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 레이싱이 시작되었다. 네이션 와이드로 중계되는지 영국전역의 관심이 이 타운에 몰렸다. 타운 센터로 나가다 보면 Race-post라는 축제 깃발이 여기 저기 붙어 있다. 오늘 아침에 학교가는 길에 기차역 spa를 지나는데 아이리쉬로 보이는 남자 일군이 경쾌한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확실히 역 근처도 평소보다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어제는 밤 8시가 넘을 때 까지 팔자에도 없는 고기썰기에 불고기 양념 저리기를 했다. 이게 웬 지랄 같은 짓이야..속으로 푸념해쓴데, 오늘 아침부터 마치 어제의 노동의 대가를 톡톡히 받기라도 하듯이 엘리펀트 여자의 대접이 확실히 달라지고 말투도 나긋나긋해졌다. 여튼 나는 수시로 오가는 접대성멘트에는 닭살이 돋는 본연의 체질때문에 바껴진 대접이 달갑지만은 않지만, 어쩌겠는가 사회성 훈련이라고 생각해야지..

 학교 오고 가며 체감되는 바람이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 벌써 더욱 지경이다. 가을-겨울 간절기 옷만 바리바리 챙겨왔는데 어쩌나 겁이 덜컥 난다. 그래도 추운것보단 더운 것이 낫다싶어 그런건데 또 따가울 정도의 햇살아래 우충충한 검정색 일색의 옷만 입고 걸어가려니 내 자신이 추레하게 느껴진다. 누가 영국인을 팬션센스 꽝이라고 했는가? 오피스 걸들은 무채색만 입는다고? 여긴 런던이 아닌 시골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지나가는 여자들의 옷차림은 한국 못지않게 화려하고 다채롭고 엄청 신경쓴 그 자체다. 여긴 나이든 중년부인들도 꽃분홍에 센스있는 머플러, 장신구를 곁들이고 지나간다. 옷을 차려 입는 게 봄을 맞이하는 큰 즐거움이라는 듯이, 조금 뚱뚱한 여자들도 상당히 센스입게 코디한 경우가 많다. 체구를 과감히 드러내는 탑에 스타킹이나 레깅스, 장신구, 무엇보다 빽에 신경을 많이 쓰는듯, 샤넬 핸드백(맞는지 몰겠다)을 차고 걸어가는 초딩인지 중딩 여자에게 길을 물어본 적도 있다. 어린 걸들은 어찌나 멋을 내고, 화장을 진하게 했는데, 특히 백인녀들은 하나같이 마스카라로 한껏 속눈썹을 치장한다. 거의 눈화장만 강조하는듯..

 오늘은 날도 화창하고, 어제의 중노동에도 팔이 저리거나 힘들지도 않아서(엄청난 수면 때문에)계획한대로 다시 하이 스트릿으로 향했다. 별 기대 없이 갔는데,의외로 정말 웃기게도 일이 쉽게 풀렸다
 

 

 


점원이 카메라를 딱 보더니 수리 맡기면 150파운드는 나온다며,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냥 쉽게 자가 수리해도 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내가 전에 이미 해본대로 경통에 비뚤어진채 앞으로 톡 튀어나온 부분을 힘껏 눌러봤지만 역시 내 힘과 기술로는 역부족이라, 어차피 망가져도 좋으니 함 해봐달라고 했더니 그가 마치 큐빅 맞추듯이 경통을 돌리니까 앞으로 튀어나온 모서리가 쑥 들어가더니 전원버튼을 누르니까 신기하게 쏙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오호라 경사라! 이렇게 간단한 처치가 있었는데 그 돈을 주고 수리를 맡긴다니,,Jessop’s의 그 얍상하게 생긴 점원이 새삼 얄미워진다. 역시 내 예상이 맞은 것이다. 그 직원에게도 좀 손으로 어떻게 돌려보면 될 것도 같다고 말했더니 그 자식은 절대 안된다면서 싸가지없이 굴지 않았던가? 역시 작고 아담한 가게가 인간미가 있다니까..제섭스는 영국 전역의 카메라 체인인데, 삼성제품까지 진열해 놓을 정도로 거의 모든 브렌드의 디카를 다 갖추고는 있지만, 그런만큼 인간미가 떨어진다.

 반면 camera exchange는 오늘도 그냥 걷다가 지나쳤을 정도로 작고 아담하다. 들어가 보니 한쪽 벽엔 카메라 가방이 쭉 걸려 있고 맞은 편에만 카메라가 진열되어 있다. 삼성 건 취급도 안하고 있다. 내 쿨픽 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s3000 79파운드에 팔리는데, 한국에서는 최저가가 9만원 초반대라서 그거에 비하면 비싸지만, 주변의 옷가게 티 하나가 60파운드 정도인 거에 비교하면 비싼 것도 아니다.

 전자제품은 한국하고 거의 비슷하거나 쌀 수도 있을 듯 하다.

여튼 참하게 생긴 직원에게 야외서 찍는 법이랑 등등에 대해 추가적인 팁까지 들은 후에야 가게를 나왔는데, 정말 기분좋았다. 만약 이놈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지 않았다면 얻을 수도 없는 즐거움이다. 전화위복..참 아이러니하다.

 일본 열도가 탈출 러쉬를 이루고 있다니 이 또한 엄청난 전화위복이 아닌가? 방사능이 여기저기 악마처럼 떠돌 모양이다. 거기에 도미노처럼 한반도 지반도 매일 조금씩 흔들, 흔들 한다니 무슨 피난 온 기분까지 든다. 어떻게 같은 섬나라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일본에 못 가게 된 걸 천만다행이라고 여겨야 될 정도가 되는 건지 참 인생사 새옹지마다.

  그나저나 어제도 볶음밥에 무슨 버터를 몇 덩이 넣고 브로컬리 비슷하게 생긴 채소와 밀가루로 범벅을 한 파이 한 조각과 마늘 바케트 두 조각을 먹고 잤더니 얼굴이 또 엄청 부어 올라서, 오늘은 저녁을 커피 한 잔과 샐러드로 때웠다. 점심도 귀찮아서 안 싸 가니 오후 세시쯤에 귀가할 때쯤엔 엄청 허기가 져서 씨리얼 한 사발에 토스트 두 조각을 먹고, 어제 먹고 남은 그 예의 파이 한 조각을 먹으니 배가 두둑해지기도 했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 엘리펀트 비슷해질 것 같다..특히 저녁은 삼가하지 아니하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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