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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한 전작주의자이다. 전적으로 그에게 반한 죄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글은 닥치는 대로 가리지 않고 일단 출간되면 읽는다는게 기본 전제이다. 대학 1학년때부터 시작된 - 정확하게는 고3때이지만 - 그에 대한 이 사랑은 가희 식을 줄은 모른다. 누구는 하루키는 20대초반에 맞는 작가라고 이야기한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쿨하다고 느끼는건 20대 초반일 뿐, 그의 다른 소설들이 눈에 들어오다가 시들어 간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그의 소설에서 매력을 느낀다기 보다는 에세이가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부류이다. 그의 글은 에세이의 힘, 아니지 정확하게는 글이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해 주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말이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 올림픽 - 언제인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취재기이다. 도대에 하루키가 언제부터 기자도 했다 말이냐 그가 기자이냐 라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해주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하루키의 시드니 올림픽 취재기이다. 글을 보면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모두 관람하고 매일매일 글을 써서, 이 책 한권이 나온 듯 하다. 꼬박 20일 정도에 매일 글을 써서 책 한권을 낸다니 대단하다.
사실 <승리보다 소중한 것>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는 글이다. 하루키에 평소 애정(?)이 없다면 그닥 그렇게 심드렁하게 읽을 수 밖에 없다. '뭐 이런게 특별한거라고 글을 쓴다냐' 혹은 '이런 글을 읽을려고 책 한권을 꼬박 읽은줄 알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은 못한다. 하지만 하루키표 에세이를 두어권 정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의 매력은 충분하다. 하루키의 글은 언제 그 글에서 끝나도 놀랍지 않고 아쉽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해보겠느냐며 100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으로 추파하는 이야기냐, 개막식이나 패막식이 참 재미없었다는 이야기, 진지학 쓴 마라톤 경기와 선수들에 대한 평, 그리고 그들과의 인터뷰, 역시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장의 선수 인터뷰 이야기. 에세이라는 글이 무엇이 정의이고, 어디까지인지를 경계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내게 에세이의 가장 정식 표본은 하루키의 글이다. 이렇게 또 한권 그의 글을 읽고 나니 아쉬움이 반이다. 그의 글이 한권 더 줄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