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과 함께하는 <임꺽정> 강연회 행사 후기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도 한달반 걸려서 읽었던 나로서는,

임꺽정이나 장길산에서 느끼는 심적 부담도 거의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 해도 그 두께 앞에서 마냥 아득할 뿐이라면?

그래서 우리 집엔 임꺽정이 3권까지만 꽂혀있다. 읽고자 몇 번 시도했지만

3권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왠일일까?

사계절출판사에서 초대해주신 강연회,

그것도 김훈이라는 이 시대의 문장가를 통해서

음미해볼 수 있었던 임꺽정과의 만남은

한마디로 가장 좋은 계절의 더할 나위 없는 별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홍대 상상마당 4층 회의실의 모임이 너무도 아늑했다고, 나는 쓰고 싶다.

 

작가가 임꺽정을 섬세하게 설명하는 방식도 작품을 재차 읽어보자는 다짐을 불러일으켰다.

이 열권의 미완성 소설이 하나의 덩어리로서 어떠했다는 독후감이 아닌,

각 권의 어느 한 두 대목씩을 스크랩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80여분간을 휘달린 김 훈 선생님의 강연 말이다.

 

그날 찍어가신 강연회 동영상은 꼭 유투브에 올려주셨으면 한다. 마지막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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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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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홍대와우북에서 구매하려고 벼르고 있는 책.

내일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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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책 제목을 이렇게 달려고 했다.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만해의 시 '사랑의 끝판'에서 따온 것인데, 내 삶의 최근을 충분히 압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형국을 요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바빠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세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가서, 세상의 어제와 내일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바쁜 나와 바쁜 세상이 맞물려 대단히 바빴다. 바빠서 나를 돌아보고, 둘러보고, 내다볼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나 비슷한 그 무엇(들)이 정신없이 살았다. 내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나는 게을러 터져 있었고, 이런 게으름은 부도덕했다. 아름답지 않았다.

이문재 <이문재 산문집> (호미 간, 2006)

 

참조))

사랑의 끝판 /한용운

네 네 가요, 지금 곧 가요.
에그 등불을 켜려다가 초를 거꾸로 꽂았습니다그려.
저를 어쩌나, 저 사람들이 숭보겄네.
님이여, 나는 이렇게 바쁩니다.
님은 게으르다고 꾸짖습니다.
에그 저것 좀 보아,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하시네.
내가 님의 꾸지람을 듣기로 무엇이 싫겄습니까.
다만 님의 거문고줄이 완급을 잃을까 저퍼합니다.

님이여, 하늘도 없는 바다를 거쳐서,
느릅나무 그늘을 지어버리는 것은
달빛이 아니라 새는 빛입니다.
홰를 탄 닭은 날개를 움직입니다.
마구에 매인 말은 굽을 칩니다.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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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맞습니까?


2005.12.21-12.24

작년 12월, 개인적인 휴가는 3일이 남아있었고 회사일은 언제나 그렇듯 잔뜩 밀려있었던 겨울초입의 이야기다. 지금은 타교회로 옮긴 새문안대학부시절의 선배와 함께 여행 한번 같이 가자는 대화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여름으로부터 전해져왔다. 우리는 의기투합하였고 여행을 전격적으로 결정하였다. 목표지는 일본으로 정했다. 그것도 패키지 이런 것도 아닌 배낭여행으로 합의를 보았다. 무엇보다 값이 쌌다. 

선배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가 소설가라는 직함을 얻어 무협소설 두번째 창작연재소설 원고청탁에 계속 시달리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창천일성>이나 <영웅탄생>을 입력하세요. 사익광고협의회!) 그는 새로운 상상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자신을 재촉하는 출판사 여직원의 독촉을 외면하고 훌쩍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나름대로 2004년 3월부터 그해 늦가을까지 박현미 자매(현 청년2부 GBS리더)와 동문수학하며 연마하였던 일본어 1대 2 과외 실력테스트 명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미친놈 소리를 들으면서 떠났던 여행이다. 결혼한 후에 아내와 함께 가는 줄로만 여겼던 회사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교회선배와 가기로 했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의 파문이 그랬다. 아내는 휴가가 남아있지 않았다. 설득은 나의 당면과제였고 아내는 흔쾌히 수락했다. 정신적 충격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전제로.

3박 4일 가기에는 고베/나라/교또/오사까가 무난하였고 성탄절이브날 돌아오는 여정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우려한 대로 언어의 벽은 높았다.  나의 일어회화실력은 아시아나 비행기 안에 남겨두고 내렸나 보다. 우리 둘은 철저히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이었다. 여행의 추억은 헤맨 부분에서 풍성하게 남긴 했지만 씁쓸했다. 종로 <가을동화>에서 음료수와 점심식사와 곁들였던 공부를 너무 게으르게 했던 것이다. 성실했던 현미씨가 언제 일본 가서 능수능란한 외국어로 복수해주면 좋겠다. 선교도 좋고.

