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헌법 수업을 들은적이 있었다. 사실 대학에서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이고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들어보겠냐 싶은 마음에 청강생으로 들어가서 수업을 들었다. 법학과 수업 중에 들은 거라고 그거 하나 밖에 없어서 인지 내게는 헌법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어떤 법 이야기보다 재미나게 다가온다. 그래서 가끔씩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서 가서 최근 판결문을 보곤 하는데 이번에는 한창 말이 많았던 신문방송법에 대한 헌재의 판결이 나왔다.

'술을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누군가의 비아냥처럼, 이번 판결은 다소 답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아치 성문법 국가인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건 관습법'이라는 논리를 들어댄 것과 같은 그런 아찔함이라고 해야하나. 조금 다른 말이지만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영미식의 관습법 국가가 되었단 말인가, 엄연히 한국은 독일 계통의 성문법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란 말이다.

아무튼, 이번 신문법 판결의 요지는 철차상 하자가 분명 인정되기는 하나, 일단은 다수결원칙과 같은 민주주의 대의 원칙에 어긋난 것이 아니고, 또한 그 입법은 입법부의 소관인지라 입법부를 존중하여 차후 이 법은 입법부에서 알아서 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조대현 송두관 재판관의 판결을 빌리면 헌법 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한 것과 같은 판결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 입법부에서 문제가 생겨 그 권한을 가리고, 법의 유효성을 묻기 위해 온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판결이라는 것이, '문제가 있기는 한데, 너희들이 법을 만드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라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결국 어떤 식으로 법이 재정되더라고, 결국 다수결과 회의공개원칙정도가 지켜지면 어느 정도의 절차적 하자는 상관이 없이 법으로 인정하겠다는 헌법 재판소의 의지가 담긴 판결이다. 다수결이라는 그 원칙에 사회가 매몰될 떄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한국 사회는 익히 경험했음에도 말이다. 누구를 위한 헌법이고, 무엇을 위한 법이며, 무엇을 위한 판결이란 말인가. 결국 어느 쪽의 편에도 서지 못한 헌법 재판소가 딴에는 제대로 줄타기를 했다고 내놓은 판결인듯 하나, 두고두고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건 관습법'이라는 판결과 더불어 오래도록 두고두고 기억될 판결을 하나 만들어낸 샘이다. 장하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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