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캐피털리즘 - 서구를 넘어
이승현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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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끝도 없는 읽을 목록을 얻었지만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의 눈으로 냉정하게 미술시장을 해부하고

예술을 예술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의 지평을 넓혔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미술사를 기술해야 하는 의의를 얻은 것만으로

이 책은 너무도 큰 값어치를 한다. 




"서구 열강의 절대적인 힘의 우위 속에 나타난 문화의 일원화 현상으로 인해 각국의 미술사가 서구의 미술사조를 순차적으로 도입한 역사로 기술되면서 서구 모더니즘은 원본의 지위를, 주변국의 미술은 모방의 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근대 이후 서구 모더니즘 미술을 전 세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보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원본을 직접 보고자 하는 열망의 표출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근대화 과정을 끝내고 서구와 동등해진 상태에서 자국의 미술사를 되돌아보면, 비로소 도입의 역사는 습작의 역사일 수밖에 없으며 서구를 도입했다는 사실이 자국 미술의 세계 미술에서의 위상 제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P15

"서구 미술시장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소수의 고급정보를 쥔 사람들이 그 정보를 이용해서 작품을 먼저 구매하고 담합하고 작전을 벌이면서 유지되고 발전해 왔습니다. 서구 시장 중심 미술제도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화상과 화가, 컬렉터, 미술관과 이론가 등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간의 지속적이고 주도면밀한 담합과 작전의 노하우를 배우는 일입니다." - P21

아트페어가 주요한 판매 창구가 되면서 메이저 갤러리와 그들의 작가를 자국 내에서 판매하던 지역 갤러리 사이에 이해의 충돌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은 메이저 갤러리가 전 세계 주요 거점 도시에 직접 지점을 개설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국제금융질서가 심판과 선수들이 함께 경기를 벌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세계미술계는 서구 유명 미술관과 메이저 갤러리가 나눠주는 한정된 초대권을 받아야 그나마 함께 겨룰 기회라도 잡을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입니다. - P275

이분법에 근거한 서구 근대의 전형적인 물음은 주체의 동일성(identity)을 정의하면서 항상 타자의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서구 근대의 인간 중심주의는 동시대 철학과 현대물리학이 바라보는 인간과 세상, 나와 타자의 구분, 그리고 이들간의 타협 불가능한 적대관계를 낳고 있습니다. 반면 오늘날의 사상가와 과학자들의 해법은 모두 __인간이 아닌 모든 개별적인 대상을 존중하고 그 실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__합니다. 그리고 주체와 객체, 인간과 비인간, 진리와 거짓, 선과 악과 같은 이분법적 사유를 배제한 이들의 사유는 이런 대립항들이 서구와 달리 연속성을 지닌 동아시아의 사유와 유사합니다. 육후이는 서구의 비극와 중국의 산수화에서 발견하는 미적 사유가 공히 이러한 대립의 해소를 향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비극에서는 이 해소가 영웅의 의지나 용기로 이루어지는 것에 반해서, 중국의 산수화에서 대립의 편재는 회화의 역동성을 산출해서 오히려 도를 현시한다고 말합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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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휘리릭 하는 편이라 그걸 장점이라 여기고 살았다.

글도 휘리릭, 일도 휘리릭.

남들보다 성질이 급해 남들보다 후딱 해치우는 게 회사에선 잘 통했다.


'한국 사람들은 참 빨리하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그래서 다시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결국 시간이 더 걸리게 되거든요. 한국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언젠가 인도 출신 개발자가 한국 사람들과 일하는 소회를 밝히면서 했던 이야기다.

그 말에 참 공감하면서도 'Fail Fast'를 미덕으로 외치는 스타트업 정신에 한국인의 성미가 이상적으로 부합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다리도 무너지고, 아파트도 흘러내린다.

그건 또 성미 급한 한국인이 풀어야할 숙제다.


남들이 어떻게 선을 쳐야할지 주저하고 있을 때,

자신 있게 선을 긋는 걸 보고 누군가는 '타고난 화가'라는 칭호도 붙여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지만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채 오래 시간이 흘렀다.

그림이라는 게 과연 배울 수 있는 것인지, 배우면 되는 것인지, 배워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우유곽 하나를 '사실 그대로' 그린 그림을 보면서

왜 그렇게 그려야 하는지 갸우뚱했다.

사진 기술이 있는 시대에 복사에 가까운 재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재현' 보다는 '해석'에 의미를 두세요." 

어떤 이는 그렇게 코치를 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훈련을 해보세요."

어떤 이는 그렇게 조언을 했다.


천재적인 피카소의 드로잉을 봐도 우리나라 입시미술생보다 나은 게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 입시미술을 거친 미술생들은 해외 유수 미술대학 선발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런 입시미술을 거치면서 미술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수채화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 같은 게 있는데,

그건 초등학교 때 아무리 그려도 제 마음대로 잘 안그려졌던 기억 때문이다.

