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가 동네에 사는 친구들, 혹은 아버지 친구분, 혹은 시골 친척 집에 놀러가면 했던 일은 그 집 전집 앞에 앉아있기였다. 내가 어릴 적에는 책 읽는게 유행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는 나를 제외한 -나만 그렇게 느낀건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 집에는 전집이 하나씩 있었다. 제법 종류도 다양해서 누구는 과학시리즈, 누구는 위인전 시리즈, 누구는 곰 이야기 시리즈, 머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보니 한국문학이나 세계문학 시리즈는 없었네. 아무튼 책을 빌려주지도 않을 듯 하여 그들 집에 방문하면 책장 앞에 앉아서 오늘은 이 책을 봐볼까 하며 책을 읽고 했었다. 그리고보면 참 재미있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저렇게 책 읽기가 시작된지라 난 책을 거의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고등학교 때는 삼국지와 판타지 소설이  - 드래곤라자를 시작으로 대학시절까지 그야말로 닥치는대로 읽었다 - 살포시 수학정석 수2와 공존하던 그런 시기였다. 대학에 오니 등록금이 수업료라기 보다는 도서관 대여료라고 생각할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일본소설은 아예 일본소설 칸을 한칸씩 비워가며 읽었고 판타지는 날이 갈 수록 읽는 속도가 빨라졌고, 이 시절부터 난 한겨례와 논객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다보니 지금도 난 소설부터 인문사회, 예술서를 거쳐 심지어 과학서까지 읽는다.(난 보았다.회사에서 배송된 수학책을 보고 경악하던 그 얼굴을) 이런 잡탕이다보니 내 취향과 일반적으로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의 취향이 상당히 다르더라는걸 난 몰랐다. 내가 재미있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책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하며 현실감이 없다는걸 난 한 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책 추천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책 추천이라는건 심봉사가 냇가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어떤 책을 과거에 읽었고,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분야를 읽고 싶은지, 그리고 이 정도의 책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여러가지로 이리저리 재가면서 골라야 하는 것이다. 가끔 회사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곤 하는데, 일요일 저녁이면 책장앞에 서서 가끔은 머리를 취어 뜯곤한다. 사실 난 내 책 취향도 몰라서 아직까지도 선택과 집중은 절대 못하고 닥치는대로 읽는 편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말 책을 추천한다는건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하게 되는 그런 일이라 이말이다.

아 정말 책 추천은 어렵다.
하지만 참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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