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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ㅣ Mr. Know 세계문학 3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소설을 읽고 있으면 기막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작가의 '위대한' 이름에 덜덜 떨면서 마음을 다잡고 읽기 시작했는데 무척 어려울거라 생각한 걱정(?)과는 다르게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어가면 읽을 정도로 재미난 것이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책장이 넘어가는데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그러 면에서 손에 꼽을 작품은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과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이 내게는 최고봉이었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번에는 그 책 옆에 한권의 책을 더 적어놔야 할 듯 하다. 푸쉬킨의 <대위의 딸>이 바로 그 책이다.
푸쉬킨의 <대위의 딸>은 읽고 있으면 헛웃음만 피식피식 나오는 소설이다. 때는 19세기 중반의 러시아로 귀족 집안의 한 청년 뾰뜨르 그리노프의 사랑 이야기이다. 멋 모르고 자란 청년이 성년이 되어 군대에서 경험을 쌓을 나이가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예정된 멋진 근위대를 내버려두고 제대로 된 군대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 돌아오라며 그를 변방 군대로 보내버린다. 투털투털 거리면서 발령 받은 주둔지로 떠나는 와중에 그는 도박판에 걸려들이 돈을 날리기도 하고, 우연히 눈보라 속에 큰일을 당할 뻔 한 고비를 넘기고 도움을 받는다. 어찌어찌하여 주둔지까지 왔으나 시골인 이 주둔지에서는 군인들이 제대로 사열조차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할일 없는 동네이다. 이 동내에서 그의 눈에 띄는 일은 이 주둔지 대위의 딸 마리야 뿐이다. 물론 뾰뜨르와 마리야의 사랑을 순단치 않다. 그들의 사랑은 나름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 마리야를 노리는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해 보기좋게 상처를 입기까지 했으니 그에게 낭만적인 러시아식 사랑 조건은 다 해당되는 셈이다. 그러던 중 반란이 일어나면서 뾰뜨르가 근무하는 부대까지 반란군이 밀려오게 되고 도시는 점령된다. 하지만 인생은 돌고 도는 법,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던 뽀뜨르는 눈밭에서 자신을 구해줬던 그가 반란군의 대장이었음을 알게 되고 이 인연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되고, 마리야를 지킨는데도 힘이 된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서 읽어보는게 좋겠다.
이야기를 읽으면 굉장히 심각할 듯 하다고 생각하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야기는 그리 많이 심각하지는 않다.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반란을 소재로 해서 사용했지만 반란 자체는 이 소설에서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사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소설에서 그리 심각한 것은 하나도 없다. 마리야와 뾰뜨르의 사랑도, 뽀뜨르의 결투와 그 결과 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반란군의 점령도 죽을 뻔한 고비도 사실 그 무엇하나 심각한 장면은 없다.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끝맺으면서도 위기가 제대로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는 제법 순탄하게 흘러간다. 깊이 생각하고 이마를 찡그리면서 고민을 하며 읽는 재미는 좀 부족할지 모르지만 푸쉬킨의 소설은 소설, 즉 이야기 자체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재미를 돌려주고, 그 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푸쉬킨의 <대위의 딸>은 재미난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한 웅큰 쯤 던져주는 이야기이다. 항상 '닥터 지바고'로 상징되고 기억되는 그 모습을 난 러시아식 이야기라고 기억할 뿐이다. 어쩌면 <대위의 딸>도 그런 내가 생각하는 러시아식 사랑과 러시아식 이야기의 연장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이고. 너무 어렵지도 않고 가능한 어깨에 힘을 빼고 읽는 러시아식 순진무구 청년의 사랑이야기는 이 겨울에 딱 맞는 그런 이야기이다. 결국 그런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은 계속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