미술교육이 언어 이전의 중요한 교육으로 자리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일상의 체험을 이미지로 표현/창조하는 훈련이 바탕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은 없어 보인다.


여튼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스케치북을 사서 휘리릭 그림을 그려보면서 '과연 이게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렇게 자기 멋대로 '휘리릭' 그리다보면 언젠가 '잘 그리게 되는' 그날이 올까?


사람들은 막연히 들리지 않는 영어를 계속 듣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영어가 들리게 된다고 하기도 한다. 수년 간 그렇게 해본 나로서는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가 답이다.

80퍼센트 이상 이해가 되는 스크립트를 완벽하게 딕테이션(받아쓰기) 할 수 있어야, 감히 말하건대, 영어가 '는다.' 엄청 빠른 속도로 말하는 미드나 속사포로 쏟아내는 뉴스를 들어봤자 리스닝이 그렇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게 현재 나의 잠정적 결론이다.


영어동화가 되었든, 3-6세가 듣는 베드 타임 스토리든, 애니메이션이 되었든,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뭐 하나를 '씹어먹을 수 있어야' 영어라는 언어의 구조를 익히게 된다.


별 하나짜리 어려운 단어를 아무리 많이 알아도

영어로 말하다보면 시제, 인칭, 단복수가 막 엉겨서 나오기 마련이다.

왜? 구조가, 패턴이, 실사용법이 익혀지지 않았으니.


책도 막연히 많이 읽다보면 어느 순간 '문리'가 트이는 순간이 있다고들 한다.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다섯 수레를 읽든, 만 권을 읽든, 

'휘리릭' 읽으면 말짱 꽝이다, 라고 생각한다.


나의 스승(?) 닐 게이먼은 말한다. 

보통 사람처럼 읽지 말고, 작가처럼 읽는 방법에 대해.

잠깐 들었던 문학창작교수는 말했다.

그냥 읽지 말고 '씹어먹을 것처럼' 읽으라고.


난생 처음 산 스케치북에 '휘리릭' 그린 그림을 들고 갔다가

난생 처음 어린 친구한테 '꾸중'을 들었다.

이렇게 그리시면 80년을 그려도 안된다고.


손가락 하나를 한 시간 동안 그려보고,

복잡한 형태를 세 시간 동안 그려보고,

한 가지 주제를 다섯 시간 동안 그려보라고.

그렇게 정밀하게 그리고 나면 세상을 보는 관찰력이 달라질 거라고.


영어나, 글이나, 그림이나,

그렇게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들리고 보이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흘깃 훔쳐본 것을 가지고,

안다고 '착각'하거나 이렇다, 저렇다, 판단했던 것들에 대해 미안해진다.


명석한 판단력은

비곤한 자료를 가지고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것이 아닐텐데,

지금껏 빠르게 파악하고, 빠르게 실행하는 걸 미덕이라 여기며,

그렇지 못한 사람(동거인)을 핍박하고 살아왔던 것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뭐, 그렇다고 성질이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오늘도 한 장 차분히 그림을 그리며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이렇게 차분히 정밀하게 그리다보면

나아지는 순간이 있을까?


이것도 근거 없는 막연한 기대감은 아닐까?


나는 과연 무엇을 보았는가?



잘 보기 위해 그린다.

드로잉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와 여러 가지 훈련법들에 대해 나름 체계적으로 기술한 책. 초기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존 러스킨에 대한 기대감으로 엄청 고대하며 산 책인데, 좀 고루하고 답답해서 금세 싫증이 났다. 요즘 감각에 맞지 않아서인지, 내 성미가 급해서인지, 아니면 고상한 척 이야기하는 게 싫어서였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드로잉은 필체나 스타일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해서 마스터들이 각각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을 발전시켰는지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건 유의미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움이 되었던 책.









인간의 몸을 다양한 화가들이 어떻게 다양하게 해석하고 그렸는지, 훌륭한 도판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책. 그저 그림만 좋은 게 아니라 몸에 대한 분명한 주제의식으로 작가들을 엮은 편집이 훌륭한 책이다.





