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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염천 -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터키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표 에세이에는 특별함이 있다. 많은 소설가들이 에세이집을 내곤 하지만, 난 여태까지 하루키만큼 에세이를 맛갈나게 쓰는, 요컨데 읽고 있는 것 만으로도 하루키라고 느낄 수 있는 글을 쓰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확실히 하루키표 에세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와 에세이라는 장르는 비슷하면서도 무던히도 다른 장르여서 둘다 매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데, 과연 이야기 꾼이라고 할만하다. 얼마전에 출간 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왕 이렇게 된건 '그 동안 못 읽은 하루키표 에세이를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집어 든 책 <우천염천(雨天炎天)>
<우천염천>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여행과정 중간에 등장한다)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한 기록이다. 여행 코스로 그리 구미가 댕기는 코스라고는 할 수 없지만 <먼 북소리>로 이미 그리스는 만나보았으니 터키까지 이 기회에 접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다. 결과적으로 이게 여행기인가 싶을 정도로 아연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1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는 수도원 기행기라는 이름이 가장 적당할 듯 하고, 2부 터키는 오늘날 대학생이 즐기는 이스탄불 근처의 여행이 아닌 그야말로 하루키 표현대로 터프한 리얼월드 그 자체이다. 사실 전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는 여행이지만 - 일반적인 여행이라는게 있을까 싶지만 - 그의 여행 이야기는 매력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한번쯤은 수도원을 돌아다녀보고 싶고, 정말 힘들겠지만 터키도 하루키처럼 여행을 해보고 싶다.
1988년 즈음의 이야기이니 - 터키 여행기 중간에는 서울 올림픽 중계방송 이야기가 등장한다 - 제법 오래된 이야기들이다. 젊은 시절의 하루키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그리스 여행은 '여행'의 정의를 무엇으로 내리느냐에 다라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여행이라기 보다는 거의 등반과 강행군의 중간쯤 된다. 고된 여정을 통해 그리스 정교의 진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남다른지도 모른다. 종교와 삶이 분리되지 않은 이들이기에 이쪽에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서도 결국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재미난 결론이랄까? 그리고보면 터키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가면서 터키를 도는 하루키의 이야기 속에서 터키 사람들의 그 사람들일 뿐이다. 하루키의 시선에 남에게 공감하고 호기심을 쉽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꽤 반할 하루키의 모습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사실 난 여행은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하루키가 제안하는 그리스와 터키 여행은 내게는 노동에 가깝다. 하지만 아주 가끔식은, 요즘처럼 어디라도 좋으니 떠나보고 싶고 어쩌면 몸이 고된 편이 지금보다 나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때라면, 나도 떠나보고 싶다. <먼 북소리>에 등장하는 하루키 여행기가 더 매력적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우천염천>속 그야말로 비오는 그리스와 태양이 작렬하는 터키도 매력적임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꽤 매력적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여행이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