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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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切創은 날에 베인 상처란 뜻이다. 이 소설은 상처와 상처 읽기에 대한 것이다.

1. 상처를 통해서 읽는 것-문학과 독자
거의 모든 문학은 작가의 상처를 통해 쓰이고 그것을 읽는 것은 독자다. 상처를 헤집으며 읽어야 하는 아가씨를 보며 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언제나 명쾌하지도 않고 항상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의 감정이 혼란스러워짐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읽고 마는 독자들. 사로잡힌 존재들.
'읽다'라는 동사 때문에 계속 그 생각에 빠져있었던 것도 같고.

2. 죽은 자만 이름이 있다
죽음은 상처로 생명이 빠져나온 상태. 이제 그의 이야기에는 제목(이름)이 붙고 그 이야기는 완결된다. 이름 없는 사람들은 자유롭다. 그들의 상처는 이제 깨끗하던 흉터가 되었던 결국엔 아물었으며 바깥으로 흘러나오지 않고 육체 안에 머무는 생명은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 흔히 이름 있음이 권력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름 없음이 더 강해 보였다.

3. 상처 직전의 경계에서
더 깊이, 속속들이 알기 위해 상처가 필요하다면 더 알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네가 다치고 아픈 게 싫으니까. 하지만 내가 읽는 게 아니라 네가 말하는 거라면 듣겠다, 는 태도.

순애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집 고일이가 읽고 있는 나에게 그 책 스톡홀롬 증후군 이야기라며? 하고 말해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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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벌과 사대 - 15세기 조선의 대외정벌과 대명의식 역비한국학연구총서 41
이규철 지음 / 역사비평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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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선생님께서 팟캐스트에서 지나가듯 언급하신 책을 메모해두었다가 읽은 것. 막연하게 우리 조상은 침략을 받기만 했지 침략한 적은 없다, 조선을 관통하는 주요 사상은 사대주의다, 하는 납작하게 배운 역사인식을 반박하는 책이다.

배경은 15세기 조선으로, 단지 왜구와 여진의 침략을 막아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외정벌이 국왕의 의지로 행해졌음을 사료를 통해 밝힌다. 그 와중에 막연히 절대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명을 향한 사대 역시 국내 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이 놀랍다. 단지 국가간 힘의 차이에서 오는 사대가 아닌 정치행위였던 것. 납작하게 배웠던 한국사 지식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 책은 논문이고... 어렵다. 두께에 비해 읽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해 같은 페이지를 다시 읽은 게 몇 번인지. 그 와중에 들었던 생각은 정벌과 사대 사이를 오가는 적극적 정치행위가 국가의 발전과 맞물려있다는 것이다. 역사에 문외한일지라도 누구나 업적을 댈 수 있는 세종도 명과의 문제를 제기하며 정벌에 반대하는 신하들에 맞서 정벌 의사를 밝힌다. 국내외 모두를 향한 정치행위가 군주권을 안정시켰고 그 가운데 국가의 발전 또한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흔히 정치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정쟁뿐이지 국민의 삶을 바꾸지 못하지 않는가 하는 말이 많은데 역사를 보면 정치란 엄청난 쓸모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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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책세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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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븐>을 쓴 작가의 작품이란 것만 알고 사와서 읽었다. 헤븐은 굉장히 찜찜하고 강렬한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도 헤븐처럼 외로운 아이가 나온다. 그리고 이 아이, 이토 하나는 좀 더 고립되어 있다. 엄마도 있고 학교도 다니지만 느슨하게 연결된 사회망은 불안정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그것들을 떠나 스스로 선택한 사람과 새로운 곳에서 살기로 한다. 그러자 놀랍도록 간단하게 그와 연결된 모든 것이 툭툭 끊어진다.

그가 새롭게 고른 가족은 엄마와 살던 집에 흘러들어왔던 기미코, 그리고 또래 여자아이 둘이다. 하나는 그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자기가 기댈 곳을 유지하기 위해 죽도록 일하지만 일은 점점 더 어둡고 무거워지고, 새로운 가족은 거꾸로 하나에게 기댄 모양새가 되어간다. 하나는 다시 외롭고 그가 기댈 곳은 풍수나 꿈, 돈을 모으는 낡은 구두 상자 정도다.