'나뭇잎처럼'이란 나의 아이디처럼 평생 나뭇잎과 나무를 늘 잘 그리고 싶었는데, 그래서 너무나 소중했던 책. 그림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라 차분차분 앉아서 학생을 가르쳐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날 초짜인 나 같은 사람이 보기 딱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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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25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러스킨이 살던 시대로부터 너무 멀리 와있죠?
저는 러스킨의 미술평론보다는 사상에 더 끌려요^^

나뭇잎처럼 2022-01-25 21:23   좋아요 2 | URL
저도 러스킨의 사상에 끌려 덥썩 집었는데 가만가만 듣다보니 그 시대에 앉아서 들었으면 몸을 배배 꼬았을 거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러스킨의 사상을 받아들이기엔 이미 너무 세속적이 되어서인지, 고분고분한 학생이 아니어선지.. ㅎㅎ 학생의 자유도를 최대한 고려해주는 선생님이 좋더라구요. 되게 엄한 선생님이셨을 거 같아요 ㅋㅋ

mini74 2022-01-25 2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카소가 옛작업실 갔다가 노숙자를 만났는데 아는 사람, 쓰레기통? 에서 종이 하나 골라서 휘리릭 뭐 하나 대강 그리더니 이걸로 집이나 하나 사라며 줬다는 일화가 생각나요. 그 휘리릭 뒤엔 엄청난 기본기가 있더라고요. 나뭇잎처럼님 글 공감하며 읽었어요 ~~

나뭇잎처럼 2022-01-27 09:34   좋아요 1 | URL
왜 고수들은 동선에 쓸데없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할머니들은 요리도 툭툭, 선수들은 낭비하는 동작이 없죠. 그래서 후루룩, 휘리릭 하는 걸 ‘멋있다‘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고수도 아니면서 후루룩, 휘리릭 하려다 어설프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저도 쓱쓱 했는데 우와 하고 싶은데 ㅎㅎ 그럴려면 낙숫물로 바위에 새길 만큼의 훈련이 필요한 거겠죠? 뭐 그렇게 꿈쩍도 안할 것 같은 걸 조금씩 해가면서 눈금이 하나씩 바뀌는 걸 보는 게 재미있기도 해요. 영어도, 그림도, 읽고 쓰는 것도...ㅎㅎ
 

곰브리치 화려한 도판을 다정하게 손으로 쓸며 찰진 영어문장을 감질나게 씹어먹던 중 드는 의문.


6000년전부터 시작해 기원전 3500년전 화려하게 꽃을 피운 메소포타미아 미술은 어디에?

대략 기원전 800년전, 400년 남짓 전성기를 구가한 그리스 미술에 대한 과도한 지면 배분의 배경은?


예술사만큼 제국의 역사관을 고스란히 투영한 역사가 없구나. 

승리자에 의해 고스란히 도둑맞은 유물을 해석하기 위해 동원한 온갖 이야기.


그러면 아시아 미술은? 동아시아, 그것도 한국 미술은 어디에?


잰슨의 <서양미술사>와 조중걸의 <서양예술사>, 그리고 정말 읽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늘어놓고 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교차읽기.

여기서 도움받는 것이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그리고 따끈따끈한 신간 <최초의 역사 수메르>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지금 항공으로 <메소포타미아>가 날아오고 있다. 그게 오면 마음에 드는 유물들을 따라 그려볼 생각이다. 지금 아쉬운 대로 인터넷에서 찾은 그림들을 따라 그리는 것처럼.















갑자기 생각나는 교차읽기의 추억. 

어린시절 개가식 도서관이 아닐 적에 관련 주제의 책들을 늘어놓고 보는 걸 좋아한 나는 늘 도서관 사서 아저씨와 실갱이를 벌여야 했다. 사서 아저씨는 책은 한 권씩 차례로 봐야 하는 거라고 타일렀고, 나는 같은 주제의 책을 늘어놓고 봐야 한다고 우겼다. 아저씨는 급기야 ‘버릇없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나를 윽박질렀고, 나는 눈을 부릅뜨고 부당함을 고발했다. 지금도 도서관 비탈을 내려오며 씩씩거리며 어디 신문에라도 투고를 할 생각에 머릿속으로 부당함을 기술하던 흥분이 생각난다. 


아니, 왜? 책을 늘어놓고 보면 안되는 법이 있단 말인가?

책 마다 관점이 다르고 한 시대를 기술하는 내용이 서로 다른데 보완하면서 읽는 것이 대체 뭐가 문제인가? 한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다음에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법은 대체 누가 만든 건데?!!!


여튼 그래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 따르면,

현 시점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내러티브


1. 문명의 탄생(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2. 고대(그리스와 로마)

3. 암흑시대(그리스도교의 부상)

4. 부활: 르네상스와 개혁

5. 계몽(탐혐과 과학)

6. 혁명(민주주의, 산업, 기술)

7. 민족국가의 부상: 제국을 향한 투쟁

8. 제1, 2차 세계대전

9. 냉전

10.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승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내러티브


1.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2. 이슬람의 탄생

3. 칼리프조: 보편적 통일체를 향하여

4. 분영: 술탄 제국의 시대

5. 재앙: 침략자들과 몽골족

6. 부활: 3대 제국의 시대

7. 서양의 동양 침투

8. 개혁운동

9. 세속 근대주의자들의 승리

10. 이슬람주의의 반발


우리가 흔히중동이라고 부르는 지역은누군가의 관점 내포한 단어다. 누군가에게는 동쪽이 누군가에게는 서쪽일 있으니. 


