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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없다 - 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
정혜승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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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의 사람들은 대형참사로 지난 시절을 불러올 수 있다. 성수대교는 초등학생 때, 삼풍백화점은 중학생 때 각각 무너졌고 대학생 때는 대구에서 지하철 화재가 있었다. 그때가 방학이었는데 고향인 대구에 가 있던 후배가 누나는 왜 내 생사확인 전화도 안 해요? 하고 나중에 한 연락이 대형참사가 나와 닿아있다는 최초의 자각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가 된 세월호 침몰이 있다. 엄마가 된 나는 매일 울면서 뉴스를 봤다. 처음으로 정치학이 아닌 현실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평화시민혁명으로 대통령을 바꿀 때는 효능감 같은 것도 느꼈던 것 같다.

이게 마지막었다면 세월호의 상처는 아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참사는 다시 일어났다. 축제를 즐기던 청년들이 산채로 숨이 막혀 세상을 떠났다. 밤이 늦도록 뉴스에서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을 무력하게 보고 있었다.

이때 느낀 절망감을 사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다. 1년이 넘도록 유가족도 지인도 아닌 나는 그때 무너진 생활을 다시 복구시키지 못하고 있다. 옅어진 줄 알았던 세월호의 슬픔도 겹쳐진다. 아이 하나 청년으로 키우는 일, 일상을 즐기는 일도 복불복으로 실패하는 게 이 세상이란 생각에 우울하고 허무한 마음이 여전하다.

이전에는 대형참사가 나와 닿아있는 줄 몰랐고, 세월호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는 그 시간의 축적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절망감과 정말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1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는 데서 오는 공포를 준다.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에 필요한 게 이런 책이었다는 것을 읽고나서 깨닫는다. 참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연, 어쩌다 일어난 재수없는 사건이 아니라 작은 균열로 시작되어 시스템 전체가 붕괴된 결과임을 인터뷰와 취재, 국내외와 과거, 현재를 넘나드는 정치사례, 그리고 참고 도서를 오가며 조목조목 짚어낸다. 이렇게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나니 좀 차분해진다. 그렇다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 참사가 우연이 아니라 잘못된 정치를 넣은 결과값이라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기자가 사실을 전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는 어수선한 요즘이다. 쉽게 욕하고 마는 해로운 기자와 그의 글과는 달리 이런 책은 참사의 씻김굿이고 이를 쓴 기자는 이 사회의 만신이다. 기자와 그의 작업이 봉합과 회복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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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다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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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슬픔은 그것이 오롯이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라는 점에서 청춘의 슬픔과 다르다. 나이 듦의 슬픔은 자신과 주변인의 슬픔이며, 나이 듦이 망각에 접어들면 그 슬픔의 지분을 주변인이 더 많이 차지하게 된다. 주변인은 그것을 어떻게든 다루어야 하고.


어머니 돌보기와 아이 돌보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이 책의 원제는 mothercare인데 작가는 childcare를 염두에 두고 이 단어를 만들었다 한다) 이 돌봄이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료도 재활도 죽기까지의 편안함을 지향하며, 이미 나빠진/노쇠한 상태이기 때문에 최고가 아닌 지금보다 나은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이런 사실은 우울하다.


그럼에도 자매들과 돌봄노동자와 의료인과 협력하며, 때로는 그들과 반목하며 저자는 이 돌봄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양가감정적 애정 때문일까? 미국에는 단어화 되지 않은 개념인 효()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일까? 사실 저자도 이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에게 주어진 삶 자체로 보였다. 인간의 일생을 생로병사로 흔히 표현하는데 이것은 순차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삶 순간순간에 생로병사가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 듦도 질병도 죽음도 타인의 몸으로 내 삶에 들어올 수 있고, 그때 나는 그 삶을 또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아서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슬픔과 돌봄 노동은 절대로 가볍지 않음이 분명하다. 들리는 이야기로도 그렇고 이 책의 저자 역시 그 경험을 책으로 쓰기까지 십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매일 쓴 일기처럼 생생한 것은 여전히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이 진행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끝이지만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한 질문이며 상상이고 결코 회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동행임을 그가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를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죽음은 존재하는 것이 된다. 유골을 보관하고 타일을 제작하고 책을 쓰고 하지 못한 질문을 생각하면서.


