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복거일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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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이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고 주장하며 복거일을 편들어 준 바 있지만, 원천적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 말자고 하는 것이 편협한 국수주의적 발상이라는 도식자체가 문제가 많다. 그나 고종석이나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란 이데올로기를 파는 학자 혹은 작가들 일색일 뿐이다. 진정한 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자신만의 독창적 사유로 험란한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할 텐데, 그들이 공용어의 근거로 주장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상업적 자본주의'에 입각한 공용화의 우수성일 뿐이다.

과연 공용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감안하고 계시는지 의심스럽다.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미국조차도 이중언어 교육에 철퇴를 가하는 마당인데 어찌 그리 시야가 넓고 교육 효과를 장기적으로 관망하는지 영어 의 이중언어적 효율성에 대해선 전혀 의문을 갖지 않는다.

사대주의자를 자유주의자와 동일시하는 것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지만, 국수주의를 영어 교육 반대론자와 무분별하게 일치시키는 것도 문제다. 그런면에서 복거일의 이 주장은 근거부터가 비틀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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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 - 교양선집 6
시몬느 뻬트르망 지음 / 까치 / 197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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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는 유태계로 그녀의 오빠는 유명한 수학자였으며 기혼이었지만,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오빠에 비해 두뇌가 떨어지는 것을 한탄하기도 했고, 적군의 병사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등'희생정신'이 강한 소녀였다. 이 전기는 그녀의 무수한 전기 중 하나로 '국립 사범대' 동창인 동일한 이름의 '시몬느'란 여성 작가가 쓴 작품으로 가치가 있다. 태어나면서 죽기까지 그녀의 흔적을 그 내면까지 천착해 가면서 추적한 좋은 전기다.

대학시절, 그녀는 시몬느(또 시몬느다)보봐르와 폴 싸르트르와 함께 공부했다(국립 사범대 철학과는 우리나라의 서울 법대에 맞먹는다) 그런데 이들의 조우가 재미있다. 두 시몬느는 서로 전혀 동질감을 느낄 수 없었던 것. 그녀는 어떤 여학생보다 '괴팍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인물로 이미 찍혀 있었다고 한다. 아마 지나친 금욕 주의 탓이었을 것이다. 이미 어린 시절 부터 그녀는 '잔다르크'의 재생처럼 느껴질 정도의 인물이었다. 매우 정교하게 교육받고 부유한 의사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만을 제외하면,,

이 책에는 그녀가 썼다는 매우 흥미로운 수필들이 소개된다. 전문은 아니라 아쉽지만 예컨데 우리도 익히아는 서양 동화 '7마리의 백조와 그 백조들을 마법에서 풀려나게 하려고 벙어리인 채 뜨개옷을 뜨는 소녀'이야기를 새로운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작품 등이 그것이다.

여러 모로 그는 상상력과 넘치는 아이디어로 충만했던 사상가였다. 게다가 위험을 모르는 실천가였으며, 많은 여제자들을 감동시킨 철학 교수였다. 그럼에도 정치 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기독교적 신비주의에 경도되는 바가 크다. 후대에 그녀를 '기독교적 신비주의적 철학자'라며 스피노자 계열의 실존철학자로 등극시키려는 수작?등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는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는 우매한 짓거리다. 그런 식으로 그녀를 범주안에 고착 시킴으로써 다 나은 연구들을 종식시킬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누구보다 과감하고 진보적이었다는 이유가 오히려 그녀를 보수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남성 학자 일단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지도 모르나, 남성 사상가들처럼 그도 역시 마땅한 여러 해석을 요한다. 그럼으로써 그의 사상이 재 발견되고 재 공유되는 마당이 펼쳐져야 한다.