기원전 550 무렵 페르시아 제국 건설. 조로아스터교가 그리스도 1000 이들의 메인 종교였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선악 판단의 선택을 내릴 아니라 그들의 모든 선적이 우주적인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철학. 선한 이는 스스로의 선택, 혼자 힘으로 하늘나라에 올라갈 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종교의 조각상이나 상항화, 상징물을 모두 거부, 이후 이슬람 종교미술에서는 구상화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성향이 드러난다. (동방박사 사람은 조로아스터교 사제들)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 관점에서 봤을 그리스를하기 위해 원정. 문명 사이의 중대한 충돌이 아니었다. 다리우스 황제는 상징적인 공물로 병과 상자를 원했지만 그리스인이 거부. 아주 서쪽 가장자리로 원정갔으나 실패. 


이후 150 , 알렉산더 대왕이 역으로 쳐들어와 페르시아와 전쟁. 가끔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했다고 하지만 그가 실제로 정복한 것은 페르시아였고, 그때는 이미 페르시아가세계 정복한 뒤였다.”


그리스를 설명하기 위해 이집트를, 로마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를, 그런 식이다. 메소포타미아는? 페르시아는? 예술사의 영역에서 그토록 화려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심지어 더 오랜 기간 ‘같잖은’ 도시국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의 자취는 그들의 미술사에 매우 박하게 기술되어 있다.


심지어 예술사 기술이 ‘세계관의 반영’이라는 철학적 명제와 다르게 개별 작품들에 대한 선형적 설명을 시도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가장 의지하게 되는 책이 조중걸의 서양예술사다.
















동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삶의 한 중간에서 삶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뱅뱅 도는 지구에 살면서 뜨고 지는 해 같은 건 없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물 속의 고기가 물 밖을 상상하지 못하듯,

타인의 굶주림보다 손 끝에 박힌 가시가 더 애처로운 게 인간이다.


인간이 어딘가에 머물러 살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뭔가를 그렸다. 

구석기인과 신석기인들이 그린 그림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스 미술과 로마 미술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의식하느냐에 따라

당대의 예술가는 작품 속에 자신들의 불안과 공포,

바람과 희망, 설명할 수 없는 공허와 호기심, 그리고 새로운 도전 같은 걸 

끊임없이 투영했다.


6000년 전에 시작해 기원전 3500년 경에 꽃을 피우는 메소포타미아 미술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대신 그리스가 인류 문화의 꽃이자 원천처럼 여기고 있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의 영향이다. 우리는 근대가 몰락한 현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근대주의적 사고로 역사와 세계를 해석한다. 물질이 변화해도 인간의 의식이 변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구석기에서 신석기에 이르는 과정은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과정과 꼭 닮았다. 해서 고대미술을 탐구하는 것은 가장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작이다. 각 시대는 우열 없이 병렬된다. 인본주의와 자연주의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그것은 여러 세계관 중 하나의 세계관일 뿐이다. 


왜 구석기인들의 자연주의가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극적인 추상으로 변경되었을까.

이 책은 그 탐구의 여정을 촘촘히 담는다.


.

.

.

진중권은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미움이, 증오가 그의 눈을 멀게 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원래 그런 관종이었을까.


아주 아주 오래 전 그에게 원고를 청탁한 적이 있다.

일부러 아주 아주 넉넉한 시간을 두고 청탁했으나 그런 노력도 무색하게 그는 약속을 ‘까먹었다.’

마감이 임박해서야 상황을 묻는 나에게 그는 일언반구 미안하다는 말 없이 자신이 요즘 얼마나 바쁜지 핑계를 늘어놓고 ‘그렇게 됐어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의 뻔뻔스러운 후안무치에 혀를 내둘렀다. 결국 듣지 못한 사과 한 마디가 그렇게 애석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학자의 눈으로 본 서양미술사는 또 어떻게 해체를 할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에 빠른 배송을 선택했다.


제대로 된 미술사는 어디서 공부할 수 있을까?

미술사는 세계사와 미학, 철학, 그리고 과학과 인지론까지 모두 섭렵해야 제대로 쓸 수 있는 영역인 것 같다. 단편적인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미술사 또는 예술사를 기술하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더구나 승자 관점으로 기술되기 일쑤인 ‘역사’를 약자, 소수자, 비기득권자 관점으로 기술하는 책을 만나는 건?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열심히 뒤지고 있지만 잘 나서지 않는다. 한국미술사를 아마존에서 뒤져야 하는 현실. 한국정치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학을 떠나야 했던 그 시절과 무엇이 다를까….


예술사만큼 강력한 정복자의 세계관이 투영된 역사도 없는 것 같다.

