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있으나 특별하지는 않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4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남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세상에 그냥 읽는 책 같은건 없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고 사연이 있게 마련이며 의미가 있다. 반드시.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해서 말하자면, 난 요즘 무척 어떤 책에도 몰입을 하지 못하고 있고 덕분에 읽지 않았건 재독이건 쉽게 몰입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읽고 있다. 우연히 교보문고에 들렸고, 책을 살펴보는데 동서미스테리북 시리즈 옆에서 얼쩡거리다가 문득 이 책이 생각났다. 그래 너라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은 누가 안겨주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유일하게 내가 높은 점수를 매기는 이야기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정도이다. 여담으로 이야기라자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미스테리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끔찍한 명작이다. 각설하고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언젠가, 아마도 중학교 때쯤이지 않나 싶다. 그때는 추리소설만 광적으로 읽었으나까, 분명히 읽었고 인상적이었던 이야기였다.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적인 결말이 있었다. 사실 난 결말을 모두 알고 있지만 결말까지 가는 과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결론적으로 다시 읽은 이야기는 별로였지만.

오리엔트 특급 열차 안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말하던 남자가 실제로 열차 안에서 12번이나 칼에 찔린 채로 죽어서 발견된다. 옆방 부인은 살인자가 본인의 침대칸에 들어왔었다고 난리고, 목격된 범인은 2명인듯 하다. 열차 안에 모든 사람의 알리바이가 완벽하지만 분명 범인으 열차 안 손님들 사이에 있다. 포와로 - 여기에 등장하는 탐정이 포와로 일 줄이야 - 께서는 사람들의 증언과 사소해 보이는 증거물을 가지고 본인의 회색뇌세포를 움직여 범인을 가려낸다.

눈으로 갇힌 오리엔트 특급 열차 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쫓는 두뇌게임이 꽤 재미나기는 한데, 다시 읽으니 예전만 못하지 싶다. 결론적으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과거 한 집앞과 탑승객과의 관계를 엮어가는 줄거리가 조금은 허술하다고나 할까. 명쾌하게 '그렇군!'이라는 확신을 독자에게 안겨주지는 못하고, '음, 그 정도..'라는 느낌이랄까.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전반적으로 어떤 논리적인 확신이라기 보다는 잘 엮어가는 이야기의 문제라는 점을 생각해볼 떄 재미나기는 하지만 특별하지는 않은 이야기라는게 재독의 감상이다. 조금은 허탈한 결말과 기억력과 회색세포 말고는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상황과 관찰을 두뇌로 이어나가는 포와로의 입담을 듣는건 제법 즐거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