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였나, 대학때문에 고향을 떠나 있을 때였나, 고향 시내의 랜드 마크 같았던 서점이 없어졌다. 그땐 우리 동네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모든 오래된 것들이 없어졌던 시기였다. 자주 가던 식당이 그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싹 밀려버리고, 그자리에 대형마트와 멀티플렉스가 들어오면서 랜드마크였던 극장이 또 문을 닫고. 뭐 그런 식이었다.
70년대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서점이 없어지는 건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유치원 때부터 드나들었기에 서점 주인과도 안면을 트고 있던 상태였고, 내가 서점에서 장난을 치다가 다칠 뻔 한 걸 엄마가 막으려고 하다가 문틈에 손이 끼어 손톱이 빠지는 등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 있는 장소가 으레 그렇듯, 나도 그곳에 대한 추억이 꽤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서점을 대단히 애용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중학생때쯤부터 이용하기 시작한 인터넷서점은 신세계와 같았다. 시골에는 없는 책도 클릭 몇 번이면 집까지 배달되었기에, 서점에 헛걸음하고서는 주문하고 며칠 뒤 다시 찾으러가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신간도 보기좋게 정렬되어 있어 쉽게 체크할 수 있었고, MD들이 주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보내며 멋들어진 서평으로 구매욕구를 자극했다. 또 각종 세일과 쿠폰, 마일리지들이 날 유혹했다. 이 모든 것이, 그 서점엔 없었다. 자연스럽게 난 인터넷서점을 이용하게 되었고, 시간을 떼우기 위해 서점에 들러 눈치껏 책을 읽거나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세일이나 마일리지 같은 경제적 혜택이 그땐 나름대로 큰 유인이었는데, 돈을 벌게 되고 나서부터는 그보다는 어떤 책을 갖추고 있느냐(즉 내가 좋아할 만한 책들이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그렇기에, 지금 그 곳이 다시 생긴다고 하더라도 내가 애용하게 될 것 같진 않다. 내 책 취향은 베스트셀러나 자기계발서에서 비껴나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큰 서점을 가더라도 가는 코너는 정해져 있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지만.
'도쿄의 서점'은 국내에선 여행서 개념으로 소개되었지만 일본 내 독자를 타겟으로 하는 책이다. 옛~날에 나왔던 책인 '서울의 시장'이랑 비슷한 느낌의 책인듯('서울의 시장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134275 . 목차는 다른 책의 목차가 적혀있다. 오류인 듯 하다.).
도쿄의 특색있는 작은 서점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이걸 보니 지금 동네서점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팔리는 책ㅡ자기계발서, 참고서, 문제집, 베셀 에세이류ㅡ보다는 차라리 어느 분야를 지정해 '예술서적하면 ㅇㅇ'하는 식으로 전문성을 높이는 방법밖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예전 자영업 글에서 하이드님이 지적한 것처럼 서울 혹은 그만한 고정 고객이 확보될 수 있는 대도시가 아닌 한 어려운 일이다. 내 고향에 사회과학 서점이나 예술 서점이라. 사실 상상하기가 어렵다.

'도쿄의 서점'을 읽으면서 얼마전 재미있게 읽었던 '침대 밑의 책'과 같은 저자의 책방 이야기인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떠올랐다.
책방 주인이 자신이 파는 책을 잘 알고 있고, 손님에게 추천을 해 주는 꿈 같은 서점 이야기인데, 이런 서점이라면 사실 장서의 양이 많고 적고는 문제가 아닐테지. 어렸을 때는 내가 서점에 대한 호감을 느끼는 기준이 그저 책이 얼마나 많은가였다. 나이들고 보니 그건 전혀 상관없는 문제였지만. 대형서점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의 책을 구비해놓고 있지만 정작 방문해보면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던 걸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제사 알아보니 다녔던 대학 근처에 재미있는 헌책방이 꽤 많았다. 난 새 책의 뽀득뽀득한 느낌이 좋아서 헌 책엔 관심이 없었는데 그때 좀 둘러보고 재미도 붙여볼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생긴다. 그렇다고 그 곳이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가기엔 너무 멀고. 집순이인 내게 지하철 30분 이상의 거리는 장거리 여정이다. 그러니 그저 동네에 재미있는 서점 하나 생기지 않나, 하고 막연하게 기다려본다. 그때까진 계속 클릭질로 책을 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