흑인 노예를 정당화하기 위해 흑인들이 얼마나 우생학적으로 열등하고, 그들이 역사에서 ‘죄’를 지었는지, 그 죄의 결과로 왜 피부가 검게 그을렸는지 설명하는 데 열을 올리는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원류라고 생각하는 그리스 조각 앞에서 너무도 생생한 이교도 신을 만나고는 죄다 부서버렸다. 하지만 그들의 만행보다 페르시아의 만행을 부각시키는 데 더 심혈을 기울였지. 


그리스 예술을 정점에 두고 바라보면 로마의 예술을 설명할 때 '야만적'이라는 형용사를 들이댄다. 양식 사이의 우열을 가리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조야한 시각이다. 구석기와 르네상스, 신석기와 현대미술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이 나은 시도다. 


예술은 늘 그 시대의 모순을 돌파하며,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시도에 의해 역사를 썼고, 승자 위주의 혹은 진보론적 역사관은 예술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철저히 위배된다. 서구인이 가진 예술사에 대한 허구성을 낱낱이 파헤친 책은 없나?

없으면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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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04 17: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학오딧세이로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저 ㅠㅠ 조영남을 두둔하기 위해 출간한 책엔 온갖 정의로운 문장들이 가득한데 ㅠㅠ 왜 그럴까요 요즘 ㅠㅠ

그레이스 2022-01-04 17:16   좋아요 2 | URL
저도 그 책 읽었어요 ㅠ

나뭇잎처럼 2022-01-04 20:18   좋아요 2 | URL
저두 롱롱타임어고우에 들여 잼나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내용은 기억이 ㅋㅋ) 좋은 기억 때문에 머릿속 책갈피에 찜해 두었던 저자인데... 뭘까요. 그 사람. 왜 그런 걸까요? 무엇이 그의 정신을 그토록 파괴했을까요? 어떤 결핍이 그를 그토록 관심에 목마른 종자로 만들었을까요? 예술과 시대정신이 직결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텐데, 그에게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일까요?

초란공 2022-01-04 2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중걸이란 저자분은 처음 봅니다. 역작이네요. 관심이 필요한 분이라고 하시니 최근에 <죄와벌>에서 본 문장이 생각났어요. ˝그럼 날 버리지 않을 거야, 소냐?˝, ˝날 버리지마. 소냐, 버리지 않을 거지?˝ 혹은 ˝각자 자기 식대로 사는 거고, 자신을 가장 잘 속일 줄 아는 사람이 누구보다 즐겁게 사는 법이오.하하˝ 하는 대사요...^^;; 그분에게는 소냐가 필요한듯 합니다.

나뭇잎처럼 2022-01-05 10: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관심을 거두어 말려죽이는 게 그분을 위한 최선책일듯요. 미학에만 집중하실 수 있게. 그게 더 생계에 보탬이 되는 일 아닐까요. 요즘 미술에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인데. 가까이 계시면 전언 좀 해주세요. ㅎㅎ 자신을 속이면 자신은 알잖아요. 자기가 속이고 있다는 걸. 자신이 속이는 줄도 모르게 속이는 건 그냥 바보? ㅎㅎㅎ 건

2022-01-08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08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0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일매일 2023-04-03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막 좋은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바로 나뭇잎처럼님의 이 글입니다. 좋은 책은 경험 상 다음 커리큘럼을 설정하게 해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혹시 저작은 없으신지요?

나뭇잎처럼 2023-04-06 19:08   좋아요 0 | URL
과찬입니다. 좋은 책은 끊임없는 다음 독서 목록을 낳지요.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수백 권을 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읽지 않은 이상 기능적으로 문맹이라고요. 제가 보기엔 수백 권도 그리 많은 것 같진 않은 것 같습니다. 다할 수 있는 최선을 한 다음, 스스로의 부족함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을 때, 그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ㅎㅎ;
 