특별한 점은 이 이야기가 의도한 것이 아닌데도 여성들의 서사라는 것이다. 어머니를 돌보는 세 자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여성 돌봄 노동자가 등장한다(물론 의사들도 있지만 그들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매우 중요하더라도 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존재는 아니다. 다른 이들이 배우라면 의사는 무대 위에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감이 큰 소품 같은 역할이다.). 전통적으로 돌봄이 여성에게 주어진 임무이긴 하지만 이 가정에는 달리 돌봄을 맡을 남성 구성원이 없고, 여성 환자는 대개 여성 간병인을 고용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는 여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여성이 실패하고, 여성이 이겨내며, 여성끼리 대립하고, 여성이 돌보고, 여성이 죽는다. 그 덕분에 나는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 가운데 편안함을 느꼈다. 성별에 따른 억지 논란, 피곤한 고정관념을 제하고 그저 인간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데서 오는 편안함이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소설로는 이주혜의 <자두>가 있다. 여기에도 간병과 돌봄이 있지만 그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도 있다. 이것은 매우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 소설을 더 먼저 읽어서 <어머니를 돌보다>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며칠 전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노후와 노화로 주제가 자연스럽게 흘러간 적이 있다. 우리는 주변의 불행 사례들을 앞다투어 꺼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 중에 그것을 거부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그 삶 또한 기꺼이 살아낼 것이다. 불행하게, 힘들게, 그러나 꿋꿋이,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이 책이 그저 남의 일이 아닌 것은 누구나 부모를 잃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든 이 복잡한 감정을 살게끔 예정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삶은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하면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삶은 완전하고 완벽한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삶은 남쪽 북쪽 사방팔방으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 P33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그래서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거나 생각하더라도 더 이상 자기 생각을 믿을 수 없게 되면 삶에 논리를 부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다만 그 삶은 당신의 예전 삶일 수는 없다. - P38

부모와 형제자매 사이에서 형성된 경험적, 심리적 관계는 암묵적이고 무의식적인 법칙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역사가 개인의 태도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결과 돌봄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의 의욕을 꺾고 힘을 뺀다.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해석과 결정 속에 맴돈다. 지형은 험난하고, 이전 전쟁에서 남은 폭탄이 깊은 감정의 밀도에 의해 기폭된다. 가족 또는 친구들은 화자라는 대의를 위해 협력할 것이다. 아니면 분열하다 분해될 것이다. 많은 경우 그렇게 된다. - P81

짐가방은 어디로 갔을까? 없어졌어. 너희가 어떻게 한 거야? 어머니는 점점 더 흥분했다. 그래서 내가, 짐가장은 없어지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냈다. 때로는 울음을 터뜨렸다. 기억 상실을 겪는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이다. 나는 짐가방에 어머니의 과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짐가방의 분실은 어머니의 과거의 분실을 상징한다고. 또는 그 짐가방에 어머니가 잃어버린 기억들이 들어 있다고. - P86

임종 과정은 기본적으로 괭이밥의 이파리가 밤에 닫히는 것과도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징후는 발가락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다. 마치 뭔가를 움켜쥐듯이.

