸리기 시작했따. 옳다구나하고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눈에 확 띠는 랜드마크가 그나마 몇 개 있어서 테스코 근처는 구분이 쉬웠다.

 그런데 메인 스트리트와 점점 멀어지는 주택가로 들어올수록 갈수록 태산이었다. 모든 집들이 비슷비슥해 보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내가 Nikon coolpix에 담아놓은 사진들을 돌려보기 시작했다.말그대로 backward,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홈스테이 집 현관사진 바로 다음에 찍힌 것이, rail -cross였다. 사진을 확인하기 전에도 이미 여기 부근까지는 기억이 선명했으므로 그 주위를 어슬렁 거렸다. 그런데 골목이 문제였다. 그 주변에 방향도 맞게 어느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들어서 보니 '이게 아닌갑다'는 느낌인 것이었다. 그 후로부턴 방항감각과는 영영 작별이었다. 결국 다시 빠져서 메인 로드로 나와보니 분명 사진에도 찍혀 있긴 하고 이 길을 거쳐 오긴 했는데 그전에 어느 골목을 통해서 집을 빠져나왔는지가

미궁에 봉착했다. 결국 다시 테스코 근처까지 왔고, 그 주변의 주택단지를 모두 훑게 되었다.. austine croft, road, avenue,,등등 어떤 주택가의 집들은 한국처럼 번호 키에 철통 경비를 갖춘 모양새였고, 대부분의 다른 집들은 허름했고, 몇 십년간 시간이 멈춘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듯은 그 등급을 매기자면 중간쯤될까?
그런데 이러한 평가 자체도 수많은 집을 지나면서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사진에 찍어놓지 않았다면 그 현관문이나 번호가 여하하였는지도 수많은 다른 데이터들에 묻혀서 바래져 버렸을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나의 최종 무기, 길 묻기가 시작되었다.. 그 즈음에 나는 내가 아주 어처구니 없이 위험한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 집에서 십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처럼 그 집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채로 그집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무식한 용감함에 치가 떨렸다. 거의 패닉 상태로 빠져들기 시작할 즈음에 아마 나는 세 명정도의 여자에게 길을 물었을 것이다. 대부분은 상냥한 얼굴을 가지고 상냥하게 가르쳐 주었지만, 집이 위치한 도로명이나 전화번호, 그들의 surname없이 그 집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그들이 내게 더 미안해 하며 멀어져갔다

그러던 와중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부와 마주치고는 그 중 남편에게 길을 물었더니, 이번에는 집이 아닌 경찰서가 어디냐고 물었다,,내 판단에 이런 경우 내 희망은 경찰서밖에 없었으므로,,그는 내가 길을 잃었음을 이해하고는 경찰서 대신 바로 옆 pub으로 데려갔다. 펍 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6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펍주인남자는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고는 내가 말하는 앤과 더그라는 사람에 대해서 물었다. 물론 나는 그들의 성이 뭔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주인 부부에게 몇 번이나 성이 뭔지를 물을까 하다가 말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전화번호부로 찾아봐 달라고 하니 전화번호부 책을 펼쳐서 보여주었지만, 성을 모르면 그런 흔한 이름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아내까지도 가세해서 너무도 진지하게 내 문제를 해결해주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펍에 손님들에겐 소 닭보듯이 하면서 말이다. 겨우 레지스터만 딸깍거리며 계산을 하곤 이내 내곁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곤 그는 내 집묘사에 따라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고 그곳으로 가보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방해하지 말고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그건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이 문을 나서면 , 이미 시계까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내가 집을 나설때는 오전 11시였다.. 더 어두워지면 끝장인 것이다..다행히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나는 더 이상의 대안이 없었다. 다시 돌아와서 경찰서에 대해서 말하자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경찰서는 거기서 한참 멀었다. 그렇지만 전화로 한참을 설명한 이후로도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고, 또 한참을 그와 그의 아내와 탐정처럼 희박한 단서를 가지고 김서방 찾기를 계속했다..내가 읽었단 체스터튼이나 크리스트 등의 영국 탐정소설이 아이러닉하게도  내 뇌리를 스친다.. 그들이 탐정소설에 탐닉하는 건 우연이 아니야..나는 지금 폐를 끼치기 보다는 그들의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야..라며 자가당착적인 착각에 빠져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집 주인 여자의 얼굴과 몸집은 꽤 피로해 보였다..이는 영국 중년, 노년 여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듯.. 그들이 웃지 않거나 말하지 않으면 다들 화나 보인다..몸 조차도 한 덩치들이라 화나 보이고 ㅠㅠ