처음부터 파국이 예상되는 이 가족은 간단하게 파괴된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위태롭게 돈에 집착하던 하나는 그 파괴와 동시에 돈과 무관해진다. 그가 그렇게도 원하던 관계와 인정을 위해서만 돈이 가치로웠던 거니까. 집착이 없었다면 파괴되지 않았을 관계, 그러나 돈이 없었다면 아예 시작될 수 없었던 관계... 하나는 그저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인데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폐허에서 하나와 기미코가 만난다. 가졌고 잃었고 그래서 더 텅 빈 사람들일 것 같지만 잃어버린 것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해진 두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이제 그 관계에는 다른 무엇이 아닌 두 사람만이 필요하다. 먼 길을 돌아 알게되는 것들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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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세계
찬쉐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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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읽는 일이란 곧잘 정적인 일로 여겨진다. 소설가는 식물처럼, 독자는 오래된 도서관처럼. 그러나 쓰고 읽는 사람들은 안다. 이것이 얼마나 소용돌이 치는 에너지 덩어리인지를, 그렇게 바뀐 내가 문 밖의 세상을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곳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제목의 격정이 쓰고 읽는 일 그 자체에 대한 것인지는 몰랐다. 문학에 대한 이야기란 걸 표지에서 봤지만 격정적인 현실에서 고요하게 중심을 잡는 문학을 이야기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건 문학의 리비도에 대한 소설이었다. 지금까지 중국 소설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완 굉장히 달라서 놀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은 느낌인... 마치 고전을 번역한 것 같은. 그건 읽고 쓰는 일 그 자체가 이제는 낡아버린 작업이기 때문일까, 리비도과 펑펑 터지는 소설이 요즘엔 없기 때문일까.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며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로부터 비현실적인 소설적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내가 아는 지금의 중국이 전혀 담기지 않은 중국 소설에 대한 이질감도 짚어졌다. 세계가 반영되지 않은 문학의 격정이 독자와 아직 독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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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책세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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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 특유의 불쾌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이다. 이 세상에는 이미 이지메를 소재로 한 무척 많은 소설이 있지만 거기에 이 책 한 권이 더해져야 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그 불쾌함 때문일 것이다.

작중 화자이자 주인공은 사시라는 신체조건을 빌미로 극심한 교내 괴롭힘에 시달린다. 그런 그에게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이지메를 당하는 중인 고지마가 다가온다. 거의 편지, 그다지 접촉은 없는 관계지만 둘은 가까워지는데, 친구보다는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다른 국적의 포로들 같은 느낌이다. 같은 감정이지만 닿지 않는 언어를 쓰고 있는.

이는 괴롭힘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고지마와 괴롭힘의 시작점인 사시를 수술로 고칠 수 있는 화자의 입장차이로 발전한다.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 고지마가 보이는 기괴한 행동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공식을 흔든다. 이 행동이 불쾌한 이유는 단지 기괴하기 때문이 아니라 앞서 있었던 화자와 모모세의 대화 때문이다. 괴롭히는 무리 중 하나인 모모세는 괴롭힘의 이유가 사시가 아니라 그저 그것이 즐겁고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화자에게는 왜 자신들을 칼로 찌르지 않는지 묻는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괴롭히는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지마의 적극적 피해자 되기는 가해자의 언어를 가진 피해자, 가해자화 된 피해자이므로 불쾌하다. 피해자에게 피해자성을 요구할 수도, 그렇다고 가해자의 언어대로 따라갈 수도 없는 독자는 인간성의 바닥 같은 끈적한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주로 일본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불쾌함이다.

결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너와 내 안에 그런 심연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걸 들여다본 것으로 충분. 모모세의 말처럼 그 심연은 전쟁에도 예술에도 있다. 전범국 출신 소설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유심히 보게 된다. 아 그런 생각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마음. 교실에서 국제사회까지 너무 나갔나? 하지만 왜, 라는 질문이 등장하는 무대마다 이 소설을 그 심연을 대답으로 들이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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