그 과정은 출산 과정과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 P184

나는 어머니가 아프긴 해도 정신이 맑았을 때 물었다. 인생은 고달프고 살다 보면 끔찍한 일도 일어나잖아요. 그런데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어머니는 말했다. 삶에는 아름다운 것들도 있으니까.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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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넘기지 않는다 - 페미니스트 킬조이가 보내는 쪽지
에린 웡커 지음, 송은주 옮김 / 신사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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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지만 역시 난해하고 그래서였는지 요새는 유행이 지난 듯한 여성적 글쓰기(식수)의 흔적을 여기서 본다. 원제에 들어있는 note, 번역으로 쪽지인 단어는 빈말이 아니다. 저자는 분열의 삽화를 쪽지들로 남기고 그것들을 패치워크로 엮어 이 책으로 만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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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에서 여성-엄마-페미니스트로 존재하는 것은 분열할 수 밖에 없는 상태다. 이것을 기존 문법으로 적는다면 아무리 많이 써도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여성적 글쓰기는 그것을 완전하게 한다. 엮어내고 숨겨주고 빈 공간(행간)을 제공한다. 같은 맥락에서 전에 읽은 《자아, 예술가, 엄마》 도 생각난다. 통합적 존재로서의 ‘나‘라는 환상이 깨진 후(자아-예술가-엄마 라는) 그 조각을 모으는 과정의 ‘나‘ 혹은 그 작업을 읽었었다. 이 책은 자아-페미니스트-엄마의 경우다. 강간 문화에 관한 쪽지는 비교적 쉽게 읽히고(모두 동의하니까 역설적이게도 제일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우정에 관한 쪽지는 핵심 단어만 빼고 주변을 쓴 느낌. 그만큼 조심스러운 접근. 페미니스트 엄마 노릇에 대한 쪽지는 치마만다 응고지치 아디치에의 《엄마는 페미니스트》 보다도 솔직하게 다가왔다. 이건 진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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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휘둘리며 읽은 이유는 나도 딸을 낳아서, 그 어린이의 태명이 같은 쑥쑥이여서, 쫓긴 적이 있어서, 같은 결의 절망을 겪은 적 있어서만은 아니다. 가부장제의 즐거움이 즐겁지 않다는 연대, 그리고 그것을 인지함으로부터 오는 불안/흥분이 날 것 그대로 생생했기 때문이다. 호흡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런 책은 흔치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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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개로 분명 쉬운 책은 아니니만큼 역자후기 노트가 짧게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지극히 개인적으로 읽을 때 의미가 증폭되기 때문에 없는 걸까 궁예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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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울의 길 - 확장하는 도시의 현재사 서울 선언 3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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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대서울 시리즈 세 번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에서 저자가 서울에 대한 책은 매년, 매달 갱신되어야 한다고 쓴 것처럼 과연 세 번째 책이 나온 지금의 서울은 또 다른 모습이다. 이번 책에서는 내게 익숙한 경기도 그 너머까지의 대서울을 주로 다룬다. 난 출퇴근도 통학도 안 하는 입장이라 대서울의 범위를 일상에서 체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좁은 이곳은 놀랍게도 대서울 어디와도 연결된다. 진짜 ˝대˝서울이다. 이 책의 여정은 그 연결, 선(길)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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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곳곳에 서있는 위령비들이다. 위로하고 기록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잊혀지고, 사고들은 비석을 앞질러 잊혀진다는 느낌. 어떤 곳에서는 자연물처럼, 어떤 곳에서는 걸림돌처럼 방치되고 잊혀진 비석들이 매달 갱신되어야 하는 대서울 확장을 위한 땔감의 일부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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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들어온 것은 대서울에 형성된 외국인 노동자 거주지역에 대한 것들이다. 요즈음 난민 이슈가 대두되며 나오는 이슬람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말들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스피커의 옆집이 아닐 뿐 이미 그것은 대서울의 한 부분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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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의 묘미는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에서 1983년 나온 《한국의 발견》시리즈와 지금의 대서울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공책에 베껴 적으며 사회 숙제를 했던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이 시리즈를 여전히 아빠가 갖고있다는 걸 알고있으므로 당연히 《대서울의 길》을 풍부하게 읽기 위해 빌렸다. 대서울의 길에 중요한 부분은 발췌되어있고 한국의 발견은 뒤적거리며 부분부분 읽었지만 엄청 재미있었다. 70대 아빠의 책꽂이에는 한국의 발견이, 내 책꽂이에는 대서울 시리즈가 있다는 것도 상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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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는 이전과 다르게 내가 잘 모르는 지역이 많이 나왔다. 이전 책에서는 아는 곳의 반가움, 기억의 재미를 느꼈는데 이번에는 안타까움이 컸다. 내가 알기도 전에 이미 사라진 것들, 더이상 원래 모습이 아닌 것들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몇해 전 우리집에서 내려다 보이던 주공아파트 철거 모습이 생각났다. 그 광경을 볼 때 이 비슷한 기분이었다. 소중했던 한때가 부서지는 장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때의 느낌. 이것을 미래 유산 보존 같은 이름을 붙여 낡은 아파트 한 동 남기는 걸로 무마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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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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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를 오해한 건지... 자본주의자라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나는 타샤 튜더를 생각하고 이 책을 샀다. 여름이면 블랙베리를 따고 밀알을 갈아 빵을 굽는 가족이라고 하니. 하지만 프롤로그만 읽어도 알게된다. 이 책은 숲속의 동화가 아니다. 숲속의 낭만주의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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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낭만주의가 이 책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진짜 오랜만에 낭만주의 책(문학비평)을 뒤져보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루소의 정의는 직관적으로 들어맞지만 더 어울리는 페어차일드의 정의다. ˝한정적인 것 속에서 무한정한 것을 찾고,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의 종합을 이루려는 욕구˝가 그것이다.(*낭만주의라는 독자 입장의 해석은 사실 오독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인데 그 이유는 낭만주의를 명확히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흠...) 저자는 자신의 생활방식을 7년째 이어오고 있음에도 그것을 실험이라고 칭하는데 이 지점이 페어차일드의 정의와 상통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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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숲속이라는 키워드는 《천연균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우주소년)와 연결되어 오랜만에 그 책도 다시 뒤적여봤다. 《천연균...》쪽은 공동체와 사회운동에 좀 더 힘이 실려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이 책과 역시 상통하는 면이 있다. 행복한 노동과 자유라는 핵심가치가 그것이다. 이렇게 같은 결의 생각을 하게 하는 건 빵일까 시골일까 하는 아주 단순한 궁금증도 조금 가져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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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많이 갔던 부분은 감사와 이해를 멈추는 것, 물건의 끝을 생각하고 물건을 들이는 것. 앞의 것은 내가 지향하고 싶은 태도고 뒤의 것은 미니멀리즘을 책으로 배운 내가 드디어 껍데기 미니멀리즘을 졸업하고 스스로 실천 중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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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독서 경험을 넘나들며 삶의 삽화를 넣어 쓴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여럿 건넨다는 점에서 좋았다. 하지만 내가 내내 가졌던 생각은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백신을 접종하는 세상에서 안티백서도 백신의 혜택을 받는 것과 같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 글, 지식이라는 무형의 재화를 경제재로 활용하려면 도시의 자본주의와 누군가의 낭만 없는 노동이 필수적이지 않을까? 물론 이 책은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난 단지 모두가 이렇게 산다면 자본주의가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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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kimg2 2022-04-0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가 지금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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