빼앗긴 자들 환상문학전집 8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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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의 작품 중 워낙 알려진 작품이라(상도 많이 받고) 기대를 하고 보았는데 워낙 예스런 표지에 한 번 놀라고, 예스런 번역에 또 한 번 놀랐다. 잘 모르는(르 귄이 만들어낸) 단어와 개념이 많아 원서 대신 번역서를 일단 선택했는데, 다음에는 원서로 바로 갈까 하는 생각도 들고. 1974년에 발표된 소설. 인류의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향하는 시기에 착취자와 피착취자, 아나키즘과 아키즘, 과거와 현재, 부분과 전체, 영속과 무한의 대비를 통해 지구인에게 고착화된 세계관을 뒤집는 거대한 헤인시리즈의 대표작. 옛 소련의 집단농장과 지금 현재 쿠바의 자발적 빈곤이 떠오른다. 어느 누구도 다시 그 시절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 과연 공동체를 위한 자발적 빈곤이 탐욕의 정점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는 지구인들에게 가능할까. 여전히 공산주의는 의미있는 실험이며 앞으로도 보다 개선된 형태의, 보완된 공산주의 가능성을 희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The Dispossessed>는 현실감 있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틈을 엿보게 해준다. 제아무리 낯설고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나저나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뭘까? 교조화된 공산주의는 진정한 공산주의가 아니었나? 쿠바가 아직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가 되고 싶다고 나서는 나라는 없겠지? 우리보다 의료와 교육이 앞서지만 더운 여름철 선풍기 하나를 얻지 못해 줄을 서야 하는 곳이라면. 세계 제일 강대국에 사는 사람들이 의료보험이 없어 수술을 받기 위해 쿠바로 오지만 그곳에서 사는 것은 원치 않는 곳이라면.  출간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속에서 빛바랜 아나키즘을 쓸쓸하게 추억하지 않기를. 내 안의 트럼프, 내 안의 박근혜와 싸우는 것이 힘겨웠듯 앞으로 더한 내 안의 000과 대결해야 하는 지금. 헤인시리즈가 얼마 만큼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을지는 좀 더 여행해 보아야 알 것 같다.



우리에겐 그것밖에 없소. 오직 서로밖에. 여기 당신들은 보석을 보지만 거기서는 눈동자를 봐요. 그리고 그 눈 속에서 장려함을, 인간 영혼의 장려함을 보는 거요. 우리의 남자와 여자들은 자유롭기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자유롭소. 그리고 당시들 소우자들은 소유당하지. 모두들 감옥 속에 있어. 각각이 외롭게, 고립되어, 소유하고 있는 쓰레기더미와 함께. 당신들은 감옥에서 살고, 감옥에서 죽소. 내가 당신들 눈 속에서 볼 수 있는 건 그게 다요. 벽 말이야, 벽! (261)

반려 관계 역시 자발적으로 구성되는 연합이었다. 되어 가는 한에는 되어 가고, 되어 가지 않으면 그만두는 것이다. 그것은 제도가 아니라 기능이었다. 개인의식 외에 다른 구속력은 없었다.
막연한 기간의 약속일지라도 약속이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오도의 사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변화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그녀의 주장은 약속이나 맹세를 무효화시키는 듯 보엿지만, 사실은 그 자유야말로 약속을 의미있게 했다. 약속은 주어진 방향이요 선택의 자가 제한이었다. 아무 방향도 주어지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썬택하고 변화하는 자유는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 감옥에 있는 것처럼, 스스로가 만들어 낸 감옥, 어디로 가든 별다를 게 없는 미로 속에 있는 것처럼. 그래서 오도는 약속, 맹세, 성실이라는 개념을 자유의 복잡성에 있어 필수적인 것으로 보게 되었다. (280)

불성실하다고 해서 어떤 법적 도덕적 구속이 가해지지 않는 사회에서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성실함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언제든 닥칠 수 있고 몇 년씩 이어질 수도 있는 이별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그 기간 동안 성실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도전받는 것을 좋아하고, 역경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법이다. (281)

나의 세계, 나의 지구는 폐허입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망가뜨린 행성이죠. 우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번식하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싸워 댔고 죽었어요. 식욕도 폭력도 통제하지 않았죠. 적응하지 않았어요. 우리 자신을 파괴한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세상을 먼저 파괴했죠.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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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27 1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바나에 한번 가야하는데 ㅎㅎ 동감이에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나뭇잎처럼 2021-12-27 16:05   좋아요 2 | URL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에 가서 신나게 몸도 흔들고요. ㅎㅎ 고맙습니다. ^^

persona 2021-12-27 1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느끼기엔 원서도 예스러워요. ㅋㅋㅋ 저 올 초에 이거 원서로 읽다가 적응 못해서 아직 못 읽었어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나뭇잎처럼 2021-12-27 16:07   좋아요 1 | URL
하. 그렇군요. 워낙 문장이 좋다는 칭찬이 많아서 .. 넘 기대했나봐요. ㅎㅎ 당대를 꿰뚫는 오늘의 SF의 심장은 어디에 있을까요? 부디 몇 줄 읊어주시면 따르겠나이다... 왠지 스티븐 호킹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레이스 2021-12-27 1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적인 시선으로 보면 쿠바는 후진국이죠.
조금 더 뒤에 평가될 부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책읽기가 바빠서 읽다가 멈췄는데 🍃처럼님 덕분에 기억이 났었요
다시 펼쳐야겠네요.
아무래도 책장파먹기를 해야할듯요^^
그런데 오늘도 배송될 책이 있다는...!

