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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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의 개정판이 나왔다. 2001년의 감각이었던 호모가 게이로 바뀌어 있다. 일본어 표기 그대로 민트 주레프로 번역되었던 건 민트 줄렙으로 외국어의 한국어 표기 옷을 입었다.

그 외에 한 줄 한 줄 느껴지는 반짝반짝은 처음 읽을 때 그대로다. 완전히 빨려들어가서 읽었다.

이십 대 초반에 만난 에쿠니 가오리, 특히 이 책은 평생을 지배하는 인간관, 연애관의 기초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애정이란 기적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 만큼 무모하기를 동경한다. 그리고 그것의 표면은 평화롭다. 무츠키와 쇼코의 관계는 아직도 내 이상형이다.

이십여 년 전 에쿠니 가오리를 소개해준 친구가 이번에도 개정판을 보내주었다. 우리 사이에 있는 시간의 두께는 이제 번번이 놀랄 만큼 두꺼운데도 오래 전 로욜라 도서관에서 강국향직을 검색해서 에쿠니 가오리를 찾던 날은 꼭 일주일 전만 같다. 이 책을 다시 읽는 기분도 꼭 그랬다. 일주일 전에 읽은 소설을 다시 읽을 때처럼 기억이 한 줄 먼저 달려가서 문장을 떠올리고 글자보다 마음이 앞서 동요했다. 기억이라던가 추억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정말로 힘이 세구나.

*초판 1쇄의 날은 2001년 12월 26일, 개정판 1쇄의 날은 2025년 12월 26일이다. 날짜를 맞추는 낭만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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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잊어버리네
오카자키 교코 지음, 오고원 옮김 / 고트(goat)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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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90년대 스타일 같기도 하고... 세월과 상관 없이 일본 문학에서 꾸준히 이어지는 서늘함이나 그로테스크, 와비사비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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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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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切創은 날에 베인 상처란 뜻이다. 이 소설은 상처와 상처 읽기에 대한 것이다.

1. 상처를 통해서 읽는 것-문학과 독자
거의 모든 문학은 작가의 상처를 통해 쓰이고 그것을 읽는 것은 독자다. 상처를 헤집으며 읽어야 하는 아가씨를 보며 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언제나 명쾌하지도 않고 항상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의 감정이 혼란스러워짐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읽고 마는 독자들. 사로잡힌 존재들.
'읽다'라는 동사 때문에 계속 그 생각에 빠져있었던 것도 같고.

2. 죽은 자만 이름이 있다
죽음은 상처로 생명이 빠져나온 상태. 이제 그의 이야기에는 제목(이름)이 붙고 그 이야기는 완결된다. 이름 없는 사람들은 자유롭다. 그들의 상처는 이제 깨끗하던 흉터가 되었던 결국엔 아물었으며 바깥으로 흘러나오지 않고 육체 안에 머무는 생명은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 흔히 이름 있음이 권력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름 없음이 더 강해 보였다.

3. 상처 직전의 경계에서
더 깊이, 속속들이 알기 위해 상처가 필요하다면 더 알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네가 다치고 아픈 게 싫으니까. 하지만 내가 읽는 게 아니라 네가 말하는 거라면 듣겠다, 는 태도.

순애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집 고일이가 읽고 있는 나에게 그 책 스톡홀롬 증후군 이야기라며? 하고 말해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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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벌과 사대 - 15세기 조선의 대외정벌과 대명의식 역비한국학연구총서 41
이규철 지음 / 역사비평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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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선생님께서 팟캐스트에서 지나가듯 언급하신 책을 메모해두었다가 읽은 것. 막연하게 우리 조상은 침략을 받기만 했지 침략한 적은 없다, 조선을 관통하는 주요 사상은 사대주의다, 하는 납작하게 배운 역사인식을 반박하는 책이다.

배경은 15세기 조선으로, 단지 왜구와 여진의 침략을 막아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외정벌이 국왕의 의지로 행해졌음을 사료를 통해 밝힌다. 그 와중에 막연히 절대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명을 향한 사대 역시 국내 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이 놀랍다. 단지 국가간 힘의 차이에서 오는 사대가 아닌 정치행위였던 것. 납작하게 배웠던 한국사 지식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 책은 논문이고... 어렵다. 두께에 비해 읽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해 같은 페이지를 다시 읽은 게 몇 번인지. 그 와중에 들었던 생각은 정벌과 사대 사이를 오가는 적극적 정치행위가 국가의 발전과 맞물려있다는 것이다. 역사에 문외한일지라도 누구나 업적을 댈 수 있는 세종도 명과의 문제를 제기하며 정벌에 반대하는 신하들에 맞서 정벌 의사를 밝힌다. 국내외 모두를 향한 정치행위가 군주권을 안정시켰고 그 가운데 국가의 발전 또한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흔히 정치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정쟁뿐이지 국민의 삶을 바꾸지 못하지 않는가 하는 말이 많은데 역사를 보면 정치란 엄청난 쓸모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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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책세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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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븐>을 쓴 작가의 작품이란 것만 알고 사와서 읽었다. 헤븐은 굉장히 찜찜하고 강렬한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도 헤븐처럼 외로운 아이가 나온다. 그리고 이 아이, 이토 하나는 좀 더 고립되어 있다. 엄마도 있고 학교도 다니지만 느슨하게 연결된 사회망은 불안정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그것들을 떠나 스스로 선택한 사람과 새로운 곳에서 살기로 한다. 그러자 놀랍도록 간단하게 그와 연결된 모든 것이 툭툭 끊어진다.

그가 새롭게 고른 가족은 엄마와 살던 집에 흘러들어왔던 기미코, 그리고 또래 여자아이 둘이다. 하나는 그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자기가 기댈 곳을 유지하기 위해 죽도록 일하지만 일은 점점 더 어둡고 무거워지고, 새로운 가족은 거꾸로 하나에게 기댄 모양새가 되어간다. 하나는 다시 외롭고 그가 기댈 곳은 풍수나 꿈, 돈을 모으는 낡은 구두 상자 정도다.

처음부터 파국이 예상되는 이 가족은 간단하게 파괴된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위태롭게 돈에 집착하던 하나는 그 파괴와 동시에 돈과 무관해진다. 그가 그렇게도 원하던 관계와 인정을 위해서만 돈이 가치로웠던 거니까. 집착이 없었다면 파괴되지 않았을 관계, 그러나 돈이 없었다면 아예 시작될 수 없었던 관계... 하나는 그저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인데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폐허에서 하나와 기미코가 만난다. 가졌고 잃었고 그래서 더 텅 빈 사람들일 것 같지만 잃어버린 것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해진 두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이제 그 관계에는 다른 무엇이 아닌 두 사람만이 필요하다. 먼 길을 돌아 알게되는 것들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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