예상했던 대로 이 책의 중반을 넘어서, 영국의 작가 겸 혁명 지도자인 로오렌스의 '지혜의 일곱기둥'에 대한 언급을 찾아냈다. 당시는 1930년대로 시몬느가 스페인 전선에서 돌아와 휴양을 취하던 시기였고, T.E 로렌스는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휴였다. 시몬느는 그 당시 고야와 로오렌스의 매력을 알게 되고, 깊은 애정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로오렌스를 평하길 ' 전쟁 영웅 중 이만한 학식과 깊은 사상, 온건한 인간성을 지는 인물은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고 했다. 그 만큼 그 자신 게릴라 전에서 싸우고 돌아온 '괴짜 철학자'이니 그의 머리에서 나올 만한 말이다. 둘의 나이 차이는 21살. 만약 죽지 않고 만나게 되었다면 '세기적 만남'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한 사람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또 한사람은 거의 영양실조로 죽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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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수학자 갈루아 1
톰 펫시니스 지음, 김연수 옮김 / 이끌리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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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빼갔고 와서 책상에 앉아서 펴 보았더니, 두 책에 '김연수'란 이름이 달려 있었다. '굳빠이 이상'과 이 책의 저자인 김연수. 물론 동일 인물이다. 김연수는 영문과 출신이고, 이 책의 서문에서 '직역'보다는 한국어 어법에 맞게 '과감한 직역'을 했노라고 했다.

과연 읽어보니 그랬다. 만족스러운 셈세한 떨림까지 느낄 수 있는 한국어 번역이었다. '굳빠이 이상'도 너뎃권도 넘게 빼놓은 책 중에는 괄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내 취향이 편향된 것인지도 모르지.. 이문구의 '나의 몸은 너무나 오래 서있거나 ..'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전라도 사람인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걸지게 재생하는 이 소설의 촌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딱딱하고 건조한 문체, 그리고 길지 않은 문장 속에서 명민한 사변을 토하는 그런 문장들을 너무 좋아하는 탓이다. 이런 선호의 기준에 비추어서 김연수의 두 작품(번역도 창작이다)은 나를 만족시켰고, 특히 갈루아의 이 특이한 전기는 내 구미에 잘 맞았다.

평범한 15세의 소년이 어떻게 자신을 '영웅시'하면서 '열등감'을 헤쳐 나가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완벽히 갈루아란 천재의 몸속으로 들어간 듯한 작가의 묘사는 압권이다. 15세 소년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아마 40은 족히 넘겼을 나이의 작가는 자신의 몸을 '축소'시키고 변형시키고 퇴보시켰을까? 그 보다는 갈루아란 천재의 명민한 의식이 시대와 연령을 초월하는 바가 있기에 오히려 일종의 향수와 만족감을 가득 안고 파고 들지는 않았을까?

첫 장에서 i에 대한 사색은 정말 신선했다. 영어로 나를 의미하는 이 한 글자의 영단어. 물론 독일 프랑스 어로도 나를 뜻하는 대명사의 가장 앞글자로 i가 쓰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i가 어떻게 수학적 허수의 '기호'로 쓰일 수 있었는지 그것의 간략하고 시적인 설명이 돋보인다. 과연 허수로서의 I가 자아를 뜻하는 I와 교묘하게 직교된다. 불교적인 해석도 엿볼 수 있고 말이다. 즉 자아를 無我로 해결하는 불교의 세계를 통해서 말이다. 불교의 깨달음은 바로 자아가 허상임을 깨닫고 이 자아란 '문둥이'를 지워나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 천재가 자신을 '나폴레옹'과 동일시하면서, 수없이 나폴레옹을 노트에 끄적거리고 '사회개조'의 필요성에 눈 떠가는 과정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마치 동시대 '적과 흑'의 젊은 청년처럼 그는 사회의 부조리에 서툴게 대항하고, 마치 라디게처럼 '결투'로 장렬히 전사한다. 그리고 랭보처럼 혁혁한 업적을 남긴다. 특히 오히려 주위의 평범한 소년들에 비해 성적,신체적으로 늦된 소년의 발육이 '정신적 조숙함'을 재촉하고 있음은 다른 경우와 비교해 보아도 무척 보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나는 생각한다. 천재는 '열등함'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고. 모든 면에 적당한 사람은 결코 천재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를 천재로 추동하는 근원력이 부재하므로..