 

처남생각

 

여행 후에 남은 건 사진과 야구공 하나가 전부였다. 오사까 시내 전철역에 한신백화점이 있었고 7층인가에 야구용품 매장이 있는 걸 보고 관심있어 들렀다. 작년 일본 센트럴리그우승팀 도시여서 그런지 야구관련 상품도 많았다. 대학교에서 야구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는 처남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엠블렘이나 로고 같은 거 전혀 안 들어가있는 ‘민짜’ 야구공 하나를 나의 여행기념을 위해 구입하였다. 겨울 내내 양복 위에 잠바 하나 더 입고 회사 출퇴근하는 날이면 내 잠바 주머니에는 그 야구공이 미니라디오와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야구공을 손에 쥐고 있으면 옛날 풍경 두 컷이 자주 떠오른다. 하나는 초등학교시절 방과후건 주말이건 집 건너편 학교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던 축구나 야구에 대한 추억인데, 늘 재밌게 땀흘려 놀다보면 최루탄 마시고 눈물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고려대에서 학생시위를 자주 한 만큼 제기동 주민들은 최루탄 냄새를 흡입하며 살던 날이 많았다. 80년대 중후반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또 하나는 내가 다닌 초등학교 근처 어린이보호구역에 집이 있던 동네친구가 친형과 글러브 하나씩 끼고 나와서 공 던지고 받고 하던 풍경이다. 포수 글러브 끼고 동생의 공을 받아주는 친형의 듬직한 모습, 그 당시 우리 나이를 따져봐도 불 같은 강속구를 던지던 친구녀석의 와인드 업. 시간이 난다면 포수글러브 하나 구해서 볼 캐치하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으련만. 청년1부 민수와 격주로 토요일아침 조기축구하는 재미로 만족해야 하지 싶다. 

3월의 첫 2주간은 야구가 전국민을 들었다 놓았다 한 기간이었다. 은행영업시간 내에 벌어진 경기가 많아서 제대로 9이닝을 본 경기는 한국팀이 일본에 진 경기 밖에 없지만 문득 야구를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당신도 모두 투수다

 

바로 나 스스로가 매일매일 야구장의 중심 갈색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루에 공 하나를 던지는 삶일 수도 있고 하루에 공 몇 십개를 뿌려야 하는 선택의 연속일 수도 있다. 한 게임에 해당하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기진맥진하기 일쑤고 스스로를 돌아볼 틈도 못 찾고 내일의 게임으로 내몰린다. 이것은 신앙적인 면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여겨진다.

내가 가진 구질이라곤 너무도 초라하게 직구와 변화구, 단 두개의 구종(球種)밖에 없다. 세상의 날고 기는 타자들을 상대하는 내 투구가 기본기도 안 되어 있고 형편없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어진 사명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변함없는 믿음’의 직구와 내 삶을 주관하시고 열방을 다스리시는 온전하고 크신 ‘사랑’의 변화구를 집중해서 던지는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세상과 겨뤄보라고 마운드로 올려보내는 감독이거나 내 공을 묵묵히 받아주시며 함께 기뻐하고 또는 애통해하는 포수이기도 하다.

내가 평생 던진 수많은 공 중의 하나, 그 투구를 보고 관중들 중의 누군가 한명이 믿음의 본질을 깨우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에게 변화로 나타나 회심하게 된다면 결국 그것이 내가 가정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역사가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랑의 변화구는 쓰면 쓸수록 그 어떤 누구에게보다도 나에게 더 강렬한 변화를 일으킬 것을 말이다. 그것은 리더를 맡고 있는 교회공동체의 사람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내 공은 너무도 깨끗하고 여전히 실투가 많다. 그게 가장 큰일이다.

 

 

(2006.4, 김 인 부회장 청탁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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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 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자음 'ㅅ'의 날카로움과 'ㅍ'의 서늘함이

목젖의 안쪽을 통과해나오는

'ㅜ'모음의 깊이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바람이다.

 

'ㅅ'과 'ㅍ'은 바람의 잠재태이다.

이것이 모음에 실리면 숲 속에서는 바람이 일어나는데,

이때 'ㅅ'의 날카로움은 부드러워지고

'ㅍ'의 서늘함은 'ㅜ'모음의 울림처럼,

사람 몸과 마음의 깊은 안쪽을 깨우고 또 재운다.

 

'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 속에 온 것 같다.

 

 

 

-김훈, <자전거여행>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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