나뭇잎처럼 2021-12-27 16:12   좋아요 2 | URL
아무도 읽으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는데 스스로 만든 책 무덤에 파묻혀서는 ㅋㅋㅋ 그쵸? 올해는 정말 조금씩, 천천히, 다시 한 번, 재독의 즐거움에나 빠져보자 했는데... 왜 자꾸 뭐가 오는 걸까요. 멀리서도 오고, 가까이서도 오고, 킨들서도 오고, 오더블에서도 오고... 인류의 미래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합니다. 쿠바가 되었든, 북유럽이 되었든. 부자들만 가는 화성에 인류가 미래가 있는 건 결코 아닐텐데 말입니다. 내 안의 탐욕을 바로보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를 희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올해도 열심히 파셨듯이, 내년에도 즐겁게 파먹기를 계속하시길요.^^ 여럿이 하면 좀 덜 외로운 거 같기도 하네요. ㅎㅎ

mini74 2021-12-27 1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나뭇잎처럼님 넘 재미있어요. 동네 슈퍼가듯 아바나에 한 번 가야 하는데. 넘 멋진 첫 문장. 전 르 귄 소설이 어렵더라고요 ㅠㅠ

나뭇잎처럼 2021-12-27 16:20   좋아요 1 | URL
벌써 몇십 년 째 마음에 품고 있으니 동네 슈퍼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맞는 거겠죠? ㅎㅎ 전 어렵다기보다 넘 직설적이어서 약간 놀랬어요. 문학이란 게 은유와 상징과 뭐 그런 좀 복잡하면서도 손에 가물가물하지만 두고두고 떠올려보면 뭔가 좀 다른 것 같고 하는 그런 맛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정공으로 치고 들어오시니까 프로파간다(?) 그런 느낌도 나고, 연설문(?)인가 싶을 때도 있고. 아직 작가의 극히 일부분의 작품을 읽은 상태가 뭐라 단정하긴 그렇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많은 SF 작품들에 양분을 제공하신 건 맞는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익숙하게(좀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거 같고요. 일단 몇 권 더 가보려고요. ㅎㅎ
 

We are all inclined to be quick with the verdict that ‘things do not look like that’. We have a curious habit of thinking that nature must always look like the pictures we are accustomed to.


We are all inclined to accept conventional forms or colors as the only correct ones.


Look at the world as if we had just arrived from another planet on a voyage of discovery and were seeing it for the first time, we may find that things are apt to have the most surprising colours. Now painters sometimes feel as if they were on such a voyage of discovery.


There is no greater obstacle to the enjoyment of great works of art than our unwillingness to discard habits and prejudices.


OBJECTS MADE BY HUMAN BEINGS FOR HUMAN BEINGS


Anybody who has ever tried to arrange a bunch of flowers, to shuffle and shift the colors, to add a little here and take away there, has experienced this strange sensation of balancing forms and colors without being able to tell exactly what kind of harmony it is he is trying to achieve.


In every such case, however trivial, we may feel that a shade too much or too little upsets the balance and that there is only one relationship which is as it should be. 


He may suffer agonies over this problem. He may ponder about it in sleepless nights; he may stand in front of his picture all day trying to add a touch of color here or there and rubbing it out agin, though you an I might not have noticed the difference either way. But once he has succeeded we all feel that he has achieved something to which nothing could be added, something which is right - an example of perfection in our very imperfect world.



One never finishes learning about art. There are always new things to discover. It is infinitely better not to know anything about art than to have the kind of half-knowledge which makes for snobbishness.



TASTE CAN BE DEVELOPED


To talk cleverly about art is not very difficult because the words critics use have been employed in so many different contexts that they have lost all precision. But to look at a picture with fresh eyes and to venture on a voyage of discovery into is a far more difficult but also a much more rewarding task. There is no telling what one might bring home from such a journey.




10년 전쯤인가. 


뉴욕 어느 서점에선가 도판이 좋아(미술책은 역시 Phaidon) 굳이 무거운 가방에 하나 더 얹어 산 것이 곰브리치의 미술이야기(The Story of Art). 대문자 A를 쓰는 Art 같은 건 없다고 멋지게 포문을 여는 이야기답게 이 책은 일반 대중, 그것도 예술에 대해 잘난 체 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전문용어를 최대한 자제하여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글이다. 그렇게 많이 소개하는 작품과 작가들 중에 여성작가와 여성작가의 작품이 극히 드물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이 책을 굳이 이제서야 펴든 이유는 뭘까. 아니 펴들게 되었던 이유는? 정말 마음이 가라앉지 않으면 절대 허투로 읽지 않겠다는 결기였던 것일까. 어느 날 문득 펴든 문장은 영어라는 것이 믿기지 않게 모국어처럼 친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내가 무척이나 관심이 있는 주제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10년 전보다 영어 실력이 조금이나마 향상되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냥 딱 지금 내가 너무도 읽고 싶은 책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곰브리치가 말한 것처럼 ‘최대한 쉽게’ 쓰여져서 그런 지도 ㅎㅎㅎ. 이미 그 책을 살 적에도 몇 줄 읽어보고 이 정도면 읽는 데 크게 무리 없겠다 싶어 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물론 그렇게 산 많은 책들 중에 먼지를 쓰고 앉아있다가 소리없이 방출된 아이들도 여럿 있긴 하지만. 


