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선생님 강연에서 이 책이 언급되어서 읽었다. 육백 페이지가 넘기도 하고 이래저래 책 안 읽은 날이 있어서 꽤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다.쇳돌은 쇠붙이 성분의 돌이란 뜻이고, 국내 유일 자철 광산 폐광 후 수도권으로 이동한 광산노동자 모임의 이름이기도 하다.나에겐 페미니즘 도서로 익숙한 저자는 그 광산의 광산노동자 가족으로서 이 책을 썼다. 그의 아버지는 양양광업소의 마지막 노조위원장이기도 하다.70년대생인 저자는 나와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부분이 새롭게 알게된 것들이었다. 이 노동이 얼마나 비가시화되어왔는지 드러나는 지점이다.그럼에도 그저 관찰자처럼 읽고 있었다. 말미에 다다를 때까지 한 가족을 중심으로 뻗은 특별한 노동사를 읽는 입장일 뿐이었다. 하지만 515쪽 "어차피 없어질 직업"에서 이 책이야말로 "먼저 온 미래"와 그것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란 걸 알게 되었다. 현시점 우리 모두의 고민은 AI시대에 도래할 직업 상실이 아닌가? 여기에 시대적 흐름으로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니던" 산업이 막을 내리며 함께 희생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있다.사라진 산업의 자리에도 사람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곳에서 사람을 꺼내는 것에 대해, 어떤 직업이 없어져도 사람은 삶을 여전히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한다. 과연 광산은 우리의 미래다.
소설가가 보고 온 750살이 넘은 느티나무를 보고 와야 다 읽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지도 어플을 켜 보니 그 나무는 삼십 분 쯤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며칠을 미루다가 이제야 보러 간 나무는 당연하게도 나목이었다. 바람이 불 때 사락사락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계절이라면 덜 쓸쓸해 보일까. 굵은 밑동부터 나뭇가지가 뻗은 데까지 올려다 보다 돌아왔다.과거를 지나 현재에 닿은 존재는 기도의 응답 여부를, 혁명의 결과를, 사랑의 뒷모습을 이미 보았다는 점에서 쓸쓸하다. 그것은 750년을 산 나무와 중년을 넘긴 인간의 공통점이다. 그럼에도 그 과거를 간직할 것인가?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운명으로 나아갈 것인가? 나무는 그 자리에서 여전히 나무이지만 인간은 마주치는 타자에 따라 어떤 인간이 될지 선택해야 한다.그런 것을 알려주는 소설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의 개정판이 나왔다. 2001년의 감각이었던 호모가 게이로 바뀌어 있다. 일본어 표기 그대로 민트 주레프로 번역되었던 건 민트 줄렙으로 외국어의 한국어 표기 옷을 입었다.그 외에 한 줄 한 줄 느껴지는 반짝반짝은 처음 읽을 때 그대로다. 완전히 빨려들어가서 읽었다.이십 대 초반에 만난 에쿠니 가오리, 특히 이 책은 평생을 지배하는 인간관, 연애관의 기초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애정이란 기적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 만큼 무모하기를 동경한다. 그리고 그것의 표면은 평화롭다. 무츠키와 쇼코의 관계는 아직도 내 이상형이다.이십여 년 전 에쿠니 가오리를 소개해준 친구가 이번에도 개정판을 보내주었다. 우리 사이에 있는 시간의 두께는 이제 번번이 놀랄 만큼 두꺼운데도 오래 전 로욜라 도서관에서 강국향직을 검색해서 에쿠니 가오리를 찾던 날은 꼭 일주일 전만 같다. 이 책을 다시 읽는 기분도 꼭 그랬다. 일주일 전에 읽은 소설을 다시 읽을 때처럼 기억이 한 줄 먼저 달려가서 문장을 떠올리고 글자보다 마음이 앞서 동요했다. 기억이라던가 추억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정말로 힘이 세구나.*초판 1쇄의 날은 2001년 12월 26일, 개정판 1쇄의 날은 2025년 12월 26일이다. 날짜를 맞추는 낭만이 좋아...
절창切創은 날에 베인 상처란 뜻이다. 이 소설은 상처와 상처 읽기에 대한 것이다.1. 상처를 통해서 읽는 것-문학과 독자거의 모든 문학은 작가의 상처를 통해 쓰이고 그것을 읽는 것은 독자다. 상처를 헤집으며 읽어야 하는 아가씨를 보며 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언제나 명쾌하지도 않고 항상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의 감정이 혼란스러워짐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읽고 마는 독자들. 사로잡힌 존재들.'읽다'라는 동사 때문에 계속 그 생각에 빠져있었던 것도 같고.2. 죽은 자만 이름이 있다죽음은 상처로 생명이 빠져나온 상태. 이제 그의 이야기에는 제목(이름)이 붙고 그 이야기는 완결된다. 이름 없는 사람들은 자유롭다. 그들의 상처는 이제 깨끗하던 흉터가 되었던 결국엔 아물었으며 바깥으로 흘러나오지 않고 육체 안에 머무는 생명은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 흔히 이름 있음이 권력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름 없음이 더 강해 보였다.3. 상처 직전의 경계에서더 깊이, 속속들이 알기 위해 상처가 필요하다면 더 알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네가 다치고 아픈 게 싫으니까. 하지만 내가 읽는 게 아니라 네가 말하는 거라면 듣겠다, 는 태도.순애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집 고일이가 읽고 있는 나에게 그 책 스톡홀롬 증후군 이야기라며? 하고 말해서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