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브라질에서 온 순진한 여성이 스위스까지 끌려가서 매매춘을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코엘료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이런 사회성 짙은 작품에서도 강한 게, 마리아의 모험이 온전히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됐다는데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 여성을 사는 남성의 대다수는 40대에서 50대까지에 이른다. 이 소설에서처럼 마리아에게 '빛'을 느꼈다는, 젊은 화가같은 사람은 사실 매매춘여성으로서 낚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부인과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누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처럼 성에 질리거나, 혹은 여성을 테스트하여서 자신의 애인으로 두려는 젊은 변태성욕자 따위를 실제로 그들이 상대할 확률도 저조하다. 대부분은 자신의 부인과 차마 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머릿 속에 든 건 있는 자들이 벌이는 1시간 남짓한 유희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이들 대부분이 고학력, 중산층 계층이란 것도 재미있는 통계적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매매춘을 둘러싼 모험을 아주 밀도 높게 그린 이 소설과, 우엘백의 '소립자','플랫폼'은 같은 선상에서 비교분석할 가치가 있다. 후자는 매매춘을 소비하는 중산층, 삼십대 후반의 남자의 시각 즉, '나'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술한다. 두 소설 공히, 매춘관광을 아주 자세하고 건조하게 그리고 있다.
반면에, 전자는 매매춘을 공급하는 하류계급 출신의 이십대 초반의 미숙한 여성의 시각, 즉 '마리아,혹은 그녀'의 눈으로 사물을 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작가는 그녀에 대해 논평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그녀가 일기를 쓰는 태도 혹은 남자 및 사랑을 대하는 입장을 묘사하면서 작가는 그녀가 매우 어리석거나 순진하다고 여기게끔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친절하게도 그녀가 그런 자신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지적으로 보이려고 꽤 노력한다는 사실까지도 덧붙인다.
이렇게 같은 소재를 놓고, 두 작가가 접근하는 방법은 아주 대조적이다. 결말이나 문체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성매매 소비자의 시각에서 그려진 소설(군)들의 결말은 매우 암담하다. 작가에게 희망이란 어디에도 없다. 들뢰즈와 같은 욕망과 욕망을 통한 소시민의 혁명을 꿈꾸는 그는 너무나 전복적이다. 반면에, 성매매여성의 꿈과 성공담을 그리고 있는 것만 같은 코엘료의 이 작품은 다분히 현실타협적이다. 결말 역시 '예쁜 여자' 신드롬 계열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여성의 심리 묘사에서 꽤 복잡하고, 변덕스러운 소묘를 그려보이지만, 그런 레이스같은 요란스러운 장식을 빼고 나면, 사실 별 볼일 없는 고민과 내면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작가가 요즘 남한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인 '여성 성매매'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정치 사회적인 그의 스탠스는 어디에도 어떻게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허점이다. 참고로, 유럽에서는 노르웨이 같은 매매춘에 이중적인 나라를 제외하곤, 대부분 성매매의 소비자인 남성을 강하게 규제하는 방향으로 이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