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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을 들어간 첫해 역사와 관련된 분반 활동을 했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보면 근현대사 책을 읽고 이야기도 하는 그런 모임이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그 분반활동을 할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지금까지 기억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제주 4.3 항쟁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은 4.3항쟁이 재평가가 되어 남한단독 정부수립과 친일세력에 반대했던 민중시위라고 배우고들 있지만, 당시 내가 알던 내용은 종북세력이 민중을 선동해서 일으킨 폭도라는 내용이었다. (지금 더 찾아봤는데, 해당 사건은 2000년부터 정부에서 재조사를 시작하여 2003년 10월 진상조사 결과가 공식적으로 나왔다고 한다. 다음 내용을 참고하기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20321&cid=46626&categoryId=46626 ) 나는 그 때 단 몇 번의 분반 활동으로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걸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로 생각했다. 역사를 내가 찾아서 다시 공부하고 들어야 겠구나, 그리고 나서 판단해야 겠구나, 내가 알고 있는게 어쩌면 잘못된 사실일 수도 있구나. 특히 근현대사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는 모든 것이 섞여있는 혼돈의 상태구나.
유시민 전 의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 - 그는 지식소매상이라고 본인을 정의하지만 - 이 본연의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와 낸 이번 역사서는 읽기에 수월하면서도 요모보조 만만치 않다. 그는 전후 폐허에서 태어나 새마을 운동과 군부독재를 지나 민주화운동 시대를 거쳐 진보정권도 경험해 본 근현대사의 최전선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 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성장담을 이야기하듯, 현대사를 굉장히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책이다 [나의 한국현대사]는. 그의 현대사는 4.19와 5.16을 지나 70-80년대 경제성장을 거쳐 민주화 운동까지 이어진다. 각 꼭지별로 주제를 명확하게 분리해서, 4.19와 5.16에 한 꼭지, 경제발전에 대해서 한 꼭지, 민주화에 대해서 한 꼭지, 사회변화에 대해서 한 꼭지, 마지막으로 북한과 어떻게 지내왔고 바라보아야 하느냐에 대해서 한 꼭지로 책을 마무리한다.
[나의 한국 현대사]를 잘 썼다고 느끼는 점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읽기 굉장히 쉽고 - 앉은 자리에서 마음 먹으면 하루 밤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다 - 책에 수록된 시각자료 선택을 굉장히 적절하게 했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화 쪽에서 사용한 사진들이 머리속에 오래 각인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 나 뿐만이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 째는 '가능한 사실'을 서술하려고 하고, 본인의 의견은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이다. 본인이 중도라는 이름에 맞지 않는다는걸 알기 때문인지,아니면 명쾌하게 논란의 여지를 없애려고 한 탓인지, 이 부분은 꽤 명쾌한 편이다. 한국 현대사를 읽는 본인의 관점을 명확하게 제시한 셈이라서 동의가 가는 부분은 같이 공감하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곰곰히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이 부분이 어정쩡한 중간을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꽤 괜찮은 서술의 예가 될 것 같다.
특히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놀랐던 부분은 내가 몰랐던 너무나 많은 일들이 지난 이야기속에는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현재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씨가 왜 왕 비서관인지, 현재 대통령과 어떤 인연인지도 알게 되고, 나같은 노동자의 안전판이라고 할 수 있는 고용보험을 추진한 사람이 김영삼 전대통령 시절의 이인제 씨였다니. 1993년 노동부 - 무려 이인제씨가 노동부라니 - 장관이었던 시절 재계의 무수한 비난을 감내하고 추진해서 노동자가 고용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구나. 너무나 몰랐던 사실 들이 많아서 곰곰히 책을 읽으면서 창 밖도 한번 내다보고, 길거리도 쳐다보고, 길에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한번 보게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질 어떤 일도 역사 속 한 장면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