결론은 지금이라는 것.


미술에 관한 책은 늘 관심 속 중앙에 자리 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시각으로 누구나 아는 그림을 그저 그럴 듯하게 이야기하는 책들을 늘 경계해왔다. 그래서 그나마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손꼽는 책이 조중걸의 <근대미술><중세미술><고대미술><현대미술> 시리즈. 예술이 세계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이 책은 미술사책이자 철학책에 더 가까운 책이다. ‘형이상학적 해명’이란 부제가 이를 뒷받침한다. 아직 해외 미술사가들의 연구를 많이 읽진 못했으나 ‘형이상학적 해명’을 바탕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집요하게 판 책은 거의 유일무의하지 않나 싶다.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에서 미술 교과서로 쓰고 싶다고 계약 중인 걸로 안다. 서양예술사(미술사, 음악사, 문학사)와 수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인생의 오랜 시간을 신대륙과 구대륙의 미술관 근처에서 맴돈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늦게나마 곰브리치를 시작한 이유는.


미술사에서 가려진 여성의 시각, 역할, 지위, 의미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기 위해 기존의 시각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다. 지금 열심히 바다 건너 오고 있는 <A Companion to Feminist Art>를 영접하기 위한 밑작업이랄까. 손바닥만 한 책이지만 50년 넘게 고전으로 칭송받는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를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곰브리치 책을 좀 삐뚤게 보기 위해 읽는 것 같은 생각도 없지 않지만 예술에 대한 스노비즘을 거부하며, 어떻게 하면 편견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을 배격하고, 이제 막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내린 생명체처럼 신선한 눈으로 작품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지 역설하는 그의 얘기에 조용히 물개박수를 치지 않을 수는 없다. 


사보지도 않고,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서서 000미술관, 000와 함께하는 미술관 기행 같은 류의 책들은, 잠깐 잠깐씩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강한 거부감을 일으킨다. 하지만 곰브리치 말마따나 예술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맥락에 놓인(맥락이 없으면 설명이 불가능한) 작품들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그저 ‘유추’할 따름.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아주 적은 지식의 양으로.


겨울이 추워 다행이다. 

꼼짝 없이 의자에 착석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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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1-12-26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Chapter 27 에서 드디어 여성 작가,
Käthe Kollwitz 나옵니다.

이 책은 역사를 가로질러 온갖 visual art pieces 를
소개하고 보여줌으로서 우리들을
예술의 세상으로 초대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책의 반 이상이 사진이라서 이 책이 좋습니다.

그래서 Gombrich 가 한 말은 그저 이 책의
첫 번째, 두 번째 Sentences 만 생각날 뿐!
″There really is no such thing as Art.
There are only artists.″


나뭇잎처럼 2021-12-26 19: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첫 문장에 환한 따뜻한 노란색 형광펜을 칠해두었죠. ㅎㅎ 도판이 많아 책은 두꺼워도 읽는 속도가 붙어 좋아요. 아주 아주 좋은 건 전체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요. 덕분에 따뜻하고 풍요로운 연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초란공 2021-12-26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오늘 책정리하다가 이 책을 ‘발굴‘했는데요^^;; 책이 무거워서 이제 들고다니지도 못하겠어요...ㅜㅜ

나뭇잎처럼 2021-12-26 19:29   좋아요 1 | URL
하하. 그렇게 오래 간직하셨다는 건 언젠가 이어질 인연이라는 뜻일 거예요. ㅎㅎ 저도 한 10년 이고 지고 다니다가 이제사 클릭! 이제사 만날 인연이었던 거죠. ^^

초란공 2021-12-26 19:40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판매된 7백만 부 중 하나의 인연으로요! ^^;

나뭇잎처럼 2021-12-26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살 적만 해도 6백만 부였는데요 ;;;;; ㅎㅎ

persona 2021-12-26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그마한 책으로 가지고 있는데 어째 계속 읽다 말다 읽다말다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언젠간 저도 완독하고 싶네요. ㅎㅎㅎ

나뭇잎처럼 2021-12-27 16:20   좋아요 1 | URL
저자가 말한 것처럼 도판이 없는 건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도판이 핵심인 거 같아요. 도판을 실물로 보면 더욱 좋겠지요. 읽어서 상상하는 건 아쉬운 일이죠. 완독보다는 미술관 완주를 꿈꾸어 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