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법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1996년 1월
평점 :
절판
뒤렌마트, 나는 그를 매우 좋아한다. 독일어권의 분석철학 냄새가 나는 소설들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와도 혼동을 일으키곤 한다. 그 역시 소설가, 극작가였다. 네덜란드 태생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만으로 활동했다. 뒤렌마트나 베른하르트나 아마도 철저한 현실인식, 불우했고 우울했던 유년시절이 추후의 작품 활동이나 작품의 분위기를 지배했을 것으로 쉽게 짐작 가능하다.
무엇보다 <법>이란 소설에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그 딱딱하고 견고한 '법'이란 틀의 틈을 뚫고 이렇게 현란한 '풀씨'를 뿌리고, 틔어 놓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추리소설'을 아주 잘 안다는 마니아들도 뒤렌마트의 진가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 이름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 에코가 추리소설식 교양소설을 쓰는 데 그가 추리 소설가라기 보단 '인문학자'로 대접받는 것과도 유사한 것일까? 아무튼 국내에서 아마도 그는 '독일어권'의 거장으로 인식될 뿐, 추리소설권의 무엇으로 인식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듯 하다.
추리소설의 최근 장르들이 '하드 보일드'를 지향하는 바가 없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그는 하드 보일드의 철저한 이론가이면서, 실천가라 할 만하다. '법'이란 텍스트와 '탐정' '경찰' 이란 그 텍스트의 추종자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그 '법'의 '이상성 내지는 완벽성' 을 교란시키는지를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법'도 사실 컨텍스트의 범주를 이탈할 수 없다는 것. 해석과 입법과 실천의 삼자에 있어 상호 교류하면서 변질되고 변주된다는 사실..
국내에서 90년 초엔 '트랜스 젠더'가 법적으로 성전환이 가능했다. 이는 '생물학적 성 보다는 사회학적 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덕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 해만 넘어가자 법조항에 대한 해석조차도 꼴깍 뒤집어졌다. '아무리 성전환을 했더라고 생물학적인 성까지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 또 다른 해석이었다. 둘 다 맞다. 가능한 해석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현실적인것인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