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 - 금지와 소망이라는 실로 책의 그물을 엮고 생각의 집을 지은 한 여자의 이야기
서윤영 지음 / 궁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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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이달의 추천도서 중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관련 에세이를 고른 것이었는데 기대 이상의 수확이었다. 게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페미니즘적 시각!!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전작들을 읽었다면 저자에게 더 관심이 많이 생겼을테니 좀 더 재밌게 읽었을 수 있겠다만은. 

 

 '내 서재'의 필요성이라니. 외동딸로 태어난데다가 늘 내겐 독립된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이 내게 서재의 역할을 했기에 그다지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여자의 서재'라는 것이 그다지도 불온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난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남편의 서재(혹은 작업실)와 내 서재를 따로 둔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 주위에서의 면박이 만만치 않은가보다.



새로 유행하기 시작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두 사람이 함께 쓸 2인용 기다란 책상과 책장을 주문하여 배송을 기다리던 날들이 좋았다. 마침내 그것들이 도착하여 서재라 부르는 방안에 들여놓고 각자 처녀이고 총각이던 시절에 쓰던 컴퓨터를 올려놓을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의자 두 개를 책상 앞에 나란히 두고 막상 그곳에 앉아보았을 때, 무언가가 몹시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컴퓨터 게임을 할 때 또 한 사람은 그 옆에서 책을 읽는다? 한 사람이 일기를 쓸 때 또 한 사람은 그 옆에서 못 다 한 회사 업무를 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깨달았다. 침실은 함께 쓸 수 있어도 서재는 함께 쓸 수 없다는 것을. 한 그릇에 담긴 라면을 젓가락 하나로 나누어 먹듯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절대 공유가 아니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당시 우리 집 서재는 화장실과 같았다. 한 사람이 변기 위에서 일을 볼 때 다른 한 사람이 그 옆에서 이를 닦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네가 먼저 쓸래? 아니 내가 먼저 쓸게, 합의하에 반드시 나누어 사용하는 화장실.

-pp.37~38  3. 함께 쓰는 침실, 따로 쓰는 서재



여성의 지위향상을 주택 내에 반영하기 위해 현재 아파트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본래 여성의 공간이라 여기는 곳을 더 크고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다. 주방의 면적이 증가하는 것과 동시에 고급 가전제품이 들어차기 때문에 이제는 '주방'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게 되어버렸고, 대면형 주방 및 아일랜드 식탁 등으로 거실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물론 안방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안방 내 전용화장실은 물론, 과거 중대형 아파트에서나 가능하던 파우더룸, 드레스룸이 소형 아파트에까지 부가되고 있다. 다시 말해 안방과 주방을 강화하는 것으로 여성의 향상된 지위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결국 여성의 자리는 안방과 주방이요 그녀의 본질은 가사와 육아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산능력을 보여주는 가슴과 엉덩이를 상대적으로 크게 보이기 위해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매는 18세기 여성복식과 무엇이 다른가.

-pp.93 8.그녀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정해진 아파트 면적에서 주방을 넓히는 방법은 단 하나, 거실과 주방을 한데 붙여 계획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대면형 주방이니 개방형 주방이니 하면서 집안에서 부엌이 가장 크고 화려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곳에 커다란 주방을 만들어놓고 가전제품을 잔뜩 늘어놓고, 이제 남편도 가사분담을 해줄 것이고 이것이 여성의 지위향상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강요되고 있는 니캅이 아닐까. 누가 최초로 씌워주었는지 모르는 그것을 이슬람 여성의 정체성이라 여기며 스스로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매일 아침 제 손으로 굳건히 쓴다는 점에서, 아울러 그것을 벗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지만 그러나 벗어버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엌은 우리 사회의 니캅이다.

-p.172 15.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베일



임신과 육아의 장소인 침실, 가사의 장소인 주방 외에 정보와 지식의 습득을 위한 서재, 사회적 교류를 위한 응접실은 본디 여성에게는 금지된 공간이었다. 아울러 서재의 외연적 확장이라 할 수 있는 도서관, 응접실의 확장된 형태라 할 수 있는 다방과 찻집도 금지의 대상이었다. 또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정규적인 식사가 아닌, 사교와 교류 및 정신의 고양을 위한 식음행위(술, 담배, 커피, 차 등 모든 기호식품)도 여성에게는 금지의 대상이었다. 나아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정을 지켜야 하는 여성의 본분을 행여 망각할 수 있는, 남편이 아닌 남자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도 엄중히 금지되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여성에게 금지된 공간에서, 여성에게 금지된 음식을 먹으며, 여성에게 금지된 행위를 했다.

 열다섯 살의 소녀가 마흔다섯의 장년으로 성장하기까지 30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본디 여성에게는 금지된 공간의 확보와 그 영역으로의 틈입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서로 긴밀히 교직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게 금지되었던 공간을 내가 그토록 소망했던 이유이자, 또한 나의 집에 서재와 응접실을 두려 했던 이유였다.

-p.228 19. 내게 금지된 서재, 내가 소망한 응접실



그외에도 나이가 들 수록 이전에 읽었던 책들의 감회가 새로운 느낌들을 이야기하면서 공감하기도 했고. 난 어지간히 좋아하는 책이 아니면 다시 읽지 않는 편인데, 그럼에도 예전에 포기하고 덮어두었던 책들이 나이를 더 먹고 다시 펼쳐보면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여튼, 저자는 백 권을 읽으면 한 권을 토해내듯 쓸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 또한 참 축복받은 능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토해내듯 뭔가를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요즘 글을 쓰다보면 소진되는 느낌이 자꾸 들어서 말이다. 매일 비슷한 형식의 글을 쓰다 보니 내 글이 매너리즘에 젖은 것 같다. 어휴. 그걸 좀 상각시켜보겠다고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데, 어째 빠져나가는 게 더 많은 듯..



+

[서재 결혼시키기]나 [방의 역사]도 이 책에 이어 읽으면 재미질듯.

서재 결혼시키기는 매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고 못 읽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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