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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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면 워크샵을 빙자하여 모처에 가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진지하고도 본격적인 대화를 다각도로 나누곤 한다. 일명 부부워크샵. 


아이가 없는 대신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는 커다란 개와 함께 살며 우리는 평균 이상의 대화와 친밀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부다. 하지만 문득문득 상대방을 통해서 바라보게 되는 자신은 엉키고 꼬이고 삐뚤어진 이미지일 때가 있다. 아니면 늘 그렇지만 평소에는 적당히 위장하고 사는 건지.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최근 극렬한 논쟁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변한 적도 더러 있고, 워낙 한 번 물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 탓에 출구를 열어놓지 않는 집요한 추궁이 파국으로 치달은 적도 있었다.


결혼 13년차. 

아직도 싸울 게 남았나 싶은데, 외려 시간에 고착된 에피소드는 곰탕처럼 우리고 우려서 전가의 보도가 되었으니 ‘아직도 그 타령이냐’를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궁극의 깔때기로 수렴되는 상황.


이렇게 다른 데 과연 사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고, 아니 그렇게 넌더리가 났으면 왜 헤어지지 못하나 하는 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는다. 습관인가? 


대체 그 많은 부부들은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걸까.

알 수 없는 대목.


지독한 끝장 토론 끝에 우리가 찾은 결론은 

<A New Eearth: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각자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


각자 서로에게 혹은 상대방, 또는 자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포스트잇에 적어 이리저리 섞은 후

제비뽑기해서 그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ex) 

- 현재에 머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우리는 어떻게하면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 상대방이 자신의 에고를 건드리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런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 자신의 고통체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경험은?

- 목적의식을 갖지 않는 것과 목표가 없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등등


우리는 중세풍의 멋진 브루어리 한자리에 앉아 꼬박 3시간 동안 워크샵을 진행했다. 


사실 이 책을 다 이해했는지도 모르겠고, 과연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 맞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책에서 이야기한 자아, 현존, 형상, 의식 같은 주제로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과 그 문제들을 들여다보는 시각을 환기했다는 것이 적지 않은 소득이다. 우리는 결국 더 더 깊이 들어간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 웅크리고 있는 서로에 대한 트라우마(서로에게 받았던 상처)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트라우마가 계속 촉수를 뻗쳐올 때마다 관계가 잠식당했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상처를 기억에서 ‘소멸’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쪽을 선택했다. 앞으로 그 상처를 다시는 꺼내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기억에서 지우는 걸로. 화형식을 하고 싶었지만 남의 업장에서 화재위험을 무릅쓸 순 없는 거라 상상 속에서만 날려버리는 걸로. 어차피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스토리들이 다 머릿속에서 지어낸 것 아닌가. 우리는 그 머릿속에서 고약한 암덩어리를 파내버리는 데 기쁘게 동참했다.


결혼 13년차라 열정적이고 뜨거운 밤을 보내진 않았지만 호텔에서 낯선 잠을 자고 여유있는 조식을 먹고난 후 예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엄청난 걸 발견했다.


더.이.상 싸우지 않았다.


언제든 뭔가 터질 것 같은 미묘한 마찰이나 거슬림 같은 것도 없었다. 

한층 더 서로를 아끼고, 티나지 않게 서로를 위해 물처럼 움직였다. 


이렇게 보람있는 부부워크샵은 실로 처음.


늘 뭔가 반성하고 전망을 세우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잔존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정말 최대한 솔직하게 자신의 것을 털어놓고 묵은 것들을 지우고 나니 마음이 너무도 홀가분했다. 


그러자 찾아온 새로운 세상.

A New Earth.


이 자리를 빌어 에크하르트 톨레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덕분에 부부가 몹시 화목해졌다고.


아마 살면서 다시 또 에고가 뿌지직 하고 튀어나오는 순간이 분명히 있을텐데, 

두 사람은 그걸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에고에게 속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로에게 거울처럼 그걸 의식하게 해주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절감하게 되었으니.

이처럼 고마운 소득이 없다.


일단 당분간은 그러는 걸로.







결혼, 관계, 에고, 알아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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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22 0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글도 좋고
워크샾도 궁금합니다

나뭇잎처럼 2021-12-23 10:44   좋아요 1 | URL
헤헤. 글이 좋다니 과찬이십니다. 분명 좋았는데 까먹을 까봐 잽싸게 적어보았어요. 워크샵은 회사에서 하는 거랑 비슷했어요. ㅋㅋ 다만 쓸데없는 전망을 세우는 것보다 가장 필요한 뭔가에 서로 합의하는 게 달랐다는 정도. 해마다 조금씩 커리큘럼을 바꾸는 재미도 있고요. 올해는 톨레에게 큰 빚을 졌네요. ㅎㅎ

프레이야 2021-12-22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마다 부부워크샵을요! 궁금하기도 하고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어요.
마음은 있어도 실천하기 쉽지는 않을 텐데 매해 하시다니요.
몹시 화목해지셨다니 몹시 좋아요^^
13년의 두 배가 넘어버리면 이러저러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답니다.

나뭇잎처럼 2021-12-23 10:46   좋아요 1 | URL
하. 13년의 두 배가 되면 또 어떤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지나요? 정말 관성으로 사는 것만큼은 지양하는 일인데, 그 오랜 세월을 늘 현재로서 살 수 있을지, 하 궁금해지네요. 워크샵은 낯선 데 가서 하는 게 핵심이죠. ㅋㅋ 그만큼 떠나는 설렘이 있고요. 그래서 매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떠나기 위한 핑계? 구실? ㅎㅎ 당분간 워크샵 약발이 지속되는 거 같아 모처럼 흐뭇할 뿐입니다. ㅎㅎ

blanca 2021-12-22 1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저 이 책 꼭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좋은 글 감사해요. 그냥 상황, 현실에 마냥 쓸려다니느라 올해가 어떻게 간지도 몰랐는데 스스로와 삶을 돌아봐야 할 시간을 확보해야겠네요.

나뭇잎처럼 2021-12-23 10:51   좋아요 0 | URL
코로나 덕분인지, 탓인지 송년모임을 많이 갖진 못했지만 이렇게해서라도 한 해를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고런 핑계로 문득 문득 삶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도 재미난 거 같고요. 워낙 많이 팔린 책이라 책에 대한 칭찬은 더할 필요가 없을 거 같지만, 오프라 윈프리가 이 책을 읽고 자기 삶을 바꾼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라고 말하면서 저자랑 둘이서 팟캐스트를 열었어요. 챕터 바이 챕터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팟캐고요. 아 또 둘이서 그렇게 한 챕터당 한 시간씩 딥하게 하니까 책의 보충교재(?) 같은 효과도 있더라고요. 암튼 남편에게 추천하고 고맙다는 칭찬 받은 몇 안되는 책 중 하나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