E.T 벨의 '수학을 만든 사람들'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바 있었던 청년 수학자 갈루아가 다시 내게 살아 돌아 왔다. 이런 책이 있었음을 진작 알았으면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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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메리의 아기 - Q Mystery 12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8
아이라 레빈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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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메리는 그야말로 천상 여자다. 소심하고 모성애가 풍부하고, 소박하게 웃고, 친절하다. 로즈메리 역을 한 미아 페로우는 그런 캐릭터에 글쎄 꼭 맞는 타입은 아닌 것같다. 적어도 전반부에 등장하는 로즈메리로서는 .. 그러나 이 로즈매리가 후반부에 갈 수록 악마들의 간계에 빠져, 거의 돌아버린다. 그런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는 미아 페로우는 매우 적합한 배우다. 약간 중성적이며, 불안정한 눈빛, 그리고 겁을 잔뜩 먹은 듯한 야윈 뺨.. 그녀가 매우 젊을 때 출연했는데 강한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을 좋은 영화. 죽음전의 키스에 비해 영화로도 잘 만들어졌다.

이 소설의 주제는 그가 쓸 당시만 해도 정말 센세이셔널한 것이었으리라. 로즈메리의 심리변화, 그리고 친절한 중산층 이웃들이 악마로 밝혀지는 과정의 묘사. 그리고 조금 멍청하고 터프한 남편이 한낱 꼭두각시로서 로즈메리의 비극에 가담한다는 것. 어디 에도 호소할 수 없는 임신한 녀자의 부조리한 현실을 증폭해서 그렸다고 할까? 소위 임신 불안증,, 우울증 따위를 극대화시키면 '내 아이가 악마는 아닌가? 모성애도 천성적이거나 본능적인 것은 아니란 것이란 연구 결과가 속속 밝혀지면서.. 이 한편의 섬짓한 픽션은 현실에 시사한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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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포르노 수집가의 회고록
아르만드 코펜스 지음 / 예문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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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Memoirs of Erotic Bookseller〉. 프랑스, 스페인, 중남미 등지에서 동시 출간되었고, 출간 직후 많은 논란과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에로티시즘 비평계에 의해 본격 에로티시즘 소설로 극찬받은 작품이다. 포르노그라피의 말초적이고 본능적인 세계를 다룬 기존의 에로소설물과는 달리, 이 책 〈어느 포르노 수집가의 회고록〉은 포르노그라피에 매료된 많은 등장인물들의 상처를 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어루만지고자 하는 작가의 인간적이고 진지한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섹스/인간/포르노그라피'에 대해 전래하는 방대한 서적들을 예증하고 있으며 18세기 유럽 에로티시즘 문학의 뒷맥을 잇는 큰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은이는 아르만드 코펜스. 하지만 그의 약력에 대한 기록은 전무한 상태이며, 가상의 인물로만 전한다. 단지 이 아르만드 코펜스라는 가공의 인물 뒤에, 이 책의 저자로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한 유명 문장가가 존재하고 있으리라고 추측될 뿐이다. 이 같은 이유에 대해 많은 문학연구가들은, '작가 스스로가 파렴치한으로 몰릴 가능성을 배제하고자 한 일방적이고 단순한 책략이 이 책의 문학적 위치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실명등장을 꺼리게 한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주요내용은 주인공이 에로물 전문서적상으로 변신해가면서 겪는 포르노그라피의 세계와 여러 형태의 성도착증 인물들과의 흥미로운 만남들이다. 이 과정에서 성에 대한 작가의 방대한 지식이 흥미롭게 피력되고 보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포르노맨들의 고뇌에 찬 모습이 부각된다.

어떠한 장르도 하위와 상위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포르노나 추리물은 하위일까? 그렇지 않다. 장르 문학에 대한 전문가들은 어떤 전문가들 못지 않은 분석력과 통찰력을 갖고 있다. 장르의 내용에 장르의 전문가가 종속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책 〈어느 포르노 수집가의 회고록〉은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보다 인간적인 이해와 통찰을 통해 문학으로써 에로티시즘이라는 장르에 인간적이자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나아가 그 전언을 우리 삶에 부여해주는 최초의 소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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