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책 제목을 이렇게 달려고 했다.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만해의 시 '사랑의 끝판'에서 따온 것인데, 내 삶의 최근을 충분히 압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형국을 요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바빠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세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가서, 세상의 어제와 내일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바쁜 나와 바쁜 세상이 맞물려 대단히 바빴다. 바빠서 나를 돌아보고, 둘러보고, 내다볼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나 비슷한 그 무엇(들)이 정신없이 살았다. 내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나는 게을러 터져 있었고, 이런 게으름은 부도덕했다. 아름답지 않았다.
이문재 <이문재 산문집> (호미 간, 2006)
참조))
사랑의 끝판 /한용운
네 네 가요, 지금 곧 가요.
에그 등불을 켜려다가 초를 거꾸로 꽂았습니다그려.
저를 어쩌나, 저 사람들이 숭보겄네.
님이여, 나는 이렇게 바쁩니다.
님은 게으르다고 꾸짖습니다.
에그 저것 좀 보아,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하시네.
내가 님의 꾸지람을 듣기로 무엇이 싫겄습니까.
다만 님의 거문고줄이 완급을 잃을까 저퍼합니다.
님이여, 하늘도 없는 바다를 거쳐서,
느릅나무 그늘을 지어버리는 것은
달빛이 아니라 새는 빛입니다.
홰를 탄 닭은 날개를 움직입니다.
마구에 매인 말은 굽을 칩니다.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