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숲에올빼미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츠바이크의 유작이다. 그의 생전에는 나오지 않았고, 결말조차 모호한 이야기. 츠바이크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책에 대한 신뢰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의 책, 아니 그의 이야기 중에 단 한권 혹은 한장이라도 날 실망시킨 적은 없다. 그에 대한, 아니지 정확하게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성찰한 인간의 모습이 내게는 너무나 인상적이라 때로는 지독합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이니까. [체스]에서 시작한 츠바이크 책 읽기는 안타깝게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데다가, 주로 평전 전문인지라 그가 써내려간 소설을 찾는건 꽤나 어렵다. 워낙에 한정적인 - 한 손안에 꼽을 수 있지 않을까? - 작품들이니 읽은걸 또 읽고 다시 읽고 왜 새로운 작품은 번역되지 않는건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거다.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되다]

시기는 전쟁 중 오스트리아 변방에 살아가는 크리스티네. 한때는 주변의 부러움을 사던 부유하고 남부럽지 않은 가족이었으나,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오빠와 아버지, 이제는 어머니까지 병에 걸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마을에 하나인 우체국에서 직원으로 일하며서 생계를 해결하는 크리스티네에게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크리스티네 에게 사라진건 '나를 생각할 시간'이다. 살아간다는 사실에만 급급해서 나를 생각할 시간을, 내 미래를 생각할 시간을, 내 주변을 생각할 능력마저 이제는 사라져 버린 크리스티네 에게 하루하루는 그녀 어제와 같은 오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그녀에게 변화가 생긴다. 미국으로 건너만 이모가 미국에서 성공해서 유럽으로 여행을 왔고, 그 여행에 크리스티네를 초대한 것이다. 스위스의 부유한 호텔에서 머무르며 오늘은 무엇을 해야할지, 무료함을 걱정하기만 하면 되는 그 이모의 초청장이 크리스티네에게 달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크리스티네는 그 휴양지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래, 되어 버린다. 이모의 옷으로 치장을 하고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오스트리아 어느 시골 마을 우체국에서 일하고 병든 어머니를 봉양하는 크리스티네 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어느 부유한 독일 부호의 딸이고 발랄하고 유쾌한 젋은 여자가 되어 버렸다. 아니 되었다. 처음은 되어 버렸지만 뒤는 되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은 적이 없던 크리스티네는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지만 차차 자신의 변화에 도취된다.  

크리스티네는 결국 그 호텔에서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게 되고, 서둘러 지내던 마을로 돌아온다. 병에 걸려있던 어머니는 그 사이에 돌아가시고, 돌아온 크리스티네는 휴양지에서 보낸 몇일 동안이 변신에 도취되어지금 이 현실을 살아가지 못한다. 자신이 살아오던 현실만 알던 여인이, 그 밖의 세계가 어떠한지를 알게 되어 버린 이상 당연한 결과이다. 전쟁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마들었는지 크리스티네는 알아버렸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아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찾아든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전쟁으로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이라 서로의 처지에 공감을 한다. 하지만 그 두 사이에도 크리스티니네는 자신이 이런 남자와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응하지 못한다. 자신이 속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자신마저도 크리스티네는 용납할 수 없다. 그녀와 그는 결국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 결심을 하는 순간 그들에게 새로운 길이 보인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줄거리인데 소설은 미완이다. 크리스티네와 남자의 자살로 끝이 날 듯 했던 이야기는 두 사람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듯 하지만 끝이 난다. 아마 츠바이크가 생전 적어놓은 글을 여기까지인듯 싶었다. 읽는 내내 소설은 지독히 우울하고 암울하다. 크리스티네라는 인간이 마주하는 현실이 어떤 현실인지 난 이해한다. 아니 이해한다는 말은 맞지 않을거다. 이야기는 전쟁이라는 역사에서 너무나 극적인 사건이 한 여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던 순간의 여인과 그 사실을 비로소 인식했을 때의 여인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는가를 말한다. 전쟁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집었는지를 적나라하게 깨달았을 때의 크리스티네의 반응은 격렬한 공감을 부른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는지 몰랐다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에 도취된 여인의 모습을 아름다웠을 것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던 여인이 그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지만 그 가능성이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가는걸 보았을 떄의 절망감을 이해한다면 어쩌면 거짓말일까. 크리스티네의 환희와 절망이 츠바이크의 삶에 겹친다면 극단적으로 말한걸까. 환희의 순간과 도취의 순간을 지나 절망을 지나는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크리스티네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츠바이크는 크리스티네는 어떻게 해주고 싶었을까.

잠못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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