 

결국 기다리던 경찰은 화장실 옆 문을 통해서 어느 순간 슬그머니 들어와 내 옆에 서 있어서 나는 감지조차 못했다.  알아 보기 쉬운 경찰복을 입은, 조금 놀랍게도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녀는 바로 나를 그녀가 운전하는 경찰차로 인도했고, 이내 골목 골목을 와일드한 운전태도로 훑기 시작했다..역시나 그녀 역시 내 묘사만으로는집을 못찾았다.. 결국 그녀는 조금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니 포기하고는 경찰서에 가서 동료에 물어봐야겠다고 했다. 역시나 경찰도 찾을 수 없었다..조금 언덕에 있고, 주변 집들의 모양새는 여느 집들과 다르게 다 크기, 색이 달랐고, 울타리는 낮은 벽돌이었고,집 사이의 로드는 매우 좁고 차들이 거의 지나지 않았다.. 이게 내 인상의 전부였으니 기대하는 게 무리다.

경찰서에 오니, 두 남자가 컴퓨터 앞에서 그날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듯 보였고, 그 중 한 남자에게 다가가 대학에 전화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역시 날 데러온 경찰이 전화를 했지만, 토요일 오후라 불통인듯, 물론 나는 그들이 보내준 문서에 24시간 비상 연락망을 갖고 있었으나, 역시나 무게를 줄인다는 핑계로 집에 놓고 나온 상태였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진짜로 상시로 이 전화번호에 누군가를 대기시키고 있었다. 결국 대학에 알아보는 건 포기하고, 내게 누가 나를 여기로 보냈는, 누가 픽업을 했는지를 묻기 시작했는데, 나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다..나중에 대학에 가서야 한씨성을 가진 한국남자가 중간에서 모든 것을 어레인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알았다고 해도 나는 그의 번호를 몰랐다. 여경찰은 다른 대안으로 내 사진에 찍힌 엠뷸란스를 토대로 여자 동료들에게 구글 어스를 훑으라고 한 모양이었다.(엠뷸런스가 있었던가?? 난 금시초문이었다..역시 사막에서 낙타찾기..) 나를 위층으로 데려가서는 컴퓨터로 주택가들을 보여줬다..테스코로부터 10, 대학으로부터 15..이라는 미약한 거리 정보를 가지고 추정된 주택가였는데 입체 사진을 봐도 당췌 구분이 안 되었는데..결국 나는 사진기를 다시 가져와 홈스테이 방에서 창문으로 찍은 바로 앞집과 그집 옆집 사진을 다시 보여주고, 줌인을 해서 크게 보여줬는데 그제서야 그들은 유레카를 외쳤다! 그 사진을 줌인하자, 그 집 앞에 주차된 차량의 번호판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또 왜 경찰은 디카의 줌인 기능에 대해 전혀 몰랐을까?? 여튼 그녀는 차량 번호를 조회했고 이내 주소를 알아냈다.. 모든 것이 사실 정말 간단했던 것이다.. 다만 내가 이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정말 찍는 순간에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에 따른 사진이었다. 내가 이집들을 도찰하거나 몰래 들어갈 작정이 아니었다면 왜 이웃집을 찍겠는가..나의 어린애같은 태도와 행동이 쓸모있을 데가 있는 것이다 ㅋㅋ

 

결국, 그녀가 나를 그 집 문앞에 데려다 놓았을 때, 나는 거의 감격한 채 그녀를 얼싸안고 키스를 퍼붓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그냐가 원치 않는듯 보여서 참았다..

 

그 동안 주인집 부부는 거실 창으로 내가 경찰차를 타고 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나는 너무나 피곤했으므로, 연기자처럼 과정되게 상황을 설명해줬다. 저녁같은 건 생략하고 바로 침대로 돌진하고 싶었지만,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우니 배가 고파서 견딜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한그릇을 깨끗하게 먹어치우고 길고 장황했고 어처구니없었던 하루를 유쾌하게 마감했다.. 왠지 영국식 코메디같아서 재밌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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