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수학자 갈루아 1
톰 펫시니스 지음, 김연수 옮김 / 이끌리오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빼갔고 와서 책상에 앉아서 펴 보았더니, 두 책에 '김연수'란 이름이 달려 있었다. '굳빠이 이상'과 이 책의 저자인 김연수. 물론 동일 인물이다. 김연수는 영문과 출신이고, 이 책의 서문에서 '직역'보다는 한국어 어법에 맞게 '과감한 직역'을 했노라고 했다.

과연 읽어보니 그랬다. 만족스러운 셈세한 떨림까지 느낄 수 있는 한국어 번역이었다. '굳빠이 이상'도 너뎃권도 넘게 빼놓은 책 중에는 괄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내 취향이 편향된 것인지도 모르지.. 이문구의 '나의 몸은 너무나 오래 서있거나 ..'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전라도 사람인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걸지게 재생하는 이 소설의 촌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딱딱하고 건조한 문체, 그리고 길지 않은 문장 속에서 명민한 사변을 토하는 그런 문장들을 너무 좋아하는 탓이다. 이런 선호의 기준에 비추어서 김연수의 두 작품(번역도 창작이다)은 나를 만족시켰고, 특히 갈루아의 이 특이한 전기는 내 구미에 잘 맞았다.

평범한 15세의 소년이 어떻게 자신을 '영웅시'하면서 '열등감'을 헤쳐 나가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완벽히 갈루아란 천재의 몸속으로 들어간 듯한 작가의 묘사는 압권이다. 15세 소년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아마 40은 족히 넘겼을 나이의 작가는 자신의 몸을 '축소'시키고 변형시키고 퇴보시켰을까? 그 보다는 갈루아란 천재의 명민한 의식이 시대와 연령을 초월하는 바가 있기에 오히려 일종의 향수와 만족감을 가득 안고 파고 들지는 않았을까?

첫 장에서 i에 대한 사색은 정말 신선했다. 영어로 나를 의미하는 이 한 글자의 영단어. 물론 독일 프랑스 어로도 나를 뜻하는 대명사의 가장 앞글자로 i가 쓰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i가 어떻게 수학적 허수의 '기호'로 쓰일 수 있었는지 그것의 간략하고 시적인 설명이 돋보인다. 과연 허수로서의 I가 자아를 뜻하는 I와 교묘하게 직교된다. 불교적인 해석도 엿볼 수 있고 말이다. 즉 자아를 無我로 해결하는 불교의 세계를 통해서 말이다. 불교의 깨달음은 바로 자아가 허상임을 깨닫고 이 자아란 '문둥이'를 지워나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 천재가 자신을 '나폴레옹'과 동일시하면서, 수없이 나폴레옹을 노트에 끄적거리고 '사회개조'의 필요성에 눈 떠가는 과정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마치 동시대 '적과 흑'의 젊은 청년처럼 그는 사회의 부조리에 서툴게 대항하고, 마치 라디게처럼 '결투'로 장렬히 전사한다. 그리고 랭보처럼 혁혁한 업적을 남긴다. 특히 오히려 주위의 평범한 소년들에 비해 성적,신체적으로 늦된 소년의 발육이 '정신적 조숙함'을 재촉하고 있음은 다른 경우와 비교해 보아도 무척 보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나는 생각한다. 천재는 '열등함'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고. 모든 면에 적당한 사람은 결코 천재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를 천재로 추동하는 근원력이 부재하므로..

E.T 벨의 '수학을 만든 사람들'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바 있었던 청년 수학자 갈루아가 다시 내게 살아 돌아 왔다. 이런 책이 있었음을 진작 알았으면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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