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어머니와 내 공통분모는 '빨간머리 앤'과 '키다리 아저씨'쯤 된다고 보면 된다. 어머니의 소녀적 감상에 두손 두발 다 들기는 했지만 적어도 어머니와 나의 감성의 교집합은 '빨간머리 앤'과 '키다리 아저씨' 딱 두 이야기이다. 그리고보면 난 앤을 읽으면서 작가가 되는 것도 참 좋을 듯하다고 생각했고, 주디의 편지를 읽으면서 일상 속에 편지가 무엇인지를 어떤 편지를 써야 하는지를 배웠다.

아무튼, 작년 여름 휴가 때 집에서 EBS에서 하던 '빨간머리 앤' - 그렇다, 어머니와 난 이 프로만 나오면 넋을 놓는다 - 을 보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사실 빨간머리 앤은 10권짜리 소설이래요. 저 만화는 1권 정도 이야기뿐이라던데'
'엇 정말?'
'정말정말. 저거 보니까 재미있을거 같은데 휴가 기념으로 10권 세트나 살까요?'

그렇다 순전히 EBS만화 보다가, 때마침 한 30%쯤 세일하던 빨간머리 앤 10권 세트를 집으로 들인 것이다. 사실 책이 배송되서 반짝이는 눈으로 책을 처음 폈는데, 어머니와 난 정말 손발이 오그라 들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앤이 초록색 지붕집으로 들어가는 하얀 벛꽃길을 묘사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는데 정말 그걸 들을 수는 있어도 내 눈으로 읽을 수는 없었다. 도저히 난 읽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난 이런 대화를 또 주고 받았다.

'아, 역시 그냥 DVD를 살껄 그랬나봐요.도저히 못 읽겠어요.' 
'나도 못 읽겠다.'

결국 10권짜리 전집을 집에 방치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그런데 얼마전부터 내 방에 쌓여있던 - 책장에 공간이 없어서 책상위에 쌓아놨다 - 책이 한권씩 한권씩 사라져서 거실로 나와있는거다. 이럴수가 어머니가 날 배신(?)하고 앤을 읽고 계시는거다. 가끔 야근을 하고 새벽에 들어오면, 그 새벽까지 안경을 끼고 앤을 읽고 계신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너무 재미있고, 속도도 붇기 시작해서 멈출수가 없다신다. 다만 아쉬운건 너무너무 책이 재미있는데 눈이 아파서 책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랄까?

아무튼, 어머니는 지금 빨간 머리 앤 4권을 읽고 계신다.
아.. 난 정말 손발이 오그라 들어서 못 읽겠는데. 쩝.

+ 어머니와 오늘의 대화.
'연말정산 하면 그래도 세금이 좀 나오겠죠? 우리 그러면 빨간머리 앤 DVD를 집에 들일까요?' 
'정말? >_< (정말 급 반색하고 좋아하셨다 -_-)

아 그런데... DVD알라딘에서 특가 세일한단다. 갈등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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