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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지하철에서 대문짝 만한 이선균과 김민희의 얼굴이 들어왔다. 두 주인공의 얼굴은 별 표정이 없어서 감흠이 없었다. 약혼녀를 찾아야 한다는 이선균의 표정도 별반 절박함이 없고, 나를 찾지 말라는 카피의 김민희는 무표정에 가까웠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생각했다. 앗 그 화차(火車)인건가. [모방범]으로 한국에서 정점을 찍었던걸로 보였던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소설은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달라며 약혼자가 형사에게 찾아온다. 형사는 업무중 입은 부상으로 재활치료 중이며, 찾아온 약혼자는 지금은 죽은 아내의 먼 친척이다. 평소 왕래가 있던 살가운 사이가 아닌데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니 거절을 하기도 수락을 하기도 애매한 의뢰. 결국 '일단 한번 알아보기는 하겠다' 라는 마음으로 의뢰를 받아 시작안 약혼녀 찾기. 천애 고아인 그녀가 사라진 계기는 약혼자와 혼수물품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신용카드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 와중에 그녀가 과거 파산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이 때문이다. 그녀는 이유를 설명해주겠다는 말로 약혼자를 집으로 보내고는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흔적도 없이. 파산이라는 흥미로운(?) 과거를 가졌지만 약혼녀를 포기할 수 없는 남자는 그녀를 찾아달라고 이 형사를 찾아온거다.
형사는 그녀의 과거를 더듬어 간다. 그녀가 일하는 곳, 과거에 일했던 곳, 그녀가 살았던 곳, 그녀의 친구. 그녀의 과거를 하나하나 더듬어 가면 갈 수록 이상한 일 투성이다. 그녀가 파산했을 당시 도와줬던 변호사는 말한다. 파산이라고 하면 그녀가 방탕한 생활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녀는 그때 말했다고. '단지 그냥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현실과 그 현실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환상을 주고 있는 현재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변호사의 지적은 오래 곱씹을만한 하다.
카드를 사용하고, 카드 빛이 들고, 사채를 쓰게 되고, 궁극에는 파산까지 하게 되는 현대의 경제 악순환을 사회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지만, 정말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라는 말로 넘길 수 있는 문제일까. 끊임없이 소비를 조장하고, 그 소비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현명하게 소비를 하는 방법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과연 사회는 '니가 현명하지 못해서 그런거야'라는 말로 책임을 털어버릴 수 있는걸까.
소설에서는 형사는 한 여인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두 여인의 삶을 추적하게 된다. 형사는 두 여인의 삶을 더듬어가며 전혀 상관없는 것 같았던 두 사람이 실은 비슷한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그게 이 여인들의 비극이라는 점을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좋아하지 않았던 한 여인과, 그런 그 여인의 삶을 원했던 하지만 그녀의 삶의 진실을 알았다면 원하지 않았을 또 다른 여자. 그리고보면 그리스 비극은 항상 그랬다. 주어진 운명을 미리 알았고, 그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 수록 그 예정된 운명대로 삶이 따라가는 그래서 파멸을 향하게 되는 그 비극처럼, 여인의 삶도 그 비극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리고보면 그녀의 삶은 제대로 그리스 비극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